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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목장 올레는 초원의 나라같습니다.
▲ 바당목장 올레 바당목장 올레는 초원의 나라같습니다.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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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 지나면 흙길, 흙길을 밟으면 다시 시멘트길, 그리고 자갈길까지 제주시 성산읍 삼달리 올레길은 다양했습니다. 드디어 삼달리 올레 끝에 섰습니다. 풀이 듬성듬성 자란 자갈길가엔 억새가 한들거리더군요. 가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억새의 군무가 올레꾼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손을 흔들어대더군요.

억새꽃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
▲ 억새꽃 올레 억새꽃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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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꾼을 반기는 농부들
▲ 농부들 올레꾼을 반기는 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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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달콤하지만 주저앉는 것은 금물

5시간 정도 걸었으니, 삼달리올레에서는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왼쪽 허벅지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도보기행에서 주저앉아 쉬게 되면 탄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터라 느린 걸음으로라도 걸을 수밖에요.

앞서가던 올레꾼이 “쉬지 말고 그냥 걸어요!”라고 말하자, 뒤따른 올레꾼들은 침묵으로 답변하더군요. 휴식은 달콤하지만 자칫 포기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거든요. 그렇지만 제주올레의 매력은 누군가와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상관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코스를 정하고 걷는 자유가 있습니다.

삼달리 올레 끝에는 제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12번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때 사거리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더군요. 빨간 신호등 앞에서 맛보는 순간의 휴식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천리 목장 올레
▲ 신천리 마장 신천리 목장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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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리 마장 바당올레는 초원의 나라

그 신호등을 건너면 바로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올레 땅을 밟게 됩니다. 출발할 때 그 많던 올레꾼들은 어디로 갔는지, 신천리 올레에 들어서니 느릿느릿 걷는 올레꾼들 모습만 이따금씩 보일 뿐이었습니다.

2008년 9월 27일 오후 3시 20분, 드디어 12번 도로를 가로지르니 푸른 바다가 쫙-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푸른 바다 가는 길은 푸른 초원이 길을 열더군요. 그 초원이 바로 신천리의 자랑 마장입니다. 이름하여 신천리 목장 바당올레지요.

“야- 좋다!”

저절로 흘러 나온 탄성은 그저 ‘좋다’라는 표현뿐. 중산간 올레만 걷다가 초원과 바다를 한꺼번에 만나니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격이더군요.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돌담과 어우러진 목장
▲ 돌담 그리고 목장 돌담과 어우러진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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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하던 말 임시로 먹이던 목장

골프장 같기도 하고 초원 같기도 한 신천리 마장은 바다로 통하는 올레였습니다. 신천리 마장은 옛날에 ‘진상하던 말을 임시로 먹이던 목장’으로 조선 고종 때 동암 오장헌의 효행과 덕행을 칭찬하여 이 목장을 두 번이나 하사 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청렴한 그는 끝내 받지 않아 신천리에 사는 향리에게 하사하였다 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에서)

덤으로 얻은 코스모스길
▲ 코스모스길 덤으로 얻은 코스모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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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내려앉은 신천리 마장에 드디어 목장 올레꾼들이 길을 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일행은 앞서가는 올레꾼 뒤를 따르다가 길을 잘못 들었지 뭐예요. 목장 한가운데 올레길을 두고 12번 도로의 가을 야생화와 코스모스 길에 유혹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2번 도로 200m 지점까지 발품을 팔았던 것입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아껴야 할 판에. 쓴 웃음을 신천리 목장에 날렸답니다.

신천리 목장 주변에 있는 동굴
▲ 동굴 신천리 목장 주변에 있는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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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더 걸은 올레 길에서 신천목장이라 쓴 표지판이 가을 하늘 아래 나부끼고 있더군요. 그리고 목장을 뚫고 있는 굴이 보였습니다. 이 굴은 목장을 지나 바다까지 연결된다 하더군요.

신천리목장은 얼마나 영양가가 있었으면 진상에 올릴 말이 임시로 먹이를 먹였던 곳이었을까요. 초록과 연둣빛이 조화를 이룬 풀섶이 장관이었습니다.사람이 밟으면 길이 되고 앉으면 풀잎 방석이 되더군요. 올레꾼들 사뿐사뿐 잔디 위를 걷더군요. 아마 올레꾼들은 이곳에서 도보기행의 피로를 충분히 풀었을 것입니다.

바다로 통하는 올렛길
▲ 용궁올레 바다로 통하는 올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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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낭만, 그리고 피난처

바당올레 가운데서는 승마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남국의 정취를 그려내더군요.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진상에 올릴 말들이 먹이를 뜯고 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신천리 마장에 남아 있는 게 있다면 너스레를 떨어볼 수 있는 여행자들의 낭만과 편안함, 자유, 평화였지요. 그리고 아스팔트 위를 걸었던 사람들이 짊어지고 왔던 조급함을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는 피난처이기도 했지요.

마장 끄트머리는 곧바로 바다로 통하더군요. 바당올레를 걸을 참입니다. 신천리 사람들에게 바당올레는 바다 밭으로 가는 길이지요.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인접한 마을이다 보니 아무래도 농사보다 전복이며 소라 등 해산물 따는 재미가 더 쏠쏠하겠지요. 때문에 신천리 바당올레는 양식장이 마을의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더군요.

파도가 숨을 죽이는 바당올레
▲ 갯바위 파도가 숨을 죽이는 바당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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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죽죽한 갯바위 따라 파도가 잠이 들고

다시 거무죽죽한 갯바위를 걸을 차례입니다. 마침 이날은 물때라 신천리 바닷가는 여유를 부리고 있더군요. 바람 한 점 없는 신천리 바당에는 파도소리마저 잠들었습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수평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바다는 동색이더군요.

용의 머리처럼 생긴 기암괴석들과 갖가지 거무죽죽한 바다돌이 길을 열었습니다. 가을빛에 잘 달궈진 갯바위를 밟으며 걷는 바당올레길은 발마사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올레가 아니었더라면 언제 다시 바당올레 길을 걸어 볼 수 있었겠습니까?

돌담에 핀 제주올레 표시 리본
▲ 제주올레 리본 돌담에 핀 제주올레 표시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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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걷는 올레 친구를 만나다

바당올레는 신천리 포구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시 신천리 마을에 접어들었습니다. 돌고 돌아가는 올레길은 끝이 없더군요. 제주올레가 달아놓은 리본은 돌담에 핀 꽃 같더군요.

서쪽으로 지는 해는 따가웠습니다. 걸음걸이도 점점 느려질 수밖에요. 드디어 혼자 길을 걷게 되더군요. 누가 말했나요? 인생은 홀로 가는 고행이라고. 바당목장 지나 신천리에서 하천리로 이어지는 올레길은 가장 인내가 필요했던 올레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천리 올레에서 만난 올레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 신천리에서 만난 올레친구 신천리 올레에서 만난 올레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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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내로 그 길을 걸었듯이,  인내를 배우는 올레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제주시 백록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제주올레 길을 걷는다는 친구는 돌담 모퉁이를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주올레 9코스 22km 도보기행에서 내 선구자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7일 걸었던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입니다.
제주의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바당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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