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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을 잘못 만나 2년간 기다린 끝에 화장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온 스피커통.  곁달아 숭산심해(崇山深海) 서각까지 몸단장하러 따라 나섰다.
주인을 잘못 만나 2년간 기다린 끝에 화장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온 스피커통. 곁달아 숭산심해(崇山深海) 서각까지 몸단장하러 따라 나섰다. ⓒ 이덕은

오디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마 천일사 별표전축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60년대 후반까지도 스테레오 방송이 없었으니, 그런 분들은 스테레오 LP판을 올려놓고 양쪽 스피커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입체음향'에 매료되어 영화 역마차의 말발굽 소리를 듣거나 해리 벨라폰데의 카네기홀 공연 같은 '빽'판을 걸어놓고 분리되는 음을 즐기곤 했을 것이다.

 오른 쪽이 초벌 칠한 모습
오른 쪽이 초벌 칠한 모습 ⓒ 이덕은

전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청계천에서 구닥다리 군용 4인치 스피커를 사서 합판조각을 잘라 맞춰 개방형 스피커를 만들어 들으면서도 흐뭇했던  시절인데 '입체음향'으로 소리가 나온다 하니 그야말로 쌍나팔 장전축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칠을 끝내고 스피커 유닛을 달려니 '아뿔싸' 뽑아 놓은 육각나사가 없어져 버렸다.
칠을 끝내고 스피커 유닛을 달려니 '아뿔싸' 뽑아 놓은 육각나사가 없어져 버렸다. ⓒ 이덕은

전자상가라는 곳이 얼마나 절묘하게 앰프와 스피커를 조화시키는지 내가 맨 처음 가봤던 K전자에서 주인장이 눈을 지긋이 감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을 들려 주는데 그만  명징한 리코더 소리의 감동이 머리에 각인되어 그 스피커를 집안에 들여놓았으나, 집에서는 내가 온갖 재주를 피워봐도 그 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그 뒤로 몇 번의 시쿤둥한 짝사랑과 그녀의 너무나 높은 눈 높이에 그만 체념을 하고 말았다.

 2년 전 한겨울.  딸네미의 은근한 압력으로 동료 집마당을 빌려 함께 작업하였다. 만든 것도 많아서 아기침대, 테이블 2, 스피커 2조, 보석함 3개를 만들어 치웠으니 지금 하라면 절로 손사레칠 일이다.
2년 전 한겨울. 딸네미의 은근한 압력으로 동료 집마당을 빌려 함께 작업하였다. 만든 것도 많아서 아기침대, 테이블 2, 스피커 2조, 보석함 3개를 만들어 치웠으니 지금 하라면 절로 손사레칠 일이다. ⓒ 이덕은

아마 이것도 변명이겠지만 오디오라는 것이 매우 오묘해서 어떤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 무시해 버릴 아니 참고 들어 줄 음색이나 진동수에도 너무나 섬세한 귀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참지 못하고 많은 돈을 배우자 몰래 투자를 하니, 나같이 막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보다는 오히려 좀 찌그러지는 소리가 난다할지라도 내가 직접 정성 들여 스피커통(인클로우저) 하나 짜서 내 옆에 두고 듣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욕구해소가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장부맞춤)때문에 소리를 희생하였으니 내부에 타르나 잔뜩 발라놓을까?
바로 이것(장부맞춤)때문에 소리를 희생하였으니 내부에 타르나 잔뜩 발라놓을까? ⓒ 이덕은

벌써 2년 전에 아기침대를 짠다고 한겨울에 대목반(大木班) 동료 집 마당에서 온갖 전동공구를 가지고 시끄러운 소리 내어가며 매주 한번씩 작업을 할 때, 간단한 저음반사형 인클로우저 도면 하나 얻어 곁들여 통을 2조 만들었다.

재질은 통 자체의 진동을 막기 위해  무거운 MDF로 조립하고 그 위에 무늬목으로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애장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목은 아니지만 메이플 집성목으로 장부까지 짜서 맞춘 것은 아마 음질보다는 전적으로 시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였다. 급한 대로 우퍼와 트위터와 네트워크를 짜맞추어 넣고 동료 집에 있던 먼지 쌓인 인켈리시버를 하나 끄집어내어 들으니 기가 막히다. 막힘없이 주욱 죽 뻗어 나가는 음은 가구가 없는 방 덕분이긴 하겠지만 처음으로 만들어 본 인클로우저에 마냥 입을 맞춰주고픈 심정이다.

 잔뜩 기대감을 갖고 정경화의 바이올린곡을 넣었더니 '허걱!' 웬 낑깽이 소리... ㅜㅜ
잔뜩 기대감을 갖고 정경화의 바이올린곡을 넣었더니 '허걱!' 웬 낑깽이 소리... ㅜㅜ ⓒ 이덕은

그 스피커 1조를 동료에게 선물하고 나머지 1조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가 며칠 전에 칠을 마감하였다. 6인치 동축형 풀레인지 스피커 유닛 하나를 끼워 맞추어놓고 들으니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가 낑깽이 소리가 나며 동료에게 선물한 스피커가 찐하게 생각난다. 허걱!

다시 손에 집히는 대로 월광 소나타를 넣으니 조금 낫다. 다시 파바로티 음반...

 동축형 스피커 유닛. 쉽게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동축형 스피커 유닛. 쉽게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이덕은

아무래도 내 새끼지만 이놈은 너무 촐싹대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마주하다 보면 지도 뭔가 성의를 보여줄테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연세56치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피커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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