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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을 자꾸 불러내는 게 안 됐지만, 그래도 할 이야기는 좀 하고 살자. 결론을 미리 말하면, 그녀의 죽음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소위 악플 때문이라고만 할 근거는 없다. 이게 진실이다. 근거 없는, 악의적인 글이 그녀가 막다른 선택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겠지만, 누구라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런 막다른 선택을 할 때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리라는 것이 상식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악플 때문에 그녀가 죽었고, 그래서 이참에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서 악풀을 다는 누리꾼들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인과관계가 약해 보이는 두 사안을 억지로 연결시켜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 하나를 이참에 해치우고야 말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밖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현행 형법과 통신망이용법(정보통신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이름이 좀 길어서 그냥 '통신법'이라고만 하겠다)의 명예훼손, 그리고 모욕죄 조항만으로도 충분하게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댓글 문제를 해결(처벌 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리꾼 처벌, 우습고 우습다

 

사이버 공간이 화장실 벽면처럼만 사용되는 것은 분명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한편 오래된 극장의 수세식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누군가 벽면 가득 써놓은 낙서들을 읽으면서 웃음을 짓던 어릴 때의 기억을 지금 떠올리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 싶다. 

 

그 시절 화장실 낙서의 내용이란 게 주로 음담패설이 대종을 이룬 가운데, 자칫 누군가의 명예훼손 내지 모욕죄에 해당하는 내용도 더러 있었지 싶은데, 그렇다고 화장실 벽에 낙서 한 사람 찾아내서 처벌하자고 요란 떨던 소리 들어 본 적 없다.

 

그것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반의사불벌죄) 공권력이 알아서, 누군가에게 모욕을 가한 누리꾼을 찾아내 가중처벌하겠다는 건 좀 우스운 일이다. 이 '우습다'는 표현은 사실 비논리적인데, 모욕을 느끼는 주체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 '우습고', 모욕이란 그야말로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감정, 느낌인데, 어떻게 그것을 실정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하는지, 역시 우습기는(비논리적이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도 그렇게 표현해 보았다.

 

물론 사이버 공간의 파급력이라든가 하는 매체의 특성이 화장실 낙서와 비교할 건 아니다. 대뜸 욕설부터 하고(쓰고) 보는 인터넷 댓글 문화는 분명 고쳐야 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이 고상한 내용으로만 채워지는 것도 좀 끔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이버 공간엔 화장실 벽의 낙서와 같은 글도 허용해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좀 심한 표현까지도 참으며 허용하는 사회라야 선진화된 나라가 아닐까? 

 

악플에 시달려 보지 않아서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악플은 관두고라도 내가 쓴 글에 비아냥대는 댓글만 달려 있어도 마음이 상하고 때론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글이 아니라 욕설로 도배된 글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표현은 점잖게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덜 부패한다.

 

사이버 모욕죄에 YTN 기자 해직까지!

 

국가 부패지수와 언론자유는 반비례한다고 했다. 기왕에 있는 법 조항만으로도 심각한 사안은 가려서 처벌하면 될 일을 이리 소란스럽게 떠드는 걸 보면서, 나는 문득 요즘의 YTN 사태가 떠오른다. 비판적인 성향의 기자들을 대량 해고했다고! 거기에 사이버 모욕죄까지 만들어서 얻고자 하는 게 대체 뭘까?  혹시 다음과 같은 김명수의 시 <하급반 교과서>속의 세상으로 되돌아가자는 건 아니겠지?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태그:#최진실법, #사이버 모욕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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