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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중동이라는 곳은 사막, 이슬람, 석유, 건설 등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제대로 된 중동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이어받은 유럽·미국과 가까운, 아니 거의 같은 교육을 받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고대 그리스를 침공해서 마라톤을 만든(?) 다리우스 대제의 조국이며 중세유럽 십자군에게는 공포의 강적이자 현대 미국에게 '악의 축(an axis of evil)'으로 비난받는 페르시아(이란)는 어찌 보면 우리에게도 '금역'에 가깝다.

이것이 역설적이게 한국 여행자들을 페르시아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이유가 되고는 한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황제의 앞마당
▲ 페르세폴리스의 수문장 페르시아 다리우스 황제의 앞마당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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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지녀왔다. 이곳에서 발원한 조로아스터교는 인근의 유대유일신앙에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멀리 중국에까지 와서 명나라의 기원이라 할 수도 있는 '명교'를 세웠다.

또한 700년 전의 대시인인 '루미'를 필두로 하여 많은 문학인들이 인도와 중동, 유럽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신라의 '처용'조차 페르시아인이라 의심될 만큼 극동(가장 먼 동쪽)의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다.

사실 페르시아에 대해 이런 지루한 설명따위는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페르시아의 옛 수도인 이스파한(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405km 지점에 위치)은 그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예전에 있던 좋고 나쁜 모든 선입견을 압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수(?)를 즐기는 아이들
▲ 에맘모스크 분수(?)를 즐기는 아이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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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은 셀주크 터키의 수도였고, 17세기에는 서쪽의 강국 오스만 터키와 동쪽의 투르크멘족에게 압박당해 멸망 직전의 페르시아를 구해낸 샤파비 왕조의 5대 샤 압바스 대제의 수도였다.

상업을 통한 경제발전과 강병양성에 의한 무력으로 페르시아의 옛 영광을 되찾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중심부가 바로 에맘 광장(Meidan Emam)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이기도 한 사각의 에맘광장은 기본적으로 시장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각 면의 시장건물 중심에는 에맘 모스크나 압바스데제의 관망대 등과 같은 화려한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잔디와 나무들이 있으며 가장 중앙에는 호수와 분수가 있어서 물장난 치는 어린애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박제되어 관람료나 챙기는 다른 나라의 역사적 건물들과는 달리 에맘 광장의 시장건물은 천년이 훨씬 넘은 곳도 있지만 아직도 상인들과 사람들로 붐빈다. 살아 숨쉬는 생명력과 역사전통의 고귀함과 엄격함도 가진 세계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무게의 중심은 멀리 보이는 에맘 모스크
▲ 에맘 광장 무게의 중심은 멀리 보이는 에맘 모스크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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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시장 건물들의 뒤엔 시장건물에 전시된 물품들을 만드는 장인들의 건물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비록 시장 건물처럼 깨끗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들 나름의 고결함과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불붙은 쇠의 맑은 붉은 빛과 이를 두드리는 늙은 대장장이의 망치소리, 황동의 항아리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늬장식을 새기는 징과 장도리, 여행자인 나를 보고 미소 짓지만 여전히 양탄자를 짜는 친절한 손, 아궁이의 열기로 흘러내리는 땀을 터번자락으로 닦으며 노릇노릇한 난(이슬람의 구운 빵)을 끌어올리는 부지깽이, 이들의 휴식의 기다리는 찻집 배달 쟁반.

황토로 만들어진 장인건물들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조차 삶에 대한 그들의 열정처럼 보인다. 압바스 대제의 취미는 광장 한 면의 중심에 위치한 그의 관망대에 올라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에맘 광장과 모스크를 바라보는 것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취미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슴이 복받쳐 오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고 가만히 상상해본다.

에 무늬를 새기는 장인
▲ 황동항아리 에 무늬를 새기는 장인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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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아름다움은 단지 에맘광장과 같은 중심부에만 집중되어있지 않다.

중심부를 벗어난 여기저기에도 500년 전에 지어진 화려한 주택과 모스크(이슬람교회)들이 있는데 이들의 앞마당, 정원들은 담장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기에 도시의 절반이 공원 같다. 이들 정원은 사막 가득한 페르시아에 익숙한 여행자들에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는 쉼터가 있다.

쉼터의 식수는 '물갈이'로 고생하는 민감한 여행자라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모래사막의 지하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지하수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정화된 것일까. 지나는 가는 말을 하자면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과 '화장실'로 돈 버는 도시들은 상당히 얄밉다. 유럽의 도시들처럼 부유하다면 더욱….

이스파한이 비록 자얀데강을 옆에 두고 있어서 물이 풍족하다할지라도 사막나라의 수도로서 물의 귀중함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그런 이들이 주는 물의 넉넉함만으로 그들의 따듯함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필요없어진다.

에맘광장이든 주택의 정원이든 거리든, 어디서나 '물'만큼은 자유롭다
▲ 가로수 옆의 식수대 에맘광장이든 주택의 정원이든 거리든, 어디서나 '물'만큼은 자유롭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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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색의 진흙건물들의 건조함에 목이 마르다면 자얀데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다.
일반적인 강들은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는 것에 비해 자얀데 강은 흐르고 흘러 사막의 중앙에서 사라져버린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주다가 자신조차 사라진다. 살신성인인지 바보인지….

아무튼 이스파한에서의 자얀데는 살아있고, 푸른 자태는 더욱 눈부시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는 강변의 잔디, 멀리 보이는 오래된 분수와 깔끔한 숲길, 여유로운 사람들이 어우러져 편안한 곳이다.

거기에다 커주 폴(khajou pol)을 필두로 하는 11개의 다리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커주 폴은 강을 건너게 하는 다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낮에는 낮잠을 위한 시원한 그늘을, 밤에는 다리의 아치 사이의 낭만적인 노상 카페로도 유명하다. 특히 중동의 진한 노을은 진흙벽돌과 파랑, 하양, 붉음의 타일로 모자이크된 커주다리를 보석상자로 만들어 버린다.

중세의 다리를 지나는 아랍여인의 검은 챠도르는 격한 운동 후에 흘리는 건강한 숨결같다.
▲ 자얀데강의 다리 중세의 다리를 지나는 아랍여인의 검은 챠도르는 격한 운동 후에 흘리는 건강한 숨결같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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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를 이어주던 '아라비아 상인'이 그 지위를 유럽에게 내어줌으로서 생겨난 좌절과 분노 같은 정치적인 상황은 잠시 접어두자. 하지만 사막의 오아시스를 이어주며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던 '여행자(캬라반, 대막상인 등)'에 대한 그들의 친절함이 일개 '배낭여행자'인 내게도 쏟아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중동을 여행하는 이들의 중 많은 이들이 그들이 접해온 대중을 향한 정치적인 중동 이미지와 개인이 느낀 현지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워한다. 이것이 바로 중동 여행의 매력이다.


태그:#페르시아 , #이스파한, #이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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