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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우며 어우러지고 있는 참가자들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우며 어우러지고 있는 참가자들 ⓒ 심규상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산과 산이 맞붙어 있는 좁은 공간에 가산사(佳山寺, 주지 지승, 충북 옥천군 안내면)가 조각달처럼 걸려 있다. 서둘러 달려 왔지만 산사의 저녁은 일찌감치 어둠을 몰고 왔다.

가산사 입구를 지나 표지판을 따라 산 중턱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어둑한 길을 기어올랐다. 종아리 힘줄이 곧추서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그때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넓직한 평지가 나타났다. 곳곳이 사람들로 꽉 찼다. 눈짐작으로도 400~500여 명은 돼 보였다. 순간 나타난 산 속 풍경은 요술로 빚어낸 별천지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큰 당산나무 아래였다. 당산나무는 신단수였고 주변은 성역이었다. 둘레에는 48대까지의 단군임금의 왕호를 새긴 천 글씨가 내걸렸다. 벌써 '들당산굿'과 정화의식인 '잡귀잡신굿'이 끝난 직후였다. 이정희 목사 등의 분향에 이어 참석자 전원이 참신을 하고 있었다. 제4340주년 개천절을 기념하는 단군제가 열리고 있었던 것.

이어 가산사 주지 지승스님이 하늘에 고하는 제문(고천문)을 읽기 시작했다.

 4일 저녁 6시. 신단수 아래에서 단군제를 지내고 있다.
4일 저녁 6시. 신단수 아래에서 단군제를 지내고 있다. ⓒ 심규상

"김부식 같은 썩은 선비와 이병도 따위의 해로운 종자들이..."

"어홉다. 하늘의 북두칠성으로 좌정하신 일곱 한인천제와 밝달국의 열여덟 한웅천왕 그리고 조선나라의 마흔 여덟 단군왕검을 깃발로 모신 올해의 단군제는 진실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장내에 엄숙함이 더해졌다. 참석자들은 그의 고천문에 귀를 기울였다.

"바이칼에서 최초로 인류의 문명을 일으켰던 한인천제들의 자취는 북만주의 대흥안령과 소흥안령 계곡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에게 어렴풋이 남아 있고… (중략) 동방대륙의 중심이었던 하얼빈에 둥지를 틀고 천하를 호령했던 단군임금들의 걸걸했던 기상은 홍익인간 (弘益人間)과 제세이화(濟世理化)의 글귀로나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단서가 백제의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역사창고가 불타고 고구려가 망하면서 역사 서책이 4개월여를 불탔다는 것으로 한 원인을 삼을 수는 있지만, 그 후로도 김부식이 같은 썩은 선비가 나와 엉터리 삼국사기를 짓고 이병도 따위의 해로운 종자들이 자국의 역사를 한껏 깎고 줄인 데에 더 큰 실마리가 있다 할 것입니다."
     
그는 고천문을 통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삼라만상과 어우러지는 동안 저희들 머리위로 복을 내려달라'고 기원했다.

 밤 11시경 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진 무당굿.
밤 11시경 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진 무당굿. ⓒ 심규상

 무당굿
무당굿 ⓒ 심규상

만남의식도 선보였다. 혼인을 간절히 원하는 여인에게 쑥과 마늘을 하사하는 의식이었다. 100일 동안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만을 먹고 여자의 몸이 된 웅녀(熊女)가 환웅을 만난 신화를 재현한 의식이었다. 혼기를 앞둔 여러 명의 여인이 나서자 쑥과 마늘이 나눠졌다.  

4일 저녁 6시부터 열린 이날 27번째 단군제는 참석자 전원이 자신의 소원을 적은 기름종이에 불을 붙어 고천문과 함께 하늘에 올리는 것으로 마감됐다.

의식이 끝나자 늦은 저녁공양이 이어졌다. 제단에 올렸던 술과 제물을 나눠 먹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식사가 끝나는가 싶더니 풍물패 장단과 함께 참석자 전원이 참여하는 난장이 시작됐다. 난장판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단군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무당굿

밤 11시. 참석자들이 또 다시 신단수 아래로 모여들었다. 무당굿(산천열기)이 시작된 것. '㈔황해도굿 한뜻계 보존회' 큰 무당인 인간문화재 김매물 만신과 회원들의 무대였다. 새벽 1시까지 이어진 굿판은 단군과 참여자들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장이었다. 굿 중간에 단군의 기운을 받은 무당이 참석자들에게 공수(점사)를 내려 주는 의식도 있었다.

매년 단군제 무당굿에 참석했다는 한 참석자는 자신의 경험을 전한 뒤 "신통방통하게 잘 맞는 것으로 정평이 나왔다"고 말했다.      

새벽 1시부터는 다시 노래하고 춤추며 어우러지는 2차 난장판이 시작됐다. 주최 측은 "난장판은 누구나 흥이 나면 자신의 3기(분위기, 취기, 객기)와 신명을 마음껏 지필 수 있다"며 "사회자를 절대 무시하라"고 안내했다. 편안한 분위기는 참석자들의 몸과 마음을 거리낌 없이 풀어헤치게 했다.     

새벽 4시가 되자 그 때까지 단군제를 지킨 자동차를 하나하나 돌며 안전운행을 빌어주는 '자동차 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박 2일'동안 춤추며 난장을 즐기고 있는 참석자들
'무박 2일'동안 춤추며 난장을 즐기고 있는 참석자들 ⓒ 심규상

 아이들도 밤새 불장난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도 밤새 불장난을 즐기고 있다. ⓒ 심규상

축제 참여 원칙 "사회자 절대 무시...분위기, 취기, 객기에 빠져라"

무박 2일로 진행된 '단군제'는 5일 아침 일출시간에 맞춰 해맞이 당산굿(풍물패 '군고패 흥 '주관)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 참석자는 "단군제야 말로 전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축제"라며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가산사 단군제 참석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단군의 자손들이 만나 하룻밤 미쳐 날뛰다보면 마음이 점점 비워지고 머릿속은 텅 비게 된다. 카티르시스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모르는 사람인데도 마구 술잔을 돌리다보면 선하디 선한 '한밝나라'백성이 된다. 이것은 진짜 중에 진짜(축제)다."

주지 지승스님은 "옛 부여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래 불러 춤추면서 몇 날 며칠 동안 축제를 벌였는데 그 축제를 영고(迎鼓)"라 했다"며 "가산사단군제는 영고를 재현한 '낮고 너르고 편한 자리'로 단군의 품 자락에 모여 술과 풍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단군제에 참석한 외국인 참가자.
단군제에 참석한 외국인 참가자. ⓒ 심규상

[가산사 단군제 유래] 단기4315년(1983년) 8월. 상고사 연구에 몰두하던 지승스님의 발원으로 정방사(충북 제원군 금수산)에서 처음 단군제를 열고 매년 소박하게 자리를 옮겨 이어왔다. 단기 4333년(2000년) 10월, 가산사 위쪽 채운산 기슭 도녀목이 있는 자리에 단군제단처를 조성하고 매년 단군제를 지내오고 있다. 이때부터 문학인 중심에서 일반인이 참여하는 대동잔치로 전환됐다. 매년 제천절 전후에 열린다.
지승스님은 연변대학 조선문제연구소에 적을 두고 5년 동안 흑룡강 일대를 뒤지는 등 상고사 연구에 몰두해 왔다. 저서로는 <한밝나라 이야기> <삼신과 동양사상> 등이 있다.

[가산사 단군제 취지] 특별한 취지와 목적이 없다. 구지 취지를 찾자면 종교와 종파를 떠나 무교(無敎)를 실현하는 자리다. 종교의 울타리나 서로의 가름을 뛰어 넘기 위한 것이 지향점이라고. 단군을 깊이 생각하든, 단군을 핑계 삼든 개의치 않고 만나 하나가 돼 보자는 게 취지란다.

[가산사 단군제 비용] 성금과 단군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헌금으로 운영된다. 예술가나 자원봉사자 모두 무보수로 재주와 능력을 나눈다. 대가 없는 노동력이 가산사 단군제의 힘이자 토대라고 한다. 하지만 밤을 새워 놀다보면 발심이 용솟음쳐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주머니를 비워 잔치비용을 보태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가산사 유래] 신라 성덕앙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1300년의 전통을 가진 전통사찰.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이 가산사 일대에서 3천여 명의 승병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으나  금산 연평곤 전투에서 전원 순국했다. 숙종임금은 이를 기리기 위해 가산사에 승병장 영규대사와 의병장 조헌의 영정각을 짓고 제향을 받들게 했으나 일제치하에서 두 분의 영정이 강제 철거됐다. 이렇게 끊어진 제향을 다시 모시게 된 것은 지난 2001년. 옥천군민들은 16대와 17대 국회에 두 분의 제향을 국가가 맡아야한다고 청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18대 국회에 다시 청원을 해놓은 상태다.


#단군제#가산사 단군제#지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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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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