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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조금은 쌀쌀했던 밤에 기운에 팀원들이 걱정된다. 안그래도 도시보다 더운 날씨에 시골로 들어와서 조금은 힘들어 했던 모습들이 눈에 밟힌다.

 

씻고 팀원들을 깨우니 6시가 조금 넘는다. 이곳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존재일까. 이른 아침 투덜대지 않고 등교하는 것봐 봐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 일찍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곳에서 8시까지등교를 해야 하지만 7시가 되기 전에 전교생이 이미 모두 학교에 와 있는 듯했다.

 

이날은 태국에 와서 우리가 처음으로 활동과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Shankhampaeng YMCA에서 활동을 진행해 본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소개되어 서로 알게되고 학교의 정규 수업시간을 받게 되는 건 처음이다. 아이들의 반응이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너 댓살부터 열 다섯 살까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Wanglieng school의 아침 조회 모습, 인상적인 건 학생들이 힘들 것을 고려해서 앉혀논채 진행한다는 점이다.
Wanglieng school의 아침 조회 모습, 인상적인 건 학생들이 힘들 것을 고려해서 앉혀논채 진행한다는 점이다. ⓒ 고두환

전교생이 모여서 국기게양식을 하고 왕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시간이 끝나자 치앙마이 YMCA와 라온아띠 태국팀이 소개된다. 수많은 캠프 경험이 있는 요는 마이크만 잡으면 말 그대로 '슈퍼스타!'다. 절대 분위기가 쳐지거나 아이들이 흥미를 잃는 법이 없다. 그의 경험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그 다음 순서는 항상 나다. 자연스럽게 맨 왼쪽에 서는 것도 나고, 덩치가 커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것도 나다.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큰 소리로 인사하면 아이들 모두 즐거워한다. 내 태국이름은 자연스레 '고'가 되었다.

 

오전 활동은 요가 진행을 맡고 우리가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요는 서로가 알아가고 협동해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며 항상 활동을 진행하는데, 우리가 외국인이고 발음이 어색한 점을 서로 친해지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200여명의 전교생과 친해지는게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나의 별 것 아닌 행동도 그대로 웃음거리가 되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놀이로 변한다. 아무래도 생김새가 다르고, 다른 말을 구사하니 그만큼 신기할터. 10월까지 교육기간이 끝나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이곳 Wanglieng school로 투입될 텐데 행동거지, 말 하나도 조심스레 해야겠단 생각이 문득든다. 새삼스레 선생님이란 직업에 대한 존경심이 표해지는 순간이다.

 

말도 안 통하고, 인사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와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식사준비를 해준다. 요리도 상차림도 어느새 다 해놓은 아이들. 수줍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곁을 서성인다.

 

 탈을 만드는 시간,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 탈 모습을 따라 그리다가 우스꽝 스러운 모습, 만화 캐릭터 등 자신이 원하는 기호에 맞춰서 탈을 완성했다.
탈을 만드는 시간,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 탈 모습을 따라 그리다가 우스꽝 스러운 모습, 만화 캐릭터 등 자신이 원하는 기호에 맞춰서 탈을 완성했다. ⓒ 고두환

오후, 우리는 두 그룹을 갈려서 수업에 투입되었다. 한 그룹은 탈을 만들고 탈춤을 추는 것, 다른 한 그룹은 이름표를 만들고 그룹 그림을 그려보는 것. 애초에 한국에서 '한국적인 문화나 한국적인 어떤 것'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위험하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우리는 국위를 선양하거나 한국의 문화사절단으로 지역에 파견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투입되어 투영되는 것을 근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결국 수업은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접목시킬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행인건 아이들의 참여율이 높고 관심도 높다는 점. 사실 대부분 아이들의 양말이 헤져있고, 학용품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학교의 정규수업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해봤을 리 없다. 우리가 조금 고민한 것이 이곳 아이들에겐 평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될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록 이틀째지만 이곳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생각보다 크다.

 

태국말과 한국말로 쓰여진 명찰을 달고 신나게 탈춤을 추며 어울리는 아이들. 스스럼 없이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며 곁으로 다가오는 그네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곳이 따뜻하다 못해 뭉클해지려 한다.

 

 쉬는 시간, 아이들에게 둘러쌓인 라온아띠 태국 단원의 모습
쉬는 시간, 아이들에게 둘러쌓인 라온아띠 태국 단원의 모습 ⓒ 고두환

한국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단어 '봉사'. 우리들은 봉사를 수직적 관점에서 더 많이 가지고 배운이가 그보다 못한 이에게 배풀어주는 일방적인 소통관계로 이해한다. 하지만 봉사는 상호 소통하는 소중한 과정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배움이 많건 적건 상호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를 돌봐주고, 서로를 감싸주는 것. 바로 그게 봉사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일방적인 소통 구조가 봉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4시가 채 안되자 아이들이 집에 간다. 모두들 합장하고 인사한다. 국기를 내리는 시간, 내 손을 이끌고 가 함께 줄을 잡아당긴다. 어느새 성큼 그들과 가까워짐을 느낀다. 과연 살아가면서 이런 공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제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은 오전 오후, 모든 수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유치원생과는 꼭 껴안고 낮잠을 자고, 초등학생은 손잡고 교정을 돌고, 중학생은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놀았다. 내일은 이 친구들과 내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위 일정은 9월 1일부터 9월 5일까지 진행된 라온아띠 태국팀의 일정이며, 그동안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라온아띠#YMCA#KB#해외봉사#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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