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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뛴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요 며칠 월스트리트가 그렇고, 미국 정계도 그렇고, 한국의 상당수 신문들이 그렇다. 미 하원의 반란을 미처 예상치 못했던 터다. 7천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한국 신문들의 지면은 그런 이유만으로는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미 하원의 반란은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어쩌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들조차 의원들의 반란 조짐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시각으로 9월 30일 새벽 미 하원의 반란은 월스트리트에서 사상 최대 낙폭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멍청한 신문 <조선>, 어쩌다 그랬나

 

미 하원의 반란으로 9월 30일자 <조선일보>는 본의 아니게 가장 '멍청한 신문'이 돼 버렸다. <조선일보>는 이날 미 정치권의 7천억 달러 '긴급구제금융법안 합의 타결 소식'을 1면 머리기사("7000억 달러로 정부가 월가를 사들이겠다")로 집중 보도했다. 별도의 지면에 해설기사와 함께 사설까지 실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완전히 빗나간 보도와 편집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조선일보>가 오보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 보도는 한국 시각으로 29일 자정 때까지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날 새벽 미 의회 반란을 예상치 못해 엉뚱한 소식을 전한 셈이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하루 전날 지면을 보면 그것이 '불가피한 편집'이었는지 의문시된다. <조선일보>가 30일 7천억달러 구제금융법안 타결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하지만 주요 타결 내용은 이미 <조선일보>가 하루 전에 29일 1면 머리기사(미 구제금융법안 잠정 합의)로 이미 대부분 보도했던 내용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발언 등이 첨언됐지만, 그리 새로운 내용이랄 것이 없는 '중복된 내용'이 다시 1면 머리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참고로 이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원화 환율 폭등 등 국내 금융 불안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경향신문>은 '환율폭등, 물가압박' 소식을, <한겨레>는 '공포에 휩싸인 외환시장' 소식을, <한국일보> 역시 '환율폭등 환란 경계령' 소식을 각각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전날 한 때 달러당 1200원을 넘어선 환율 폭등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 금융시장에 큰 파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30일자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를 비롯해 여러 신문들은 영 '딴 세상' 소식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21세기 한국의 희망을 예감케 하는 IP(독립적 생산자) 세대"에 대한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중앙일보>는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가 권력화되고 있다면서 '노조전임, 일 안해도 60시간 수당'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노조 전임자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원달러 환율 소식은 <동아일보> 같은 경우엔 1면에서 아예 빠졌다.

 

다른 신문들도 한가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서울신문>은 북한 경유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한국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한·러정상회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세계일보>와 <서울신문>은 환율 폭등 문제를 '제2환란 비상' 등의 제목을 달아 비중있게 보도했지만,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합의 소식을 더 비중있게 다뤘다. <한겨레> 등이 북한의 '동의' 없이 이뤄진 합의라는 점에서 '반쪽 합의'에 주목했던 것과는 다른 보도 태도들이다.

 

멜라민 파동 기사는 어디 가고... 한가로운 조중동

 

중국발 멜라민 파동에 대한 보도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이번주 월요일인 29일 1면 머리기사를 '멜라민 문제'로 할애했다. <경향신문>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중국발 멜라민 파동의 사례를 들어 '글러벌 시대 위험도 세계화'되고 있는 추세를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한겨레>는 식약청이 멜라민 함유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금지품목' 리스트를 발표했지만,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에서는 이들 금지품목 과자류 등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실상을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미구제금융안 잠정합의' 소식을, <중앙일보>는 자사의 대학평가 결과를, <동아일보>는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을 받았지만, 장기 대기로 병역을 면제받은 장기대기자 문제를 각각 1면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이들 신문 역시 '멜라민 파동' 소식을 전하기는 했지만, 주로 정부의 긴급 대책을 중심으로 보도하는데 치중했다. 이들 신문들 가운데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시민단체들이 중국산 멜라민 파동에는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다"고 비판까지 한 신문도 있었지만, 정작 이들 신문들의 멜라민 파동 보도 역시 지극히 현상적 보도에 그치고, 정부 대책을 전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멜라민 파동을 전하는 조중동과 상당수 신문들의 상당히 한가로운, 어찌 보면 여유롭기까지 한 보도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이들 신문들은 세계 금융위기나 멜라민 파동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심도있는 보도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문제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적극적인 보도가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을 더 부추기고, 식품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국충정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촌의 세계화 추세는 그런 우물안 개구리식 보도와 접근방식으로는 더 이상 그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10월 1일자 미하원의 반란 소식을 전하는 조중동의 보도 태도가 호들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어떤 신문을 보는 것이 지구촌과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지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만 하다.


태그:#금융위기, #환율급등, #멜라민,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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