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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성은 그 유래를 살펴보면 국방 차원에서 축성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문화재 전문위원들과 함께 사료를 연구하고 주위 환경과 연계해 검토해 본 결과 국방 차원이 아닌 사신 접대 차원에서 쌓은 성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안흥성에서 태안문화관광 해설사로 관광객들의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백준기씨의 설명이다.

 

산성이 군사적 목적이 아닌 사신접대용?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안흥성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태안에서 신진도 방면으로 차로 20여분을 달려가면 신진대교가 나오는데 그 신진대교 바로 직전 왼편으로 우리가 사극에서 많이 보았을 법한 산성 하나가 있다.

 

특이한 것은 안흥성 안에 아직도 백성들이 가가호호 모여 오순도순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성주는 없다. 하지만 이곳도 마을인지라 여느 마을처럼 이장이 있어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한다.

 

안흥성의 도로 건너편에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골프장이 하나 있는데, 바다와 바로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골프장을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안흥성을 바라보면 마을 주변으로 둘러싼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그 능선을 따라 성곽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분만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일부분만 보아도 예전의 안흥성의 모습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안흥성 전체의 모습을 둘러본 뒤 지금은 마을의 초입에 마치 출입문처럼 남아있는 안흥성의 한 문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산성 안으로 들어갔다.

 

ⓒ 김동이

 

그리고는 바로 성문 위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성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아름다운 단청무늬를 자랑하는 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닮았다. 잠시 땀을 식히며 성곽 안에 서 있는데 마을 저 멀리서 노인 한 분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어르신! 저 부르시는 거예요?"

"그려! 이리루 와봐."

 

 

그렇잖아도 마을주민 만나서 산성과 마을에 대해서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한 어르신이 손짓하며 부르니 잘됐다 싶어 얼른 손짓하는 노인에게 달려갔다.

 

"뭐하러 사진찍는겨? 어디에 내려고?"

"예. 몇 번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한번쯤은 이 성이 무슨 성인가 알아보고 싶었는데 오늘 시간이 돼서 잠시 들렀어요."

 

"그려? 그럼 마침 잘됐네. 내가 여기 안흥성의 해설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여."

"그러세요? 저한테도 잘 됐네요. 그렇잖아도 궁금한 게 많았었는데요."

"그럼, 내가 궁금한 거 있으믄 설명해 줄 테니께 어여 물어봐."

 

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마냥 궁금했던 모든 것을 해설사 어르신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성곽이 이거 하나 밖에 없는 건가요?"

"아녀. 동서남북으로 성문이 다 나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성문이 가장 멀쩡하고 나머지 성문들도 그 흔적들은 다 있긴 한데 저 산등성이를 다 올라가야 나와."

 

"성 바로 옆이 바다라서 바다로 오는 오랑캐들 막으려고 축조한 거 같은데 맞나요?"

"여기(여행 안내책자)에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했다고 나오는데, 전문가들하고 사료를 통해 검토해보니께 아무리봐도 군사적 목적으로 쌓았다기 보다는 중국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어."

 

어르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요 앞 신진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섬이 신진도여. 신진도가 뭐여. 신진도(新津島). 나루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신진도여. 옛날에는 신진도가 지금처럼 다리로 연결된 섬이 아닌 뭍이었어. 거기에 나루터가 있어 가지구 중국 사신들이 그곳을 통해 들어왔고, 바로 이 안흥성이 신진도 나루터로 들어온 사신들을 영접하던 곳으로 판단하고 있는겨. 더군다나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가 볼 수는 없지만 저 위로 가면 안흥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터가 남아있기도 햐. 그러니께 이 안흥성은 군사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사신접대용 성으로 보는 게 맞을 거 같어."

 

백준기 해설사는 안흥성이 중국사신 접대용으로 축조된 성이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실은 아직까지는 검증 안 된 추측일 뿐 사실 안흥성 앞에 세워져 있는 문화재 설명 간판과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배부되는 팸플릿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1665년(조선 효종 6년)에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1500m이다. 본래는 안흥진성(安興鎭城)이라고 했는데,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배치되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후에 안흥성으로 불리었다. 성벽의 돌에는 성의 축조를 담당한 고을의 석공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인근의 19개 군민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대시설로는 4개의 성문이 있다. 동문은 수성루(壽城樓), 서문은 수홍루(垂虹樓), 남문은 복파루(伏波樓), 북문은 감성루(坎城樓)라고 하였다. 이 성은 1894년 동학혁명(東學革命) 때에 성안의 건물이 일부 불에 탔다. 현재는 출입구만 있고, 성안에는 20여호의 민가와 태국사(泰國寺) 등이 있다."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안흥성

 

 

비록 우리가 사극에서나 보아왔던 예전 성 안 마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안흥성 안에는 현재 36가구가 모여 오순도순 살고 있다. 안내문에는 20여호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해설사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세대가 늘어 현재는 36세대가 농업과 어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 주민들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오면 마을 주변에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 무더위를 식히기도 하지만, 안흥성 내에 놓여져있는 들마루에 모여 무더위를 식힌다. 이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산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 땀을 식혀준다고. 그래서 안흥성 안은 여름만 되면 동네 주민들로 북적거린다.

 

이처럼 높이 3.5m 석축으로 축조된 안흥성은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동네 주민들에게는 무더위를 식히는 공간으로서 후손들에게도 물려줄 만한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비록 아직까지 안흥성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된 성인지, 아니면 해설사와 전문위원들의 말대로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는 목적으로 축조된 성인지 그 실체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러한 숙제들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안흥성 내에 거주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안흥성을 찾는 관람객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끼고 가꿔 후손들에게 고이 물려줄 수 있도록 관리와 보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태그:#안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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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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