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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에게 잘 팔리는 100원짜리 과자들, 대다수의원산지가 중국이었다. 때로는 원산지가 적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에게 잘 팔리는 100원짜리 과자들, 대다수의원산지가 중국이었다. 때로는 원산지가 적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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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과자 사먹지 말라고 그러진 않으셨어?"

"예? 아... 중국산 초콜릿은 사먹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과자는 아닌데?"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S 초등학교 앞. 유민호(12)군의 손에는 '○감자'라는 상호가 적힌 100원짜리 과자가 들려져 있었다. 유군과 함께 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 한 손에 '라면○', '알○달○' 등이 들려있었다. 같은 질문을 던지니 정현수(12)군은 "엄마가 사먹지 말라고 했지만 100원 밖에 안하니깐 입이 심심할 때 친구들끼리 사먹어요"라며 웃었다.

아현동 A 초등학교 앞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100원 밖에 하지 않는 과자와 사탕을 낼름낼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쫄쫄이○○스낵'을 먹고 있던 서 아무개(11)양은 "입이 심심할 때마다 친구들이랑 하나씩 사서 학원에서 먹는다"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사먹지 말라곤 하신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먹고 있는 과자의 원산지는 대부분이 중국이었다. 때로는 아예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과자도 있었다. "어린이 과자 원료의 90% 이상이 수입산"이라던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보고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식약청을 불시 방문해 "초등학교 식품과 장난감을 일제 점검하라"고 지시한 날. 아이들은 중국산 혹은 원산지 불명의 과자를 먹고 있었다.

불안에 떠는 엄마들, "학교 앞에서 과자 사먹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다"

중국발 멜라민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서울시청 식품안전과 직원들이 서울 사당동 지역의 초등학교 주변 문방구에서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식품 중 분유와 우유가 함유된 중국산 및 수입산 제품의 멜라민 함유여부 검사를 위해 수거하고 있다. 서울시는 수거된 제품에서 멜라민 성분이 발견될시 즉각 전량수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서울시, 학교주변 중국산 식품류 수거 중국발 멜라민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서울시청 식품안전과 직원들이 서울 사당동 지역의 초등학교 주변 문방구에서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식품 중 분유와 우유가 함유된 중국산 및 수입산 제품의 멜라민 함유여부 검사를 위해 수거하고 있다. 서울시는 수거된 제품에서 멜라민 성분이 발견될시 즉각 전량수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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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에 만난 어머니들은 대다수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마포구 상수동 S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김 아무개(38)씨는 "대형 마트에서 파는 과자들도 지금 저렇게 난린데, 문방구 앞에서 파는 식품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8살 난 딸아이에게 이미 오래 전부터 학교 주변에서 파는 과자나 사탕 같은 것은 사먹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을 시키고 있다. 김씨는 "어제 뉴스를 보니깐 탈지분유 들어간 제품 모두가 멜라민 위험이 있는 것 같다"며 "엄마가 아이들 먹는 걸 하나 하나 챙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B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현진(38)씨도 9살 난 아들에게 친구들이랑 주변 문방구점에서 과자나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에게 1주일에 한번씩 '교육용'으로 주고 있는 용돈 500원도 아이가 중국산 과자나 장난감을 살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끊을까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멜라민이 먹을 것만 아니라 장난감 색채에도 사용된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남자 아이라 장난감을 좋아하는데 어제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중에 중국산 같은 것을 정리해서 버렸다. 요새 중국산 아닌 게 없는 데 걱정이다."

4살 난 딸과 7살 난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박현주(40)씨는 "식약청에서 괜찮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멜라민이 들어갔다는 식품이 나오나"며 "항상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매번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학교 앞 문방구점 주인, "마진 얼마 안돼... 문제가 있다면 치우겠다"

아현동 인근의 문방구점.
 아현동 인근의 문방구점.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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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방구 주인들도 입장이 난감하기 그지 없다. 대개 100원, 200원 하는 식품이 이득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닌데 굳이 놔두고 장사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아현동에서 문방구점을 하고 있는 김 아무개(50)씨는 "과자 팔아서 마진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애들이 조금이라도 많이 찾아올까 싶어서 놔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가게 선반에는 10여개의 조그마한 과자들과 사탕, 젤리 등이 놓여 있었다.

단속도 여러 차례 나온다고 했다. 구청에서 1년에 3~4차례, 학교에서도 '불시 점검' 형태로 문방구점 식품들의 유통기한 상태 등을 점검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나도 애들한테 해 끼친다고 하는 것 팔기 싫으니 문제가 있다면 치우겠다"고 말했다.

아현동의 B 문방구점 주인은 "애들은 무조건 100원짜리 과자만 찾는다"고 말했다. 국내 중견 기업에서 생산한 과자가 300원으로 오르니깐 애들이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애들이 문방구점에 자연스레 많이 올 수 있도록 비치해놓은 것인데 애들 반응이 시원찮으니깐 100원짜리 수입산 과자만 들여놓는 것"이라며 "장사가 안 돼서 뭔가 좀 나아질까 싶어 들여놓은 것이지 문방구 주인이 애들 코 묻은 100원이나 뺏으려고 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문방구점에서 과자 등 판매를 하지 않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마포구 공덕2동 K 초등학교 앞에서 9년 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O 문구 주인은 "굳이 이윤도 남지 않고 학부모들한테 인식만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장사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과자 같은 것을 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 전부터 상암동에서 문구점을 하고 있는 이 아무개(32)씨도 마찬가지. 앞서 주인에게 장사를 이어받으면서 문방구 내에서 팔고 있던 과자 등을 싹 치워버렸다.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는데 그런 식품을 팔면 이미지도 안 좋을 뿐더러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도 많았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안 좋다고 하는 식품을 파는 게 양심에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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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중국산 멜라민, #초등학교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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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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