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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후반기의 야심찬 프로젝트 까칠 삐딱 서울놀이! 첫 주자는 얼마 전 새로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되겠어요.

 용산국립박물관
용산국립박물관 ⓒ 이중현

어라? 그런데요. ‘박물관은 다리만 아프고 재미도 없고... 종로에서 스파게티가 맛있는 레스토랑 내지는 강남에서 사람 구경하기 제일 좋은 2층 통유리 카페 이런 거나 하지’ 하는 소리가 막 들려와요. 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요.

서희, '영업은 말발 좋고 똑똑한 녀석에게 시켜야 한다'는 교훈 줘 

하긴 박물관 그런 데를 누가 가나요. 하지만 고지식하다고 백스페이스 누르기 전에요. 우리가 박물관에 가 봐야 할 필요성을 한번만 봐 주세요.

박물관에 왜 가야 하느냐면요, 웃기지도 않지만, 우선 '있어 보인다'라는 게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겠어요. 휴일을 맞아 박물관을 찾는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일단 멋있잖아요. 뭔가 지적이고 교양 있어 보이고 '싸이월드' 사진첩을 더 품격 있게 꾸밀 수도 있죠. 당구장 가서 자장면 시켜먹는 거보다 훨씬 나아요.

다른 한 가지로는… 음… 이건 역사 선생님이나 하시는 게 어울릴 법한 말이긴 한데요. '역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다'예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선연중인명선 하면서 망한 왕가 족보나 줄줄 외우는 건 제대로 된 역사공부라고 할 수 없잖아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배울 만한 걸 배우는 게 진짜 역사공부죠.

당과 손잡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긴 했어도 만주 땅은 당나라놈들한테 다 뺐긴 거 아시죠? 이런 역사가 있어서 우리가 '집안 싸움에 남을 끌어들여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라는 교훈을 얻은 거예요.

그리고 고려를 침범한 거란군에게 서희가 협상 잘해서 되려 옛 고구려 영토를 되찾은 역사가 있었잖아요. 이로 인해 '영업은 말발 좋고 똑똑한 녀석에게 시켜야 한다' 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구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예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데이터 베이스를 잘 축적해서 똑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아도 최소한 중간은 갈 수 있어요.

음… 별로 설득력이 없었나요? 하긴 우리가 무슨 역사학자도 아니고, 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나 왕관 같은 걸 본다고 해서 없던 지혜가 '짠'하고 생기는 건 물론 아니지요.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어렴풋이 조립해 나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박물관의 유물들은 우리 역사의 생생한 증거물이고, 과거를 보여주는 열쇠예요. 백제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직접 보고 나서야 일본 국보 1호 광륭사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더라도 '이거 뭐야 똑같잖아. 한국산 소나무로 만든 거래매? 우리 것 가져와서는 국보 1호로 모셔 놨구만. 오호라 일본애들 쪽 팔리니까 요즘은 국보에다 번호 안 붙인다지?' 하면서 진심을 담아 비아냥거릴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게다가 진퉁이잖아요. 오리지널이에요. 저 때깔 고운 고려청자 한 번 볼까요? 저게 '귀주대첩' 강감찬 장군이 쓰던 요강인데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 마당쇠가 들고 튀었던걸, 나중에 나까무라 총독이 이완용 셋째 아들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식으로다가 1000년 역사의 순간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녀석일지도 모르잖아요.

 강감찬 장군댁 요강?
강감찬 장군댁 요강? ⓒ 이중현

그렇기 때문에 역사 좀 된다 하는 나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땅값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심 한복판에다가 커다란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거예요.

프랑스의 루브르부터, 대영 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브리튼 박물관, 바티칸시티의 바티칸 박물관 그 외 기타 등등. 뉴욕에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라고, 근본도 없고 역사도 짧은 미국 애들도 박물관 하나는 무진 크게 지어 올리잖아요. 역사 이거 되게 중요한 거예요.

그럼 우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요? 규모로 말할 것 같으면 대지 10만 평에 건물 길이는 400미터! 연 면적으로는 세계 6대 박물관 규모이고, 단일건물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에요. 소장 유물은 15만 점 이상, 국보 59점, 보물 79점. 자랑스러워할 만한 거예요.

이왕이면 우리 식으로 짓지 그랬어

자,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서 안내 표지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이 열린 마당을 통해서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돼요. 천장이 있으니 야외는 아닌데 벽이 다 터져서 바람이 숭숭 통하기도 하니 로비나 아트리움이라고 부르기도 참 애매하고 그런 공간이네요.

 박물관 입구의 주 출입공간
박물관 입구의 주 출입공간 ⓒ 이중현

한여름의 햇볕을 막아 주면서도 바람을 쐬고, 새소리 매미소리 들으면서 쉴 수 있는 곳, 우리 고유의 대청마루라는 공간을 나타낸 곳이래요. 여기서 가끔씩 야외 공연도 하고 전시회도 한대요.

멀리 보이는 남산 서울N타워 사진을 찍으려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거든요. 화강암 바닥이 따땃하게 익은 게 참 기분 좋아요. 주변 사람들 시선을 감수할 자신이 있으면 한번 드러누워보는 것도 괜찮아요.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볼까요? 높다란 천장과 채광창이 참 인상적이네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유리창이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햇빛을 받아들인대요. 이렇게 인공조명 대신 자연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요즘 건축술의 세계적인 추세라는데요.

 널찍하고 시원한 채광창
널찍하고 시원한 채광창 ⓒ 이중현

글쎄요. 예쁘고 깔끔하긴 한데, 그래도 '국립' '중앙' 박물관이잖아요. 반만년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공간이라고요. 대청마루를 형상화한 입구의 공간은 무척 마음에 들었었는데, 기왕이면 박물관 내부도 서까래, 툇마루, 청기와, 단청 같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반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건축양식이 사실 규모가 큰 건물에는 그리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이나 에도도쿄박물관만 해도 그쪽 목조건축양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거든요.

ⓒ 각각의 박물관 홈페이지

이거 봐요 얘네는 박물관을 자기네 전통양식으로 지어올렸잖아요. 문화재청이 바보도 아니고 그만한 고민을 안 해봤겠느냐마는 그래도 가장 한국적이어야 할 건물을 가장 서구적으로 지어놨으니 아쉬운 마음에 시비를 걸게 되네요.

삼각대나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으면 전시물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가 있어요. 고 손기정옹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 기념 투구를 보니 가슴이 벅차 오르네요. 저도 한 때는 마라톤 하프코스 21킬로미터를 몇 번이고 완주했던 관록의 마라토너랍니다.

 고 손기정 옹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 기념 투구
고 손기정 옹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 기념 투구 ⓒ 이중현

신라 금관총금관이나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같은 건 워낙 유명하니 패스하도록 하죠.

 구례 화엄사괘불
구례 화엄사괘불 ⓒ 이중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구례 화엄사 괘불이에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구성의 불교그림이라는데 사실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일단 무진장 크니까 기억에도 가장 오래 남더라구요. 외부로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아니고요. 그보다 전에 나온 조선 실학자 정상기의 동국지도예요. 대동여지도는 사실 유명세에 비해서 역사 가치가 그리 높지는 않다는군요. 그냥, 동국지도와 다른 지도를 잘 정리한 완성형 짜깁기에 불과하대요.

 정상기의 동국지도
정상기의 동국지도 ⓒ 이중현

김정호가 백두산을 몇 번씩이나 오르내려가며 뼈 빠지게 지도를 만들어 놨더니 대원군에게 반역죄로 몰려 옥사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고요. 일제가 국민에게 패배주의를 불러오기 위해 노골적으로 조선 지배계층을 비하해서 퍼뜨린 이야기예요.

지방 사는 선비가 과거 시험 보러 한양 한번 가려면 논 팔고 밭 팔아야 하던 시절인데, 몰락 양반인 김정호가 무슨 돈으로 전국을 그렇게 싸돌아다녔겠어요. 지도 제작이 반역죄이면 대동여지도 원판이나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도 없죠.

게다가 조선총독부의 조작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대동여지도에는 독도나 간도 같은 우리 영토가 나타나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은행이 10만 원권 새 화폐 뒷면 보조 모델로 대동여지도를 선정하려고 했다가 학계와 여론으로부터 적잖이 두들겨 맞기도 했었고요.

그렇게 말들이 많다 보니 박물관측에서도 대동여지도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동국지도를 바닥에다 깔았나 봐요. 바닥을 직접 밟고 서서 한성, 평양, 광주, 개성 같은 지명을 찾아보는 재미가 괜찮았어요.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는 대강 이 정도로만 할게요. 까칠한 한편으로 소심한 저는 우리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다가 전문가 분들한테 '그거 아닌데요'하고 반박 한방 맞고 '깨갱'할까봐 무척 겁이 나거든요.

제대로 된 설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도 있어요.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방문 전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두는 게 좋아요.

박물관을 나와 보니

다시 밖으로 나와서 남산쪽을 바라볼까요? 용산은 예로부터 서울 사대문의 입구였죠. 인천에서 배에 화물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경강 상인들이 몰려드는 포구였고, 상인들이 많이 모이니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대요. 지금은 지도상으로 팽창한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서요, 마땅히 서울에서 제일 가는 노른자위 땅이 되어야 하는 곳이에요.

 박물관에서 보이는 용산 미군기지
박물관에서 보이는 용산 미군기지 ⓒ 이중현

박물관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남산이 보이긴 하는데요. 응당 인구 천만 거대도시 서울의 허브로 기능해야 할 그 아래 90만 평 광활한 공간에 있는 건 중심 상권도 아니고, 공업지구도 아니고, 하다 못해 주택단지도 아닌, 미군기지예요.

박물관 개관에 맞춰서 박물관 근처의 미군기지 담장은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은 저쪽 편으로 갈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 사법권,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사실상의 치외법권지역이거든요. 가까이 가서 고개 길게 빼고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길다란 몽둥이를 허리에 찬 경찰 아저씨들이 가로막아요.

여기서 바라보니 기지 내 부대시설인 축구장과 야구장, 골프장이 보이네요. 저 편에 보이는 빨간 건물은 '드래곤 힐 로지'(Dragon hill lodge)라는 호텔이에요. 용산은 한문으로 용용자에 산산자를 써서 '龍山'이라는 지명인데 어찌 마운틴(Mountain)이 아니라 언덕을 뜻하는 힐(Hill)을 붙였는지 원. 지명 갖다 붙인 것만 봐도 저 친구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빤히 보이지 않나요?

저기가 일제시대 때는 조선왕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거든요.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일본이 물러가고 나서 미군애들이 은근슬쩍 눌러 앉아 버린 게 벌써 50년이 넘었군요.

 멀리 보이는 남산 서울N타워
멀리 보이는 남산 서울N타워 ⓒ 이중현

이제 와서라도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되고 서울시민들이 용산 땅을 되찾기로 결정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에요. 여기서 더 따지고 들어가자면 기지이전비용이나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보상 문제 같은 구린 구석이 꽤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이게 그래도 명색이 국립중앙박물관 소개 글이거든요.

어쨌건, 용산 기지가 이전되고 부지가 시민공원으로 개발될 것에 대비하여 미군기지 방향으로도 진입공간과 광장이 준비되어 있어요.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 하이드 파크, 파리의 뤽상부르가 부럽지 않을 도심 속 초대형 공원이 탄생될 거라 하네요. 그리고 그 입구에 당당히 서게 되면서 진짜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이 될 국립중앙박물관을 기대합니다.

휴. 첫 드디어 꼭지를 다 썼네요. 요 며칠 동안, 이 코너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말고도 서울의 다른 가 볼 만한 곳을 꽤 돌아다녀 봤어요. 전쟁 기념관, 용산 전자상가, 이태원 이슬람사원, 장충동 왕족발 골목….

대강의 느낀 점이라면, 역시 600년 역사와 천만 인구를 가벼이 봐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자료 수집을 위해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모르던 것도 많이 알게 됐고, 무엇보다 제 가슴이 쿵쿵 뛰더군요.

설레발이 아니고, 왠지 무척 재미있는 시리즈가 될 것 같아요. 어쨌거나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 꼭지도 모쪼록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는데 건강 유의하시구요.

조만간 새로운 글 올릴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slrclub.com, www.prettynim.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짜시인#까칠삐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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