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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길 위에 있다고 한다. 맞다, 그들은 길 위에 있다. 어쩌면 길 위에 있는 편이 훨씬 잘 어울릴런지도 모른다. 그들은 길 위에 있을 때 더 주목 받았다. 지난 2003년 3월 28일에는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300km 넘는 구간을 65일간 '삼보일배' 순례했다. 당시, 각종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길 위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고 또 다른 한 명은 불교환경연대 수경 스님이다. 그 뒤로 문 신부와 수경 스님 뜻에 동조하는 많은 이들이 순례길 길동무가 되어 주고 있다.

 

이번에는 삼보일배가 아닌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다. 오체투지란 양 무릎, 양 팔꿈치,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게 절하는 인사법이다.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신의 몸을 지저분한 땅에 닿게 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있는 교만함을 떨쳐버리고 가장 낮은 하심(下心)으로 가자는 것이다.

 

"여러분 소망이 곧 우리의 기도입니다"

 

순례는 지난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됐다. 4일 오후 1시 20분, 두 사람은 지리산 노고단 계단을 기점으로 사방에 절을 하는 것으로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순례를 시작하는 노고단에는 취재진 30여 명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문정현 신부, 김지하·박남준·이원규 시인, 이부영 전 의원 등 50여 명이 두 사람의 오체투지 순례 첫길을 지켜봤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은 아픔이 있는 많은 곳을 둘러봤다. 9월 2일, 40m 높이 철탑에서 고공농성중인 KTX-새마을호 여승무원들과 1000일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59일째 조계사에서 농성 중인 촛불 수배자들을 만났다.

 

당시, 84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소현(38) 기륭전자 분회장은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우리가 더 열심히 싸울게요"라며 고행 길을 떠나는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을 오히려 걱정했다.

 

문 신부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김 분회장 손을 잡고 "여러분들 소망이 곧 우리 기도"라며 기도하듯 위로했다.

 

59일째 농성 중인 촛불 수배자들은 "건강히 다녀오시라"며 고개를 숙였고, KTX-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은 '오체투지 순례자'들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손을 흔들었다.

 

이처럼 '기도, 사람의 길·생명의 길·평화의 길을 찾아' 떠나는 오체투지 순례단의 첫 걸음은 이 땅의 상처받고 외로운 이들을 향해 있었다.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은 이렇게 서울을 떠나 평택 대추리에서 이주민들을 만나고, 지난 3일 물길이 막힌 새만금 갯벌을 돌아봤다.

 

문 신부 "소리 없는 저항"... 수경 스님 "내가 가야 할 길"

 

2003년 두 사람이 삼보일배를 한 이유는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삼보일배보다 훨씬 더 힘겨운 '오체투지' 순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순례를 떠나며 직접 남긴 문 신부와 수경 스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은 자신들 심경이 담긴 글을 순례를 떠나기 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

 

문 신부는 "다시 순례 길을 떠납니다.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 통치방식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표현했다.

 

문 신부는 글 중간에 그 의지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혔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합니다. 오로지 돈과 일등놀이에 몰두하는 사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음을, 성공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은 사회는 죽은 공동체임을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또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열고자 하는 소망을 가득 담고 있다. "우리의 고행이 도리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순례가 위로의 길, 용기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듯 소망을 전한다. 

 

수경 스님도 문 신부 뜻과 다르지 않다. 수경 스님은 "나라 사정이 어지럽습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니 몸이 고달파지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니 인간적 자존감이 상처를 받습니다"라며 그 원인을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방식이라 성토했다.

 

또 이러한 국정 운영방식이 민주주의와 생태, 인권의 위기는 물론 종교 간 대립까지 부추겨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사회 구성원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는데 있다고 했다. 대통령답게, 기업가답게, 국회의원답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는 것.

 

수경 스님은 "그래서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라고 글 말미에 선명하게 명시했다.

 

9월 23일, 지리산 순례 마치고 전북 임실 부근 도착

 

두 사람이 순례를 떠난 지 오늘(9월 24일)로 21일째다. 함께 순례 길에 오른 김형근 선생에 따르면 수경 스님이 무척 힘들어 한다고 전한다.

 

그는 무릎을 쓸 수 없어 팔에 온 힘을 싣고 오체투지를 했기 때문에 팔 근육이 모두 뭉쳐있다. 이에 순례단은 두 성직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진행 속도를 줄이고, 매 쉬는 시간마다 수경 스님의 팔 근육을 풀어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김형근 선생은 통일등반행사와 관련,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 반포 혐의로 지난 1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김형근 선생은 문규현 신부가 있는 성당 신자라는 인연으로 이번 오체투지 순례에 함께하게 됐다.

 

순례단은 약 2개월간 지리산과 계룡산을 순례할 예정이며, 2009년에는 임진각을 거쳐 북한에 있는 묘향산으로 향할 예정이다.

 

출발 전, 기륭전자 방문 당시 "북한 가는 것은 미리 당국과 협의가 진행됐느냐?"는 한 노동자 질문에 문 신부는 "휴전선 넘을 때 내가 언제 당국과 협의하는 것 본 적 있느냐?"고 반문했다. 문 신부는 지난 89년 임수경씨 방북 때 동행, 그해 8월 15일 판문점을 거쳐 임수경양과 함께 돌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적이 있다.

 

비극이었다. 이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시대 비극은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는 데 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생명과 평화의 염원을 실천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성직자는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지 절대 손가락질 받거나 감옥에 갇혀야 할 사람 들이 아니다. 

 

지난 23일, 순례단은 전북 남원에 있는 춘향 고개를 지나 대정리에서 하루 일정을 종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목표 지점 대정리보다 약 1㎞를 지난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 삼거리를 목전에 두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고 전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성직자 상체는 온통 부황 자국이라 전한다. 두 성직자는 서로 부황을 뜨며 순례의 노곤함을 이겨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생명평화'를 찾는 진리는 하나임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길 위에 있는 신부와 스님이 오체투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에는 종교간 갈등 계층 간 갈등 지역 간 갈등이 모두 사라져 평화롭게 서로 소통하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투데이 로우 유포터 뉴스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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