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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서 살던 작년 추석까지만 해도 형님댁에서 아내와 딸을 만나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이사한 올해는 가족 모두가 집에서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추석날 아침 일찍 형님댁으로 가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했습니다.

추석날 산소에서 절을 하는 조카며느리들과 조카손녀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은 남자는 절을 두 번만 하는데 여자들은 왜 네 번을 해야 하느냐며 불만이 많습니다..
 추석날 산소에서 절을 하는 조카며느리들과 조카손녀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은 남자는 절을 두 번만 하는데 여자들은 왜 네 번을 해야 하느냐며 불만이 많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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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장모님이 결혼 후 처음으로 집에서 이틀을 묵고 가셨고, 서울과 강원도에 사는 조카와 조카며느리들을 처음으로 집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했기 때문에 즐겁고 보람 있는 추석을 보낸 것 같습니다.

삼겹살과 밑반찬은 셋째 누님에게 부탁해 놨고, 형수님이 부침개 등을 싸오셔서 편하고 풍요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었는데요. 손맛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버금가는 셋째 누님의 삼겹살 양념구이는 그날의 백미였습니다.

추석 손님 치르기는 지난 8월 23일 조카들과 벌초를 하고 집에서 삼겹살 잔치를 벌였던 경험을 살려 열다섯 명이나 치렀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요. 음식 준비하랴, 어른들 용돈 드리랴 경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계부를 정리하다 깜짝 놀라며 '웬 돈이 이렇게 많이 나갔다냐. 추석 손님 치르기, 그것 꼴로 볼 것 아니네…'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왔으니까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모님 방문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장모님 신발. 신발 안에 볼펜으로 적은 전화번호가 동서와 처제가 장모님을 얼마나 정성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장모님 신발. 신발 안에 볼펜으로 적은 전화번호가 동서와 처제가 장모님을 얼마나 정성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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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부산에 사는 처제와 동서가 모시고 있는데요. 장모에게 대하는 말씨가 닭살이 돋을 정도이고 공경심이 올림픽 금메달감인 동서가 추석 이틀 전 고향인 충남 예산에 가면서 제가 이사한 집을 둘러보고 싶어 하던 장모님을 고향인 대야에 모셔다 드리니까 막내처남이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저도 군산에 집을 계약한 날부터 장모님에게 "이사할 집이 넓고 큰 방이 두 개나 되니까 추석에 오시면 푹 쉬었다가 가세요"라는 당부를 몇 차례 했고, 부산에 살면서 마음속까지 스며든 정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래도 장모님은 사위와 단둘이 있으니까 긴장이 되어 그런지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요. 밤 11시가 넘어 퇴근한 아내는 어머니(장모)를 보자, 반가운 친구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달려들며 "엄마! 집 넓고 좋지?"라며 좋아했습니다. 오랜만에 편한 자리에서의 상봉이니 기뻐할 만도 하지요.

이튿날 아침 청소를 하던 아내가 부르기에 가보았더니 현관에 놓여 있는 장모님 구두 안창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더군요. 은으로 만든 목걸이에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 자녀들 목에 걸어주는 게 유행했던 시절이 떠오르며 웃음이 나왔습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예배를 보러 다닐 정도로 정정하다고는 하나 82세의 노인 신변을 걱정하는 처제와 동서의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추석에 처음으로 가족을 초대하다

추석을 열흘쯤 남겨놓고 저와 아내는 상의 끝에 추석날 성묘를 마치면 가족을 모두 집으로 초대해서 삼겹살을 대접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해서 친정어머니 식사를 챙겨 드리고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추석날 아침에 차례만 지내고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 산소로 올라가는 산길. 야트막한 비탈길인데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방죽이 옆에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부모님 산소로 올라가는 산길. 야트막한 비탈길인데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방죽이 옆에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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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딸과 함께 아침을 일찍 먹고 형님과 형수, 동생 내외, 서울과 강원도, 광주에서 온 조카며느리들과 조카 손자 손녀들과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강변도로를 따라 부모님 산소로 향했습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을 가슴에 안고 가면서도 아내도 없이 혼자서 손님맞이 할 생각을 하니 부담스러우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방안에 가득한 걸 좋아하고, 가족모임을 즐겼던 탓인지 한편 기쁘기도 했습니다.

금강을 바라보는 오성산 줄기가 감싸고 있는 아늑한 성덕리에 도착, 밤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들이 영글어가고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는데 초가을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추석날 성묘를 마치면 산에서 간단히 음복을 하고 형님댁으로 가서 송편과 부침개를 안주로 술 한 잔씩 나누면서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상례였는데, 올해는 가족 모두가 산소에서 저희 집으로 직행했습니다.     

철새도래지 전망대가 있는 강변로를 따라가면 산소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집에 도착, 셋째 누님과 매형을 초빙해서 음식 준비에 들어갔는데요. 국물이 달착지근하면서도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그만인 셋째 누님의 '돼지고기 콩나물국'은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인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저희 집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추석에 손님을 맞았던 점심상. 양념삼겹살 맛도 그만이지만, ‘돼지고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파김치를 걸쳐 먹는 맛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추석에 손님을 맞았던 점심상. 양념삼겹살 맛도 그만이지만, ‘돼지고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파김치를 걸쳐 먹는 맛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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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양념 삼겹살'을 안주로 '돼지고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점심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며칠 전 선물로 들어온 포도를 내놓았더니 작은 조카며느리가 "포도는 저보다 애들이 더 잘 먹어요"라며 좋아하더라고요. 조카 손자들이 좋아한다는 얘기를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어 마을 근처 포도농원에서 재배한 포도를 직판하는 길가 포장마차에 가서 한 상자를 샀습니다.

없는 살림이라서 큰 조카며느리와 나눠 주려고 상자 하나를 더 얻어오니까, 옆에 있던 동생이 "형님, 걔들도 친정에 들려갈 터인데 선물이 너무 약소한 것 같습니다"라며 한 상자를 더 사더니 트렁크에 실어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부산의 처제와 동서가 마음에 걸려 한 상자를 더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걸 깨우쳤던 추석

추석 이튿날 장모님과 딸이 떠나는 것으로 추석을 전후해서 집에 오셨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는데요. 결혼해서 지금까지 추석을 스물일곱 번 맞이하면서 어른들 용돈이나 선물 대금으로 사용해왔지만, 20만 원 넘게 지출한 올해가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밑반찬 대금과 용돈으로 아내에게 매월 20만 원씩 받고 있는데, 추석을 전후해서 쓴 돈을 계산해 봤더니 20만 5천 원을 지출했더라고요. 삼겹살과 불판, 상추 등 먹을거리 비용은 처음부터 제가 내기로 했으니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물 대금이 엄청나게 불어나 제가 쓰고도 놀랐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나도 없는데 수고하셨다"라며 11만 원을 추가지급해주기로 해서 적자는 면할 것 같네요.

점심을 먹은 손님들이 돌아가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일이 없는데, 동네 놀이터인줄 알고 술래잡기를 하며 떠드는 아이들을 말리고 심부름을 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어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주부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번 추석은 작은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소리 듣기가 무척 어렵고, 처남 노릇, 사위 노릇 하기도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날입니다. 또 설이나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들리는 주부들의 깊은 한숨소리와 '명절증후군'도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태그:#추석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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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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