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은 범선에 몸 싣고 큰 바다로

 

무려 76일이다. 스티븐 캘러핸은 바다에서 홀로 표류한 채 그 시간을 버텼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표류>는 그가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 캘러핸은 해양모험가였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그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그는 돛대 하나를 단 작은 범선으로 바다에 나섰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도 그랬다. 그는 작은 범선 하나 타고 홀로 바다에 나섰다. 해양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주위에서 말려도 고집 끝에 나간다. 바다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게다.

 

하지만 바다는 변덕스러웠다.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변덕을 부렸다. 그의 범선은 순식간에 전복됐다. 그는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한다. 비상용 물품들만 갖고 고무보트에 운명을 맡긴 것이다.

 

바다가 진정됐을 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위치로 볼 때 구조되는 것이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배가 난파된 곳은 외딴 곳이었다. 배들의 경로를 완전히 비껴났기 때문이다. 무작정 기다리려 해도 음식은 이제 곧 떨어진다. 마실 물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가 생존한다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해보였다.

 

살아남는다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 그러나…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써서 증류기를 만든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는 조금씩 마실 물을 확보해간다. 음식은 어떤가. 그는 물고기를 잡는다. 고무보트의 아래에 매달린 영양소를 먹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물고기들을 포획하는 것이다.

 

별다른 장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는 물고기를 잡았고 익히지 않고 먹는다. 살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상어가 나타나 고무보트 아래로 지나가기도 한다. 바다가 변덕을 부려 고무보트를 장난감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고무보트에 물이 차는 일이 숱하게 벌어진다. 그는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그것을 막아낸다. 그 사이 고무보트는 조금씩 이동한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움직였다.

 

<표류>는 에세이답게 생생하다. 소설이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고무보트에 의지해 76일간 표류하던 남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 순간들부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애쓰고 그것을 조리할 겨를도 없이 먹는 순간들, 그리고 바다의 변덕에 맞서 혈투를 벌어야 했던 순간들까지, 어느 것 하나 생동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것이니 당연한 것이리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 책을 가장 뛰어난 모험서로 선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표류>는 모험서라는 말보다는 '생존 분투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이 생존분투기는 누가 보면 좋은가? 바다에 나갈 미래의 모험가들인가? 맞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건대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 76일동안 표류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만큼 간절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황금부엉이(2008)


태그:#에세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