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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때려잡고 친기업으로 어떻게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느냐."

 

9일 밤 TV 앞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고, 전문가들은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의 비정규직 해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에겐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단식이 100일을 바라보고, KTX 여승무원들의 고공농성이 15일을 맞은 상황에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한때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다, 이해 당사자가 모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세제상의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어 이 대통령은 "장기 투쟁사업장의 사업주와 만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3자 개입 없이 타협을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가 좋아지면 고용이 늘어난다. 정부는 경제가 좋아지도록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 비정규직 사업장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애써 기대를 한 자신을 자책하며 TV 채널을 돌려버렸다.

 

 

"노사간 타협? 여당 말도 안 듣는데 비정규직 말 듣겠나?"

 

김영선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은 9일 밤 TV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일 아침 신문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의 "3자 개입 없는 타협" 발언을 보고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40m 조명철탑에 올라가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15일째 고공 농성하는 동료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다. 또한 낮엔 덥고, 밤에 춥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젠 언론 인터뷰도 못한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3년째 '우리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커져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며 "정부조차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우린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어떻게 죽어나가야 (정부와 코레일이) 꿈쩍하겠느냐"고 소리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사간 타협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홍윤경 이랜드 일반노조 사무국장은 "코스콤, 기륭전자 등 사측은 법을 어겨도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또한 차별시정이라는 비정규직법의 취지도 현실화되지 않고 있는데, 노사끼리 무슨 타협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여당이 해결을 요구해도 묵묵부답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월 10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랜드 경영진을 불러 사태 해결을 요청했지만 배짱을 부리고, 이종규 코스콤 사장은 사퇴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아직까지 꿈쩍 않고 있다.

 

노동계 한쪽 때려잡고 사회적 대타협?

 

"이해당사자간 사회적 대타협이 무슨 의미냐? 비정규직 문제를 뭘 어떻게 풀어간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정규직 문제 관련 발언에 대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뜬금없이 사회적 대타협을 들고 나왔다"는 반응이다.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는 지난해 7월 비정규직법이 시행될 때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전 국민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책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사회적 대타협'만 외친 셈이다. 정부 출자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이해당사자'라는 표현이 노사만을 의미한다면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임상훈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타협은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사정 위원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을 그 위원장에 앉혔고, 정부 출범 이후 6개월간 노사 관계에 대해 논의된 것도 없다"며 "사회적 대타협이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한다는 의지를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지금껏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사회적 대타협 정신과 배치됐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의 한축인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이해당사자간의 문제라며 손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27일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기륭전자 문제 관련 토론회에서 임동희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 서기관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앞에 두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사측이 수용하면, 법을 무시하는 투쟁 지향적이고 잘못된 노동운동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노총 지도부 검거하고 사무실 봉쇄 탄압하면서, 무슨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노동계 한쪽은 때려잡고 다른 한 편에선 친기업 정책으로 나가는 게 이해당사자간 사회적 대타협이냐"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우리도 국민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 삼은 이 대통령 발언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가 좋아져야 한다, 경제가 좋아지면 기업들의 고용이 늘어난다, 정부는 경제 좋아지도록 힘을 쏟겠다"라고 한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성장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8일 기획재정부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GDP 증가율은 5%로 OECD국가 중 5위였지만, 고용성장률은 불과 0.1%P 상승하는데 그쳐, OECD 최하위권이었다.

 

이병훈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매우 그릇되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정책 구상이 없다, 매우 공허하다"고 강조했다.

 

정인열 코스콤 비정규지부 부지부장은 "임기 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성공시대를 부르짖었는데, 우리도 거기에 포함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태그:#비정규직,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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