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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일련의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하여 불교계에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수습할 모양이다.

 

이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본의는 아니겠지만 일부 공직자가 종교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언행이 있어서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종교편향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교육도 주문했다.

 

여당과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유감 표명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지만, 불교계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 대통령 직접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등의 애당초 요구사항에 크게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감'과 '사과'는 하늘과 땅 차이

 

사실 사전적 의미로만 보아도 '유감'과 '사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고,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을 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유감 표명도 그나마 등 떠밀려 억지로 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들은 이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단 사과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즉, 대통령 자신은 잘못한 것도 없고 용서를 빌 일도 없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긴급안건으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에 따른 차별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된 '공무원복무규정' 개정안이 상정, 처리되었다. 그러나 종교차별금지 관련 법제화 요구가 거세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일회용 소화기를 꺼내들었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이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4일 국회에 제출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보다도 훨씬 약한 수준이어서 솜방망이 규정이라는 비판도 면할 수 없다. 한편, 나 의원이 개정안을 제출한 다음날인 5일 한기총은 종교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을 잽싸게 내놓았다.

 

나 의원이 제출한 안은 공무원복무규정과 같은 대통령령이 아닌 법령에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종교를 이유로 차별행위를 해선 안 되며, 이를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벌칙조항이 명시돼 법적 강제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종교차별금지법 제정해야

 

사실 종교차별, 종교편향 문제는 불교계가 이에 홀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불심 달래기 차원으로만 접근한다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이다. 사실 유감 표명이나 사과도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련의 사례들이 단지 불교계를 차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넘어 헌법 제20조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은 물론 교육감까지 이러한 종교차별, 종교편향에 연루된 상황이고, '성시화운동'과 같이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과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이를 부추기고 있는 형편이다. 때문에 이를 방치한 채 나오는 대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물론 종교차별금지법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구체적인 안을 놓고 토론도 해야 하고 여론도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편향 문제를 일부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로 취급해 이를 막고 보자는 것으로는 안 된다.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교육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종교차별과 관련한 쟁점들을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되돌아보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과 정부가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정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도 은근슬쩍 위기만 모면하고 보자는 심산이 너무 빤하게 보인다. 그사이 국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쌓여만 간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태그:#이명박, #종교편향, #종교차별, #종교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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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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