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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생각해서 가방 하나 골랐어. 이거 그래두 명품이야."

 

동생이 내 선물이라며 가방을 건넸다. 그러면서 명품을 강조한다. 가방 끈을 어깨에 걸치고 '괜찮네'라고 말하자 동생은 내 반응이 별로였던지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코*'라는 매장에서 직접 산거라 짝퉁 아니야."

 

동생은 그 가방이 우리 돈으로 40만원은 넘는다고 했다. 얼마 전, 외국출장을 다녀온 동생이 고맙게도 내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새 물건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대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가방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런데 지퍼가 가방가운데에만 있고 양쪽으로는 별다른 잠금장치가 없다. 나는 그게 영 이상해서 가방을 안아들고 자꾸 속을 뒤졌다. 눈에 띄는 게 없자 왠지 허전하다.

 

"이 가방은 근데 왜 가운데만 지퍼가 있는 거야? 여기에 뭘 넣으면 속이 다 보여서 어떡하니?"

 

동생이 나를 보고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 소리 한다.

 

"누나두, 참. 이 가방이 뭐 책가방인줄 알아? 중요한 건 자크 있는 곳에 넣고, 금방 찾아 쓸 물건들은 자크 없는 양쪽에 넣어도 되거든요!"

 

동생이 돌아갔다. '명품'에 반색은커녕, 가방이란 거는 보따리 꼭꼭 동여매듯 아가리가 딱 맞게 잠가야 하는 누나의 촌스런(?) 감각을 안쓰러워하면서.

 

"어휴~ 가방 하나에 무슨 돈을 40만원이나 쓰나, 선물대신 그냥 돈으로 주면 얼마나 좋아."

 

나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앞에서 보고 옆에서 보면서 궁시렁댔다. 동생이 들으면 서운할 소리였다. 명품가방 '코*'는 아무렇게나 편하게 입는 티에 무릎 나온 팔부바지의 내 옷차림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양새로 잠시 내 몸에 붙어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서 선물을 드려야 할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는 시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시다. 어머니는 아들 딸 며느리 손자손녀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받으신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아마 그러실 것이다. 올 여름 아흔한 번째 생신 때는 외손자내외로부터 당신 선물을 무려 세 가지나 받으셨다. 네발로 된 지팡이 같은 '워커'와 한복, 그리고 용돈이었다.

 

워커는 걸을 때마다 불편한 어머니 다리역할을 톡톡히 했다. 연한 보랏빛 한복은 어머니 몸에 맞춰온 듯 꼭 맞아서 아주 흡족해 하셨다. 그리고 현금이 들어있는 흰 편지봉투는 어머니 입을 귀에 걸게 했다.

 

어머니는 가끔, 생신이나 명절 분위기가 지나고 조용해질 때면 받아놓은 선물을 꺼내 보이신다. 하나씩 선물을 짚어가면서 좋은 물건이지만 당신이 쓰기에 부담스럽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한테 더 유용하게 쓸 물건인지 가늠하신다. 그렇게 해서 내가 받은 물건만 해도 덧버신이나 손수건, 머플러 따위가 있다. 어머닌 '이런 건 비싼 돈 주고 뭐하러 사오느냐고'하시면서 '그냥 돈으로 주면 좋잖아'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마음이 지금 딱 내 마음이 되었다. 

 

선물 받을 사람 나이를 생각하면서 중년이니까, 노인이니까 이 물건 정도면 괜찮겠지 해서 고른 선물. 정작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 맘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어머니는 서울 손녀딸이 사온 효도용 신발을 잘 받아놓으시고 한 번도 신지 않으신 적도 있다.

 

선물에는 마음이 담긴다. 그런데 받는 사람에게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기도 한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고춧가루나 메주를 사는 일에 용돈을 즐겁게 쓰신다. 손자손녀들에게 덕담을 하면서 일일이 용돈을 건네는 것도 좋아하신다. 어머니에게 선물은 까다롭다. 그래서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드릴 수 있고 언제나 환영받을 수 있는 선물은 역시 현금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세종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 선물,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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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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