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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안정효 선생님의 글을 좋아한다. 그 분이 번역한 수 많은 책들과 저서들을 대하다 보면, 어느때는 경외감을 느낀다. 조희봉씨가 [전작주의의 꿈]에서 안정효선생님을 "한없이 차갑고 고독한 작가"라고 했듯이, 그 분의 꼼꼼하고 정교한 번역은 이미 출판계에 알려져 있다.

 

<백년동안의 고독> <뿌리> <대지>등 번역서와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하얀전쟁> <은마는 다시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근년에 발표한 <지압장군을 찾아서>등 장편소설과 많은 영화담론을 담은 저서들, 그리고 영어공부 책까지 .

 

이제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바라보는 그 분의 글쓰기 철학은 무었일까? 궁금해지는데, 이번 [글쓰기 만보] 책의 목차를 한번 훑어보면 내용이 녹록지 않지만, 글쓰기의 구체적 방법론과 글과 관련한 인생체험도 소개하고 있어, 글쓰기를 넘어 인생의 지침서로 좋은 반려자가 될 것이다.

 

 인생살이 만보

 

''만보(漫步)''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속의 이곳 저곳을 한가롭게 구경시켜준다. 책을 읽다보면 등장하는 수많은 저작물, 영상물속의 주인공,내용들에 압도되어, 가끔은 독자로 하여금 움추려들기도 하며 (부록의 인명,작품목록을 참조), 책의 구성도 오락가락 돌아다니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저자의 숨은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글쓰기가 쉽지않을뿐더러, 하루아침에 영감을 얻어 일필휘지로 써내려 가겠다는 ''자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며, 모름지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하나로 어울려지는 응집물이 되어야 한다. 창조는 자료에서 나오고, 그 자료가 쌓이고 엮여 발효가 되면 작품을 만들어내는 어찌보면 ''아키비스트''(기록관리 전문가)적인 저술가라고....

 

이번 책 역시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오며 숙성을 거친 결과물인데,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실용적인 글쓰기 지침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이론 설명에는 어김없이 저자의 만화그림이 숨고르기를 해주고, 중요하다 싶으면 계속 반복되어 각인시켜주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문도 나와있고, 수업을 받기 위해 예습도 해야 경우도 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책 사이에 나오는 저자의 인생의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맛을 더해준다. 청춘을 담보로 수많은 책을 읽고 번역하고, 때로는 소설을 써가며 세상이 어리석어 자신의 위대한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조바심속에 살다가, 마흔이 넘어서는 세상을 남들에게 모두 빼앗겨버린 듯한 삶을 폐광처럼 바라보고, 환갑이 되어서는 내 인생의 최고의 작품을 쓰겠다는욕심을 버리고, 홀가분한 자유속에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책속의 인상깊은 구절

 

소설은 상상력이 아니라, 체헙속에 진실성으로 써야되고, 현실의 허술한 빈틈은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메워야하는데,(p73) 한가지의 거짓말을 믿게 하기 위해 아홉가지 진실을 얘기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대상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만큼 작가의 관점은 그와 정비례하는 객관성을 얻고, 냉정한 객관성은 깊이를 만든다.(p312)

 

남이 멋진 표현을 사용하면 그 맛을 음미하기만 하고, 훔쳐다 쓸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모방은 혼자 하는 훈련으로 족하고, 베낀 작품을 나눠주며 돈을 받고 팔면 도둑질이 된다.(p135)

 

아직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의무감을 갖어야 하며, 작품도 다 쓰고 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p488)

 

마지막으로 타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하지 말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하며, ''무엇''을 해야 되겠다고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무엇''조차 조금만 하면서 그토록 아껴 모은 시간에, 하나만의 ''무엇''을 위해 그만큼 공을 더 들여야 한다.(515)

덧붙이는 글 | 예스24, 알라딘에도 송부했습니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모멘토(2006)


태그:#인문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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