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선산이 있습니다. 해마다 추석 1-2주 전에 사촌들이 함께 모여 벌초를 합니다. 모이면 30명 정도됩니다. 부산, 대구, 서울, 진주, 마산에 흩어져 사는데 자주 만나지 못하니 벌초 때 만남을 가집니다.
사촌들 모임은 설과 추석보다는 벌초할 때 더 많이 모입니다. 명절 때는 자기 집에 가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사촌을 만날 수 있는 이 좋은 일에 몇 년 동안 참석하지 못하여 올해는 꼭 참석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보니 저 빼고, 다들 열심히 벌초에 참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풀이 많이 자랐습니다. 지난 여름 쑥쑥 자란 풀을 보면서 예초기로 벌초를 하였지만 왠지 조상님 머리를 깎는 느낌이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묘가 38구 정도 되기 때문에 예초기가 7대가 동원 되어도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먹구름이 낀 하늘을 보면서 금방 비라도 내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벌초를 하는지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벌초가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자기가 할 일을 하였습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면 다른 사람들은 갈쿠리로 풀을 모았습니다. 갈쿠리는 옛날 갈비(솔가리)를 모을 때 많이 썼던 기구였는데 요즘은 풀을 모으는데 씁니다. 부산에 사는 조카가 갈쿠리를 들고서 열심히 풀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갈쿠리가 무엇인지 알아?"
"솔가리 모을 때 많이 사용했잖아요?"
"너 솔가리도 알고? 아빠에게 배웠나?""어릴 때 할머니 집에 와서 솔가리 하는 것 봤어요."어떤 사람은 예초기가 다 베지 못한 풀을 낫으로 베어냈습니다. 예초기 든 사람, 갈쿠리 든 사람, 낫 든 사람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옛날 군 생활할 때 낫을 쓸 줄 모르는 병사들이 참 많았습니다. 낫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손을 베기 십상입니다.
벌초도 예초기가 다 해버리니 옛날 처럼 낫으로 하나하나 손길을 준 것에 비하면 정성이 조금 덜하지만 해마다 빼놓지 않고 벌초를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산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38명인데 우리 대가 세상을 다 등지면 어느 누가 벌초를 해줄지 막막했습니다.
물론 그 때가 되면 납골당에 다 들어가겠지만 벌초를 통하여 가족들이 만나는 좋은 추억은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족이 일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는 좋은 모습을 생각하면 매장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벌초를 다 끝내고 형제계를 했습니다. 사촌들이 모였는데 사촌계라 하지 않고, 형제계라 했습니다. 아마 사촌형님, 사촌동생이니 편하게 지은 계 이름입니다. 모여서 하는 일은 선산 관리, 경조사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합니다. 작년에는 선산 입구 도로 때문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잘 해결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일년 만에 만난 사람들 얼굴은 건강하였고, 별 어려움 없이 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벌초는 참 좋은 우리 풍습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