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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게거미류의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에 꽃 피어나고
▲ 이슬방울에 핀 붉은 꽃 가게거미류의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에 꽃 피어나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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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이 맺히기 좋은 날, 이슬은 어디에든 맺힐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이슬이지만 맺힌 곳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맺혀 있는 곳과 바라보는 이가 서 있는 곳, 햇살의 비춤이 어떻게 조합되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이슬방울이 됩니다. 물론 이슬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사한 꽃을 배경으로 두었거나 한 그루 나무 혹은 강과 바다를 속내에 담고 있는 이슬방울을 보면 그 짧은 이슬의 삶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다가 풀잎 끝 이슬방울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사진으로 남기려다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기도 합니다. 간혹, 너무 아름다워서 이슬방울이 아침햇살 혹은 바람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합니다.

있는 곳에 따라 다른 것을 담고, 바라보는 이에 따라 또 다르게 보이고
▲ 이슬 있는 곳에 따라 다른 것을 담고, 바라보는 이에 따라 또 다르게 보이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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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보면서 사람을 생각합니다.
서야 할 자리를 모르는 사람들, 서지 않아야 할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다 사람이 저리 되었을까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꽃 한송이가 있음으로 이슬방울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삶의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혀를 제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할 줄 모르고 변명만 일관하는 사람은 큰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지적을 하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본의와 다르게 자신의 말이 전달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리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야 큰 사람입니다.

어디를 초점으로 잡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이슬방울 사진
▲ 이슬 어디를 초점으로 잡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이슬방울 사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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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살다 보면 말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실수가 아니가 고의적으로, 진심으로 타인의 마음에 못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인은 그 말로 인해 아프다고 하는데 "왜, 아프냐?"고 합니다.

이런 소인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은 참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소인배들은 변명을 잘 합니다. 자기 합리화에 능숙합니다. 앞뒤 틀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런 소인배들이 칭송받는다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타락했다는 이야기와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초록과 붉음의 조화
▲ 이슬 초록과 붉음의 조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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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말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랑이 부족한 세상인 것은 그 사랑이 포장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상술이 묻어 있는 말이요, 자본의 말이요, 맘몬의 말입니다. 그러니 겉으로 아름답게 들리는 말이 다 아름다운 말이 아닙니다.

사기꾼들은 거짓을 참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화술을 구사한다고 합니다. 그럴 듯한 말로 현혹을 해서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그런 사기에 넘어가는 사람들 안에 허황된 것들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 허황된 것, 누군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안에도 그런 것들이 들어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쟁논리가 세상살이를 팍팍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경쟁하고 있으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을 허튼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로또복권 일등에 당첨될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폭력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안에는 폭군이 들어 있으며,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분쟁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참 아름다운 하늘의 보석
▲ 이슬 참 아름다운 하늘의 보석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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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방울을 보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것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길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정화된 나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또 새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죠. 온전히 맑은 삶은 아니지만 조금은 맑은 삶.

이슬을 좋아한 것은 오래 되었지만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도시에 살다보니 이슬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비이슬이라도 볼 수 있으니 "와! 비님이 오시네!"합니다. 그 전에는 "에이, 구질구질하게 비가 오냐?" 했는데 말이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솔솔 부는 바람을 참 좋아했는데 작은 이슬을 담다보니 세미한 바람에도 흔들려서 사진을 담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바람 잘 날이 없네!" 불평하는 내 모습을 봅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나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도 부족한 것 투성인데 남에 대해서 왈가불가할 틈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간혹 오지랖 넓게 미주알고주알 합니다. 그러니 또 탄식할 수밖에 없지요. 이슬을 바라보면 그런 내가 조금은 맑아집니다. 그래서 자꾸만 작은 이슬에 빠져들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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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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