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제의 침략으로 36년간 강점당했던 삼천리, 해방을 맞았으나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분단되어야 했던 한반도, 해방 5년 만에 발생한 한국 전쟁, 전쟁의 참화를 발판으로 한 독재정권의 시작,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독재가 광주의 피를 먹고 끝이 난 것은 겨우 90년대의 일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 땅의 암울했던 역사는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그 중에는 민주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싸웠던 열사들도 많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간 이들,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죽음들이 또 엄청나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과거의 일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숙제가 주어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숙제를 마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십여 개의 정부 산하 위원회들이다. 진상을 밝히는 데 민간의 힘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고 세상이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을 가졌던 국가집단의 빗장을 여는 일은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모두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눈물겨운 투쟁의 열매였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믿었던 정치인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우리가 낸 법안은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으며 우리끼리도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했고 서로에게 등 돌리기기를 반복해야했다.

 

때론 불가마처럼 뜨겁고 때론 얼음장처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천막 하나를 겨우 치고 보낸 하루가 수백 일이었다. 그 피눈물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필요없다 주장해왔던 과거사 관련 국가기구들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은 이 국가 기구들을 통폐합하거나 고사시키는 것은 이제 유족들에게 이 나라를 떠나라고, 이 세상을 떠나라고 내모는 것과 똑같은 일이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부가 국민을 죽이는 결정을 내려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소속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제 2008년 12월 31일로 법에서 보장된 3년의 활동시한이 끝나게 된다. 2006년 1월 1일 위원회가 설립되고 600건의 군의문사사건이 진정 접수 되었다. 그중 절반에 지나지 않은 300여건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왔을 뿐인 지금 이제 위원회의 법적활동기한은 불과 4개월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당초 예상 진정 건수의 두 배가 넘는 600건의 진정이 접수되었을 때부터 이는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턱없이 적은 인원과 부족한 권한은 본격적인 조사활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음이 놓이질 않았고 철옹성이라고 자칭하는 군과 경찰은 대통령 직속 기관의 조사임에도 협조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 활동기한을 늘려 나머지 조사를 마무리 하는 것도 부족할 시기에 위원회는 폐업 직전에 놓이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군의문사 사건 희생자는 국가의 필요해 의해, 그 신성하다고 하는 국방의 의무를 하던 이들이다. 목숨같은 아들을 군에 보내고 억울하게 잃은 부모들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는 호소조차 '떼쓰기'라고 하며 외면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야 겨우 원구성이 끝난 국회에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한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국회 소식에 정통한 인사들이 전한다.

 

17대 국회에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설립에 힘을 보태주었고 군의문사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였던 의원들까지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방침이고 당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들을 믿고 싶지 않다. 최소한 진정 접수된 사건들에 대해 조사하고 그 의혹을 밝히는 책임을 외면할 정도로 무책임한 이들만 정부와 여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진정된 사건의 해결 뿐 아니라 2006년 이후에도 계속 발생하고 있는 군의문사 사건의 진실된 조사를 위해서는 군 외부의 상설독립기관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군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여 모든 조사를 군만이 하고 그 결론까지 군에서 내리는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군의문사는 사라질 수가 없다.

 

그 자랑스러워하는 군의 역사와 군의문사의 역사가 동일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군의문사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국민들도 군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과거사 관련 기구들이 제대로 활동을 마치지 못하고 통폐합되거나 고사된다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미래로 나아갈 또 한 번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는 덮어두어야 하고 분열을 초래하는 일들은 이제 그만두어야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에 얽매여 살고 싶은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누구나 미래를 꿈꾸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그 꿈을 꿀 기회를 잃어버린 이들, 희망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며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우리들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마지막 한 건의 사건의 조사결과가 나오고 재발방지와 예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때까지는 사무실의 등을 끌 수 없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한을 연장하여 어머니들의 눈물을 마저 닦아드려야 한다. 60만 군인의 가족은 5천만 국민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군의문사의 진실을 끝까지 찾아 내야할 이유는 '완전'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김덕진 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소식지 타래꽃에 제가 기고한 글을 토대로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태그:#군의문사, #천주교인권위, #과거사, #정기국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