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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50

 

장이 열리자마자 하락을 거듭하던 원달러 환율이 급기야 1130원 아래로 내려갔다. 장 마감을 1시간 앞둔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부터였다. 동시에 모니터를 주시하던 외환딜러들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9.3 비드(bid) 5개"(1129.3원에 매수 500만달러)

"9.3은 안돼요, 9.5"(1129.3원은 안돼요, 1129.5원)

"8.8에 250만불 보트(bought)"(1128.8원에 250만달러 매도)

 

초를 다투는 딜러들의 입에선 연신 한국어라기보다는 외마디 외침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서너명이 동시에 매수매도 주문을 쏟아내는 외환딜링룸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딜러들은 머릿속에 고성능 저장장치를 달고 있는 듯 주문대로 키보드 자판을 재빠르게 두드려 밀려드는 주문들을 처리해 냈다. 그런데 전문가들인 딜러들도 실수 하나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가끔 '거래 취소' 주문도 나왔다.

 

환율 전쟁의 최전선에 가득한 김치냄새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19층. 이곳은 환율 전쟁의 최전선인 외환딜링룸이 있다. 4일 점심시간인 낮 12시경 찾아간 이곳에서는 달러, 엔, 유로 등이 거래된다는 '글로벌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김치냄새가 가득했다. 외환딜러들이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뜰 수 없어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 때문이었다.

 

 

딜러들 앞에 놓인 음식은 초밥과 회덮밥.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이들의 눈은 모니터를 떠나지 못했다. 한손은 나무젓가락을 쥐었고, 다른 한손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오가느라 쉬지 못했다.

 

이날 환율은 전날 보다 8.5원 하락한 1140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1134월까지 떨어졌다가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1146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10억달러를 동원한 외환당국의  매도개입이 이어지면서 오후 들어 하락세가 지속됐다. 1132원대까지 떨어지자 한 딜러들의 입에서는 "혼란스럽네, 혼란스러워"라는 말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9.5원 떨어진 1129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환율하락 압력이 가장 셌던 날... 혼란스러워"

 

 

김두현 외환운용팀 차장은 "어제까지는 매수주문 일색이었는데 오늘은 매수와 매도 주문이 겹쳐서 상당히 변동이 심한 편이었다"며 "외환당국이 역내외 시장에 개입하고, 매수 심리를 위축시키려는 정부의 구두개입성 발언이 나오면서 환율하락 압력이 가장 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1128.8원에 팔려고 들어갔는데 바로 매도가격이 1128.1로 바뀌는 등 상당히 혼란스러웠다"며 "오늘은 딜러들이 거래하려다 원하는 가격을 놓친 경우가 꽤 많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계바늘이 오후 3시 정각을 가리키자 장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잦아졌던 '던'(done, 계약체결)이라는 외침도 사그라들었다.

 

그제서야 꼼짝없이 앉아 모니터 3대를 응시하며 컴퓨터 자판을 조작하던 원정환 대리가 벌떡 일어서서 "종가 1129원입니다"를 외쳤다. 그의 책상에는 점심 먹고 후식으로 마시기 시작했던 주스 한잔이 반도 못 비운 채로 남아있었다.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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