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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희 기자] 한국 남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한국 여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 낳기를 꺼린다. 2007년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등을 차지했고, 2005년 합계출산율은 1.08로 세계 꼴찌였다.

 

정부가 찾은 해법은 ‘일과 가족의 양립’이다. 비효율적으로 길기만 한 근무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그동안 소홀했던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돕고 ‘엄마’가 되는 것을 기피하지 않도록 아이를 낳고 키우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게 각종 제도와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과 가족을 병행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부는 남성에게도 1년간의 육아휴직을 주었지만 2001년부터 현재까지 전체의 2%만이 이용했을 뿐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1년간 쉬고 다시 직장에 돌아왔을 때 이전과 동일한 직무·임금을 보장받기 어려운 데다 휴직급여도 연봉수준과 관계없이 월 50만원에 불과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예전보다 아이를 더 낳고 있다지만 ‘엄마’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올해부터 일하는 중에도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하루 한 시간씩 빨리 퇴근하거나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수시로 휴가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기업들은 제도의 변화와 관계없이 ‘휴가를 많이 줘야 하는 여직원’을 불편해한다.

 

실제로 여성 10명 중 1명꼴로 출산휴가를 받은 후 3년 안에 일을 그만두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일을 그만둔 후에도 재취업에 도전할 수 있다. 정부도 경력단절 여성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가칭) 여성 다시 일하기 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각종 지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도 취업이 어려운 때다. 보육·교육비가 만만찮은 한국 사회에서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부부가 “출산은 일단 미뤄두자”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우리보다 20년, 30년 먼저 일과 가족의 양립을 고민하고 실험한 나라들이 있다. 노동환경과 사회의식, 문화양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의 앞선 경험과 시행착오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 김태현)은 지난 8월 25, 26일 양일간 서울 홍제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일과 가족의 양립 정책현황과 발전방향’을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일·가족 양립정책을 주관하는 여성부(장관 변도윤), 보건복지가족부(장관 전재희), 노동부(장관 이영희) 3개 정부부처가 후원하고, 세계의 일·가족 양립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스웨덴의 주한 대사관이 협력했다.

 

발표자들은 스웨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일본 등 6개국 일·가족 양립정책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스웨덴 정부기구인 ‘양성평등과 기회평등 옴부즈만’ 피아 엥스트룀 린드그렌 부위원장, 안 소피 두반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교수, 다국적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인사담당이사 에바 훌트베리, 수전 루이스 영국 미들섹스대학 교수, 마리 테레스 르타브리에 프랑스 파리 제1대학 경제연구소장, 리안 마흔 캐나다 칼튼대학 교수, 이토 팽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 로라 덴 둘크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학 교수, 소마 나오코 일본 요코하마대학 교수 등이 이번 국제 심포지엄을 위해 첫 방한했다.

 

남성에게도 최소 2개월의 부모휴가를 강제하는 스웨덴, 3~6세 영유아에게 종일반 조기교육을 지원해 여성의 정규직 취업을 지원하는 프랑스, 기금 등 각종 인센티브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가족친화적 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영국 등 세계의 사례들은 한국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특히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 남성의 긴 노동시간과 여성의 짧은 노동시간을 효과적으로 조율한 프랑스의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한국에 유의미하다. 또 공식적인 제도보다 양질의 고용관행이 일과 가족의 양립을 촉진시킨다는 영국의 연구보고도 새겨들을 만하다.

 

그런 점에서 피아 엥스트룀 린드그렌 스웨덴 ‘양성평등과 기회평등 옴부즈만’ 부위원장의 지적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일과 가족의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들이 늘어날수록 기업들은 남성보다 더 많은 휴가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성의 고용을 꺼릴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에 관계없이 여성의 취업에 영향을 준다. 장기적으로 일터에서 성별 차이를 없애고 남성들도 양육에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지속가능한 해결책이다.”

 

각국 일·가족 양립정책 성공전략

[스웨덴] ‘성평등 보너스’로 남성 참여 유도

 

-안 소피 두반더 스톡홀름대학 교수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일과 가족의 양립정책이 가장 잘 시행되고 있는 나라다.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을 하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부모휴가를 사용한다. 또 대부분의 여성과 남성이 자녀 갖기를 원한다.

 

비결은 높은 수준의 부모휴가 제도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아버지에게도 부모휴가를 제공했다. 부모휴가는 자녀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언제든지 남녀 각 8개월씩 총 16개월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배우자에게 양도도 가능하다. 다만 최소 2개월은 본인이 써야 한다. 즉 ‘아버지의 달’ 2개월과 ‘어머니의 달’ 2개월이 존재한다. 최소 2개월을 사용하지 않으면 급여를 받을 수 없다.

 

부모휴가 제도는 아버지들이 더 많은 휴가를 사용해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나 복귀를 쉽게 하기 때문에 성평등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휴가기간 급여는 자기 소득에 비례한다. 기존 임금의 80%가 제공된다. 휴가를 파트타임으로 사용하고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테면 일반 근무시간의 75%만 일하고, 급여도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고용주는 절대로 부모휴가 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부모휴가는 대부분 여성 배우자가 더 많이 사용한다. 남성 배우자의 수입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올해 여름 새로운 제도를 추가했다. 바로 ‘성평등 보너스 제도’다. 8개월씩 동등하게 부모휴가를 나누는 부모에게 추가 급여를 지원한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남성 배우자의 자녀양육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아예 부모휴가 양도 권리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영유아보육 확대로 여성 정규직 지원

 

-마리 테레스 르타브리에 파리 제1대학 경제연구소장

 

프랑스는 유럽에서 어머니 나이의 여성들이 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25~54세 여성의 67%가 주당 평균 35시간 또는 그 이상을 일하고 있다. 출산율도 안정적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관대한 지원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족양육수당이다.

 

프랑스 정부는 1985년부터 셋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자녀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데 대체급여가 없기 때문에 자녀양육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대신 내주는 것이다. 1994년 두 자녀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신청자가 대폭 늘었다. 그러나 가족수당 제도는 기간이 3년으로 너무 길어 저학력의 여성들이 다시 일하기가 쉽지 않고, 수당 금액이 적어 남성들의 참여를 떨어뜨렸다. 실제로 남성의 육아휴직 신청률은 2%를 넘지 않는다.

 

이에 프랑스 가족부는 2001년 총 14일의 아버지 신생아 유급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수당이 아닌 급여가 지급되자 남성들의 신청률은 65%로 늘었다. 여성에게는 육아휴직 기간 중 직업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정부는 자녀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지출되는 보육비용도 일부를 대신 내준다. 특히 3~6세 영유아에게 종일반 조기교육을 지원한다. 이는 사실상 여성들의 정규직 취업을 위한 것이다.

 

프랑스가 2000년 소위 ‘35시간 노동법제’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 남성은 긴 노동시간을, 여성은 짧은 노동시간을 제한했다. 남성이 가족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영국] 양질의 고용관행이 일·가족 양립 촉진

 

수전 루이스 미들섹스대학 교수

 

영국은 1970년대부터 일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일·가족 양립의 필요성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지만 정부가 적극 나서지는 않았다. 영국 정부는 대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일·가족 양립을 위한 조치를 도입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했다. 우수 사례를 발굴해 다른 기업들에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일·생활 균형 도전기금’을 조성해 일·가족 양립을 위한 컨설팅 비용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에선 기업이 직원들의 탄력근무 요청을 ‘경영상의 이유’로 거부할 수 있다. 영국 노동시장에선 ‘전일제 노동을 하며 가족을 돌보기 위해 업무를 중단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적 노동자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일·가족 양립정책이 활성화되기는 어렵다.

 

1997년 신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국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일·가족 양립의 대표 정책인 부모휴가나 아버지 휴가, 탄력근무제 등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부모휴가는 1999년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꼴찌로 시행됐고, 기간도 EU 최소기준인 3일 무급이며, 아동보육법은 2006년에야 제정됐지만 말이다.

 

영국은 일하는 여성이 임신하면 근속 연수에 상관없이 최대 1년(52주)간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자기 수입의 90% 정도가 대체급여로 제공된다. 중요한 것은 휴가 중 10일간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 노동자의 기술이 휴가기간 중에 뒤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공식적인 탄력근무제 확대보다, 업무환경이나 자율성·창조성 발휘 기회, 직장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등 양질의 고용관행이 일과 가족의 양립을 촉진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뷰] 로라 덴 둘크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 교수

“파트타임 확대가 성공열쇠”

유럽 국가의 대부분은 부부가 모두 풀타임으로 일하는 ‘2인 소득자 가족’ 모델로 가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는 여성의 대다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1.5인 소득자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네덜란드 여성들은 파트타임 노동을 통해 일과 자녀 양육을 조화롭게 병행하고 있다. 2인 소득자 가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우리에게 네덜란드 사례는 일종의 ‘참고서’ 역할이 될 수 있다.

 

지난 8월 25, 26일 양일간 열린 일·가족 양립 국제 심포지엄에서 네덜란드 사례를 발표한 로라 덴 둘크 유트레히트대학 교수를 지난 27일 서울 불광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만났다. 로라 교수는 이날 연구원의 요청으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6개국 발표자 가운데 유일하게 별도의 포럼을 가지기도 했다.

 

로라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파트타임 노동은 풀타임에 뒤지지 않는 임금과 대우를 받을 정도로 사회적 인정을 받는 일자리”라며 “한국도 기혼 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해 파트타임 일자리를 질적·양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로라 교수와의 일문일답.

 

-일을 한다고 해도 자녀 양육과 가사는 남성보다 적게 일하는 여성의 몫이다. 네덜란드의 ‘1.5인 소득자 가구’ 모델은 오히려 일과 가족의 성별분리를 유도하고 있지 않나.

“부정할 수는 없다. 네덜란드 내에서도 파트타임 확대는 성역할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여성들은 한국처럼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젊은 여성 60%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종일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어머니 역할에 대한 규범을 포용하면서 일과 가족을 양립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바로 파트타임 대중화 정책이다. 현재 파트타임 노동자의 75%가 여성이다.”

 

-풀타임 일자리나 직장 내 고위직을 원하는 여성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

“물론 남성보다 덜 일하니까 승진할 기회가 적고, 특히 고학력 여성들의 경우 의도하지 않게 제약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경우 여성 종사자가 더 많고, 특히 금융계의 경우 종사자의 60% 이상이 여성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일주일 중 4일 근무도 파트타임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파트타임이라도 관리직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장시간 근무문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젊은 남성들의 파트타임 참여도 증가하는 추세다. 앞으로 전문 영역의 파트타임 일자리가 계속 확대될 것이고, 여성들도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일자리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와 개념이 다른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파트타임 노동은 풀타임에 뒤지지 않는 임금과 대우를 받는다. 네덜란드 정부는 1996년 법을 개정해 풀타임과 파트타임 노동자에게 동등한 공휴일 수당과 시간 외 수당, 보너스와 기술훈련 기회를 주도록 했다. 임금도 풀타임으로 일했을 때 월급을 시간으로 나눠 지급된다. 일하는 시간이 적을 뿐 풀타임에 비해 저숙련 노동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도 질 높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든다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던 유능한 여성들이 재취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남성들의 육아 참여는 아직 저조한 것 같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해결방법을 제시한다면.

“네덜란드의 부모휴가나 한국의 육아휴직은 의도는 좋으나 남성들의 참여가 적다. 네덜란드는 급여가 너무 적어서, 한국은 복직 후 겪어야 할 후유증이 커서다. 그렇다면 휴가를 받아 장기간 일을 쉬는 대신, 이를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를테면 하루 근무시간 총량을 조금씩 줄여 일상적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은행권의 경우 금융권 평균 주당 근무시간인 38시간에서 2시간 적은 36시간을 일한다.”


#일#가족#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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