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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마지막 날, 알람시계가 6시가 되었다고 조용한 새벽을 깨웁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남한산성 자락의 참새골로 향합니다. 참새골, 그 곳은 약수터가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산책하기가 좋은지라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들과 그 곳에 많이 놀러다녔습니다.

 

오늘 참새골에 가는 이유는 하늘의 보석인 이슬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도심에 살다보니 아침에 이슬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 어디에서 이슬을 만날까 생각하다 참새골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먹고 출사를 나왔건만 참새골로 향하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아도 이슬이 별로 내리질 않았습니다. 허탕을 치는가보다 하면서도 기왕 내친 걸음이니 운동삼아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고, 참새골은 산자락이니 이슬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참새골에 도착을 했습니다.

 

초입에는 이슬이 없는 듯 하더니만 이내 쇠뜨기들이 이슬을 잔뜩 머금고 인사를 합니다. 다른 날에 비해 이슬이 많은 날은 아닌 듯 했지만 이슬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슬사진을 담다보니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의 차가운 기운과 흙의 기운이 온 몸에 전해지고, 금방 옷이며 신발이며 이슬을 흠뻑 빨아들입니다. 처음에는 조심조심하지만 옷이 젖은 김에 더 과감하게 엎드리고, 이내 누워 이슬사진을 찍습니다.

 

산행을 하러 오신 분들, 산악자전거를 타러 오신 분들이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서 이른 아침 풀섶에서 뒹구는 나를 보고는 웃으며 "뭐 하세요?"하며 지나갑니다. 어떤 분들은 올라가며 "저 양반, 새벽부터 풀밭에서 왜 뒹군데?"라고 합니다. 카메라만 없었다면 영락없이 미친놈 취급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카메라가 있은들 미친놈으로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산행을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니 자꾸만 의식을 하게 되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제대로 담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 "에라, 미치자." 하고는 의도적으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참 나로 살지 못하고, 남에 눈에 비친 나 혹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돌아봅니다. 그냥, 나는 나이면 되는 것인데,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내가 미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인데 그 말에 분노하고, 화를 내다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남이 보는 나의 존재보다는 내 앞에서 혹은 신 앞에서 내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그리곤 '내 맘이야!' 하지요. 이런 것은 제대로 된 '내 맘'이 아닙니다. 약육강식의 논리, 경쟁의 논리에 찌든 마음이지요. 병든 마음이지요.

 

이슬사진을 담으려고 연마에 연마를 거듭한 후, 가장 최적의 조건을 만났건만 담고 싶은대로 사진이 담기질 않습니다. 이슬만 만나면 내가 담고 싶은대로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은 머리에 들어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아직도 더 연마해야하고, 더 연구해야 담고 싶은 대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멀었구나! 오늘은 하산하자!'

 

 

산에서 내려와 참새골 약수터에 들러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를 들이킵니다. 온 몸에 수액이 도는 것만 같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곳에 서 있으면 발바닥에서 뿌리가 나와 흙에 박히고, 나는 나무가 될 것 같습니다.

 

참새골약수터가 많이 알려지기 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등목도 하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했는데 그게 벌써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아직도 그 샘물에서는 여전히 물이 솟아오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아침인사를 드리니 "아이고야, 너 꼴이 그게 뭐냐?" 하십니다. 이슬사진 찍으러 간 것을 아는 아내가 씨익 웃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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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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