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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던 지난 가을. 그쯤부터 일본 여행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결국 '알바'와 공부 사이에서 공부를 선택하는 바람에 여행은 접어야 했지만 말이다.

 

최근엔 잠깐 한 눈 좀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벗어나고 익숙한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공기를 맞으며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휴학은 이미 엄마에게 허락받지 못한 내 계획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번엔 뭔가 좀 달라." 정말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최근 다시 여행서적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비교적 긴 시간을 머물다 올 거라 마음을 먹었기에 여행 책은 부족할 수 있다. 워킹 경험을 토대로 한 책들도 있어 그 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물론 시중에 많이 나오는 여행 작가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소문난 음식점, 잡화점 등이 소개된 책도 빌려 읽었다.

 

좋은 여행 책이라는 이름은 어떤 책에 붙여줘야 할까? 현지인들도 모르는 희귀 매장, 분위기가 남다른 카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음식이 있는 곳. 하나는 위의 모든 곳들을 소개해주는 책. 그리고 정보는 부족하지만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체험을 담은 책 하나. 내가 세운 '좋은 여행서적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책을 덮는 순간, 여행을 떠나도록 하라.'

 

그간 수많은 여행서적을 읽어봤다. 도쿄 어느 곳에 있는 베네치아 풍 거리,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가장 맛있는 라멘 집,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100엔 숍 등. 방대한 양의 상점들이 내게 준 느낌은 이랬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모아야 여기 다 들러서 쇼핑해야 하는 거야?' 사진으로 봐선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천지인데 여행 준비를 하기도 전에 힘이 빠져버린다. '결국 알바는 필수인가?'

 

휴학을 결심한 후 읽은 여행서적 중 하나인 이 책. 「20인 호주」. 안 그래도 떠나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내 성냥에 불을 확 질러 버린 책이다.

 

"위험한 여행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넌 지금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살아난 거다. 그러니까 잊지 마라. 열심히 살겠다는 그 약속. 절대 잊지 마라." (위의 책, 227쪽)

 

여행이라는 것이 '보고, 사고, 먹고'가 다는 아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전거 일주를 한다거나 국토 순례를 해보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20인 호주>는 실제로 여행을 통해 한 뼘 더 자란 20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내 인생 60년, 70년 시간 중에 1, 2년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다는 거. 괜찮지 않을까?" (위의 책, 199쪽)

 

서로 다른 나이, 국적, 성격,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줄곧 살아왔던 모국을 떠나 호주에 왔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온 사람도, 졸업 후에 공부를 다시 하러 온 사람도, 괴로움을 털어버리기 위해 온 사람도 있다. 내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해보고자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단지 벗어나고 싶어서인 사람도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 벗어나!'

 

"친구들이랑 강에 가서 뱀을 잡아 먹었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강에 가서 뱀을 잡아 먹었다는 얘기를 할 자격이 있어. 자격이라는 건. 그런 거야." (위의 책, 59쪽)

 

작년 즈음 이런 생각을 했다. "80%만큼의 고독함 속에서 딱 그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100%의 온전한 나를 만나기 위해 20%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 그런 게 여행이 아닐까 하는. 책 속에서 만난 독일에서 온 두 소녀의 말처럼 사회, 학교 안에 있으면 주위의 고정관념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적성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온전한 자신을 만나는 데에는 워킹 홀리데이나 유학처럼 긴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기간이 어떻든지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생각, 적성을 볼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겨워 죽겠고, 이건 아닌 거 같고,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고 하지만, 또 멀리 나와 돌아보면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그 첫 마음이 보인다." (위의 책, 162쪽)

 

'책을 덮는 순간 여행을 떠나게 하는 책이 가장 좋은 여행서적이다.' 물론 관광 명소나 유명 상점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정보를 주는 책도 필요하다. 단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여행 책보다 <20인 호주>와 같은 책을 통해 여행의 참뜻을 깨닫고, 빈티지한 소품이나 맛난 디저트보다 더 소중한 걸 얻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을 뿐이다.


20인 호주 - 꿈을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한 20인 이야기

하정아 지음, 라이카미(부즈펌)(2007)


태그:#20인호주, #하정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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