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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은 여름에 읽어야 제맛이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그 감미롭고도 짜릿한 맛은 무더위를 견디는 특효약 중에 특효약이다. 이제 그 더위도 한풀 꺾였다. 그에 따라서 '붐'을 이루던 추리, 공포소설의 출간 행렬도 잠잠해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아직 남아있는 무더위를 상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등장한 소설들이 있으니까. 한국 작가들의 공포소설을 모은 <나의 식인 룸메이트>와 미야베 미유키의 <괴이> 그리고 제1회 일본 유괴담 문학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구로 시로의 <밤 11시의 산책>이 그 주인공이다.

 

1. 이종호 외 9인의 <나의 식인 룸메이트>

 

출판사 황금가지는 그동안 신선한 모험을 했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낸 것이다. 공포 문학이라고 하면 외국 작가들의 것에만 익숙한 우리 정서를 떠올릴 때,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그 세 번째 결과물인데 그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1, 2편에 비해 눈에 띌 만한 탄탄한 소설들이 두루 담겨 있기 때문일까? 완성도가 느껴진다.

 

그 탄탄함이 느껴지는 대표 소설은 김준영의 '붉은 비'와 신진오의 '공포인자'다. '붉은 비'는 붉은 비를 맞은 동물들이 즉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붉은 비가 왜 내리는지 모르는 채 사람들은 동물들이 죽은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잠시 후, 죽었다고 생각했던 동물들로부터 공격받기 시작한다. 도대체 붉은 비는 무엇이기에 그런 것일까? 비둘기떼가 자동차를 공격하는 장면 등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공포인자'는 사람의 마음에 숨어 있는 공포를 극한으로 끌어내는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에 걸리면 사람들은 잠재되어 있던 공포가 환각으로 나타나 심각한 공포에 떨게 된다. 신진오는 이러한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 소설 속 인간의 혼란한 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 또한 '붉은 비'만큼이나 아찔한 두려움을 전해준다.

 

'붉은 비'와 '공포인자'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나의 식인 룸메이트>에 실린 소설들에서도 알 수 있듯,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귀신'이 나타나서 무섭게 한다는 일종의 '공포특급'류의 진부한 내용을 넘어선다. 상황을 설정해 그것에서 공포심을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한국 공포문학이 발전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으니 여름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2. 미야베 미유키의 <괴이>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의 대표 추리소설 작가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된 소설은 공포소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괴이>다. '이불방'의 어린 동생은 죽은 언니를 대신해 일을 하러 간 곳에서 '시험'을 당한다. 그것은 귀신의 손짓이다. 동생은 귀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언니의 혼이 그녀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귀신아 이쪽, 손짓하는 쪽으로"라고 말하며 동생을 구하려고 하는데, 이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전설의 고향'이다.

 

9개의 소설로 구성된 <괴이>는 일본판 '전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귀신에게 죽을 뻔 하다가 호박의 신에게 도움을 받는 소년의 이야기나 도깨비를 볼 줄 아는 시어머니 이야기 등이 확실히 그것을 빼닮았다. 그래서일까. 무서우면서도 애틋함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다. 공포를 느끼면서 작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소설들의 모임이라고 할까? <괴이>는 공포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3. 구로 시로의 <밤 11시의 산책>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호러소설작가인 타쿠로는 슬픔을 잊고 딸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제 막 6살이 된 치아키는 기괴한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특히 시퍼런 얼굴의 여자를 그리며 그것이 '엄마'라고 말한다.

 

타쿠로는 엄마를 잃은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치아키의 증세는 더 심해진다. 더군다나 주변 사람들이 극심한 공포심을 느끼며 죽는 일까지 발생한다. 꿈에 시퍼런 얼굴의 여자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타쿠로는 뭔가 불안함을 느끼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치아키는 산책을 가자고 한다. 밤 11시의 산책이다. 산책을 나가서 또 다시 그림을 그린다. 아주 불길하고도 기괴한 그림들을.

 

<밤 11시의 산책>은 전형적인 공포소설이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와 미스터리함이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그 모습이 예전에 유행했던 <링>에 버금간다. 이 소설 또한 여름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이종호 외 9인 지음, 황금가지(2008)


태그:#공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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