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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새벽, 모 방송국의 젊은 작가가 방송국 사옥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대 방송국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비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하는 스물 두살의 젊은이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은 무슨 이유 에서 였을까? 사건을 맡은 경찰은 그 원인을 근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박봉, 야근등 막내작가가 겪는 중압감이 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작가라는 직함에 맞지 않은 '부당한 대우' 때문이었다.

 

사실 경찰의 그 추정처럼 방송 작가의 삶은 부당하기(고달프기) 짝이 없다. 고용한 이들은 마치 작가들이 슈퍼우먼이라도 되는 양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를 짊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대우는 슈퍼우먼급이 아닌 애완용 슈퍼캣(?)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막내 작가들은 아르바이트 수준에 불과한 급여를 받고 그 돈의 배에 가까운 업무량을 해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 대부분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다. 작가의 본업인 글쓰기는 뒷전. 심부름꾼인 양 전화연락, 복사용지 복사 같은 잡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작가들은 속시원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 때문에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악착같이 몇년을 버텨도 그 치열한 경쟁의 끝은 희망이 아닌 절망에 가깝다. 스타작가가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한 진실은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방송국 작가로 갓 입성한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끔찍한 진실에 대한 절규속에 한 막내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득 어느 네티즌의 말이 떠오른다.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돕는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 대본을 구성했던 막내작가, 하지만 정작 누구보다 SOS가 필요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사회의 도움을 얼마나 절실히 바랐을까? 하지만 가난한 현실은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없는 사람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그 죽음을 빚어낸 것과 진배없었다. 

 

비단 막내작가 뿐만이 아니다. 생활고를 비관해 자녀와 동반 자살을 선택한 여성, 생활고로 지하철에서 자살을 선택한 50대 가장, 최근에 들려온 씁쓸한 소식,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자살 소식의 대부분은 '사회의 부당한 대우'를 이겨내지 못한 이들의 최후의 절규이다. 하지만 그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그들의 절규를 우리는 가슴으로 받아줬었는가?

 

우리 사회에 검은독처럼 퍼져있는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어느 먼곳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이웃, 우리의 가족의 일로 다가올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우리 자녀가, 사오정, 오륙도 등의 이름으로 명예 퇴직을 당하는 부모가, 비정규직의 부당한 대우 속에 해고당한 우리 이웃의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나서야 한다.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 기륭전자, KTX 여 승무원들의 시위로 대변되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막내 작가의 자살, 가장과 자녀의 동반 자살등 사회 구석구석 부당함에 고통받는 모든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제를 고쳐 나가야 한다.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바꿀 사회적 성숙이 이루어져야 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관심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정(情)이 있는 우리사회는 그럴 힘이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부당한 대우에 침묵하지 않고, 우리 이웃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분명 사회는 좀 더 약자를 위한 쪽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이웃이, 끔찍한 절망대신 빛나는 희망을 짊어질 것을 믿는다.


#막내작가#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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