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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치마빛 바다 뒹구는 오동잎

화장독 가려워 움찔움찔 얼굴 비트네

시멘트 방파제 재갈 문 오동잎

날랜 파도에 잃어버린 오동열매 그리며

뭉게구름으로 떠도는 봉황새 애타게 부르네

오동열매로 흩뿌려지는 동백열차

사람으로 환생한 봉황새 여럿 불러들이네

오동나무는 동백으로 환생하고

신돈은 용굴 되어 해룡 그리네

 

음악분수 앞에 앉은 작은 연인 한 쌍

봉황새 오동열매 따먹듯 입술 예쁘게 맞추네

맨발공원 속에 넋으로 떠도는 오동나무 대나무

화장 예쁘게 한 동백섬 전설로 파도치네

 

-이소리, '오동도 추억' 모두  

 

수평선 너머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예쁘게 빚어진 섬. 오동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봉황새가 깃들어 오동열매를 따먹었다는 신비스런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오동잎 닮은 조각 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화살로 사용하기 위해 대나무를 심자 섬 곳곳에 대나무가 빼곡히 자라나 한때 '대섬'(죽도)이라 불렸던 자그마한 섬.

 

정절을 지키기 위해 벼랑 끝에 몸을 날려 숨진 아리따운 여인의 얼굴이 붉디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나는 섬. 그 여인이 죽음으로 지킨 정절이 싯푸른 신이대로 돋아났다는 전설이 파도치는 섬. 오백 년 묵은 지네가 살면서 날씨가 흐릴 때마다 기다란 수염을 날랜 파도 위에 척 걸치고 있었다는 용굴이 지금도 어둑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섬. 

 

그 섬. 태초에 일어난 신비스런 이야기와 사람들 입으로 입으로 내려온 갖가지 이야기를 간직한 그 섬이 여수 오동도다. 오동도(梧桐島)란 이름은 오동나무가 많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 오동도에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오동나무가 없다. 오동나무 대신 동백나무와 사람들을 위한 현대식 편의시설만 가득하다.  

 

오동도가 서울행 고속버스를 늦추었다

 

17일(일) 오후 3시께 찾았던 여수 오동도. 오동도는 길라잡이(나)가 그동안 먼발치(자산공원)에서만 자주 바라보았을 뿐 실제 가보지는 못했다. 여수에 갈 때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오동도가 그렇게 곱고 예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지만 이상하게 오동도엔 발길이 쉬이 닿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사실, 길라잡이는 16일(토) 저녁 때 여수에 내려가 볼 일을 본 뒤 다음 날 선소에 가서 개도 막걸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서둘러 여수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오후 2시 여수-서울발 고속버스 표를 끊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차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갑자기 눈앞에 오동도가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머나 먼 여수까지 왔다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그냥 서울로 올라간다는 게 영 마음이 불편했다. 뭔가 빠뜨리고 가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길라잡이는 고속버스 표를 오후5시 차로 바꾼 뒤 곧장 오동도로 향했다. 지금 오동도를 찾지 않으면 언제 또 오동도를 볼 수 있으랴, 라는 생각을 하며.

 

여름 끝자락, 입추가 지난 오동도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먼발치에서만 보았던 오동도. 내 마음 깊숙이 박힌 그리움처럼 오래 전부터 내 마음에 떠돌고 있는 오동도는 속내에 무엇을 품고 있을까. 어릴 때 부모님께서 보았다던 그 곱고 예쁜 오동도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오동나무와 동백꽃에 얽힌 슬픈 사연

 

한려해상 국립공원 오동도(전남 여수시 수정동)는 여수의 얼굴이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토끼를 닮았고, 멀리서 바라보면 오동잎을 닮았다는 오동도. 오동도는 이제 섬이 아니다.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 오동도가 귀엽고도 수줍은 섬마을 소녀였다면 요즈음 오동도는 얼굴을 마구 뜯어 고치고, 화장을 짙게 한 깍쟁이 도시처녀라고나 해야 할까.

 

오동도는 그저 바라보기에도 지겨운 시멘트 방파제로 뭍과 이어져 있다. 차라리 연륙교를 놓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지금 오동도는 음악분수와 동백열차 방파제벽화 산책로 맨발공원 등이, 붉디붉은 동백꽃 대신 검붉은 빛을 띤 동그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동백나무보다 더 인기가 좋다.

 

여기에 '2012여수세계박람회' 때문에 오동도는 또 한 번 얼굴을 크게 수술하고, 더 짙은 화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가는 오동도의 옛 모습이 깡그리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누군가 길라잡이에게 ' 자연 그대로의 미인이 좋으냐? 성형 미인이 좋으냐?'라고 묻는다면 길라잡이는 한마디로 '자연 그대의 미인'이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다.   

 

오동도에 얽힌 전설 두 가지를 살펴보자. 고려 공민왕과 함께 개혁을 꿈꾸었던 신돈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신돈은 '전라도라는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있다. 게다가 오동도라는 섬에 서조인 봉황새가 드나들어 고려왕조를 맡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것이다'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동도에 빼곡한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아주 오랜 옛날 오동숲 우거진 오동도에 아리따운 여인과 어부가 살았다. 어느 날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여인이 자신을 희롱하는 도적떼에 쫓기다가 벼랑에 몸을 던졌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 멀리 나갔다 돌아온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여인을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묻어주었다. 그해 겨울부터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정절을 상징하는 신이대가 돋아났다.

 

 

시멘트 방파제란 재갈 물고 있는 오동도

 

오동도로 간다. 햇살이 바늘처럼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긴 시멘트 방파제가 아리따운 섬 오동도를 재갈 물리고 있다. 길이 768m, 폭 1∼3m에 이르는 이 시멘트 방파제가 이곳 사람들에게도 딱딱하고 지리해 보였을까. 방파제 곳곳에 바다 속 풍경과 물고기, 돌산대교, 무술목, 거북선 슈퍼그래픽 등(모두 14점)이 그려져 있다.

 

여수시 자료에 따르면 이 방파제 벽화는 1999년 5월 1일부터 여수미술협회 소속 작가들이 1개월 동안 공동 작업을 한 끝에 완성했단다. 하지만 벽화 몇 점으로 어찌 개발지상주의가 낳은 대자연과의 모순을 감출 수 있으랴. 숨을 턱턱 막는 열기가 푹푹 피어오르는 시멘트 방파제를 걸으며 오동도를 바라본다. 

 

저어기 시멘트 방파제 끝자락에 오동도가 겁먹은 섬마을 소녀처럼 동그마니 엎드려 파도에 자맥질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동도는 금세 화장 예쁘게 한 도시처녀처럼 세련된 얼굴로 낯빛을 바꾼다. 오동도 곳곳을 달리는 동백열차, 음악분수, 산책로, 맨발공원, 등대로 쭈욱 이어지는 또 하나의 지리한 시멘트 방파제 등...

 

오동도에 닿으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모형 거북선이다. 이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선소에서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물리친 그 거북선의 1/4 크기이다. 그 거북선 곁에 음악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는 음악분수가 있다. 오동도가 자랑하는 동백은 음악분수 뒤쪽 산비탈에 엉거주춤 매달려 있다.

 

길라잡이 마음처럼 외롭게 서 있는 해송

 

동백나무 곁에 다가서자 가지마다 동백꽃을 닮은 검붉고 동그란 동백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봉황새가 오동열매를 따먹기 위해 오동도에 깃들었듯이, 음악분수 앞에 앉아 있는 저 작은 연인 한 쌍은 동백열매를 따먹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연분홍빛 양산 아래 맞붙어  벌건 대낮인데 부끄러움도 잊은 채 입을 쪼옥 맞춘다.    

 

오동도 동백꽃은 시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피어난다. 저 작은 연인들도 동백꽃처럼 시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사랑의 결실을 맺자고 입맞춤하고 있을까. 음악분수를 살짝 지나면 동백열차를 타는 곳에 닿는다. 이 열차는 오동도 주변의 쪽빛 바다를 휘이 돌아 오동도 다리를 오가는 수륙열차다. 

 

저만치 여수 돌산도와 경남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높이 25m에 이르는 등대가 보인다. 그 등대로 가는 시멘트 방파제 들머리 우뚝 솟은 갯바위 위에 한 쪽 팔만 남은 해송 한 그루, 길라잡이의 마음처럼 외롭게 서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누구를 못 잊어 저토록 애타게 한 쪽 팔을 흔들고 있는 것일까.

 

저 해송이 손을 애타게 흔들고 있는 저 쪽, 남쪽 바다로 돌아가면 용굴이 있다. 이 용굴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이 동굴에는 오백 년 묵은 지네가 살고 있었다. 이 지네는 날씨만 흐리면 기다란 촉각을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때문에 이 섬에 해산물을 잡으러 가는 아낙네들은 이 동굴을 지네굴이라 하여 가까이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섬에 처음으로 해산물을 잡으러 왔던 한 여인이 그 동굴 가까이 다가갔다가 머리가 쌀가마니만한 지네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남정네들이 배를 타고 다가가 그 여인을 구한 뒤 사흘 밤낮 불을 피워 연기를 동굴 속에 집어넣어 마침내 지네를 잡았다. 그 뒤부터 지네가 사라졌다.

 

 

1년에 1백만 명이 찾는다는 여수 오동도

 

근데, 왜 이 굴을 지네굴이 아니라 용굴이라 부를까. 길라잡이가 유람선을 타고 이 용굴을 가까이서 직접 바라보았다면 그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유람선을 타지 못했으니, 다음으로 기약하는 수밖에. 등대를 뒤로 하고 오동도를 오르면 작은 섬 곳곳에 섬의 깊은 주름살 같은 오솔길이 나 있다.

 

산책로와 '걷고 싶은 맨발공원'이 그것이다. 이 오솔길에 들어서면 동백과 신이대, 후박나무, 돈나무, 해송 등 식물 194여 종이 자라고 있다. 이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기암괴석과 아스라한 낭떠러지, 돌산대교, 점점이 떠 있는 섬 등도 세상살이에 지친 시름을 싸악 가시게 해준다.

 

자갈, 호박돌, 해미석 등 여러 가지 돌과 나무를 이용한 맨발공원도 한번쯤 걸어볼 만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오동도에 개발이란 이름의 화장을 덧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개발이란 화장독에 어깨를 움찔거리고 있는 이 작고 예쁜 섬. 이 아름다운 섬을 좀 더 오래 사람 곁에 두고 싶다면 이젠 그만 개발의 끄나풀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오동도. 길라잡이는 그날 여수 오동도를 마음의 창에 아름답게 새겨 넣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아무도 몰래 살짝 꺼내보기 위해. 그리고 오동도를 새겨 넣은 마음의 창 아래 이렇게 썼다. '오동도, 지금의 널 사랑한다. 부디 그 얼굴 변치말기를'이라고.

 

낮에는 감성돔, 밤에는 은갈치가 줄줄이 낚인다는 감성돔과 갈치의 천국 오동도. 오동도에 가면 반드시 둘러볼 곳이 있다. 향일암과 돌산도, 흥국사(전남문화재자료38호), 검은 모래로 이름 높은 만성리해수욕장, 울창한 송림과 얕은 수심을 자랑하는 방죽포해수욕장, 충민사(사적 제381호) 등이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하동-광양나들목-2번국도-월전사거리-17번 국도-여수-오동도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여수에 도착하면 오동도로 가는 시내버스(5분 간격, 15~20분)가 많이 있다.


태그:#오동도,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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