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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대원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은 이른 아침 6시였다. 여전히 다리도 아프고 피곤한데 못들은 척 잠을 좀 더 청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부지런한 대원들은 이미 침낭을 둘둘 말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침낭에서 빠져나왔다. 산장의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공기가 선선했다.

 

이제 겨우 산행 이튿날이었지만, 대원들은 재빠르게 아침을 먹고 산행 준비를 마쳤다. 오전 9시 반에는 "출발!"을 외치며 일렬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 걷는 속도가 느려서 앞의 대원들보다 많이 처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팀의 속도에 맞춰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산행 둘쨋날, 인디아나 존스 뺨치는 산행길

 

이 날은 전날보다 훨씬 다양한 코스가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파른 산 언저리를 내려가니, 옆으로 기울어진 나무다리가 커다란 계곡 위에 걸쳐져 있었다. 한 사람씩 다리를 건너갈 때는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대나무 숲과 끝이 보이지 않는 진흙길이 등장했다. 대나무 숲은 무난한 편이었지만, 그 다음 이어진 진흙길은 절대 만만치가 않았다. 진흙길은 판타지 게임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전경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무릎이 진흙 안으로 푹 빠질 만큼 깊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진흙길 위를 건너갈 수 있도록 커다란 나무토막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무토막이 있다고 건너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무토막은 제멋대로 널려져 있는 데다가 매우 미끄러웠다. 게다가 길에는 두껍고 울퉁불퉁한 나무 뿌리들이 뻗어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인디아나 존스라도 이곳만큼은 쉽게 넘보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체력 고갈과 함께 무너져 내린 자존심

 

대원들은 험한 진흙길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나무뿌리 위를 뛰어넘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도 나는 팀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 못했다. 발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걷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나무뿌리, 바위, 진흙길이 난무하는 구간을 지나고 나면, 앞의 대원들은 어느새 저만치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가 있었다.

 

물론 앞의 대원들이 대원들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뒤의 대원들을 기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겨우 앞의 대원들을 따라잡으면, 앞의 대원들은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체력은 빠르게 소진됐고, 자꾸 뒤처진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원들에게 잠깐 쉬자고 말하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대원들에게 약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산행 전부터 내가 아프리카 대원 중 가장 체력이 염려되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휴식 시간을 제안하는 대신 대원들에게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대원들이 나를 맨 앞으로 보내라고 했다. 맨 앞은 가이드 바로 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쉴 수 있는 자리여서 산행하기 제일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맨 앞 자리에 가게 된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맨 앞자리는 내게 있어 '가장 약한 사람이 서야 할 자리'였다. 그래서 대원들의 순수한 배려에도, 나는 대원들 중 가장 약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매우 속상했다.

 

오지탐사대에 지원하면서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족들과 친구들도 마르고 근육도 없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오지탐사대 심사 과정이었던 체력 심사와 합숙 훈련에 통과하면서 가족들과 친구들은 나를 다시 보게 되었고, 나도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원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모두 나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었고, 그 중에서는 분명 제일 약한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그 중에서 '최소한 평균'인 대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 이하는 내 자존심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맨 앞으로 가면서 나의 자존심은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몇 분 뒤 휴식 시간에는 대원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르웬조리에서 얻은 값진 교훈, '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하지만 착한 대원들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면서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었다. 어떤 대원들은 기분전환을 시켜주려고 내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웃으면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이드 조엘(Joel) 뒤에서 뒤처지지 않고 꿋꿋하게 걸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이건 어쩌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능력의 한계는 있다. 물론 노력을 하면 극복할 수도 있지만, 그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므로 당장은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산행도 즐거워지고, 내 위치에서의 역할도 찾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뒤처지지 않았고, 오히려 뒤의 대원들을 기다리면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카메라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부터 산행할 때는 일부러라도 맨 앞으로 갔다. 더 이상 맨 앞자리가 부끄럽지 않았다.

 

정상 등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체력보다 '강한 정신력'

 

약 6시간 반의 산행 끝에, 대원들은 도착지인 존 맷(John Matte) 산장(3515m)에 도착했다. 산장 아래로는 희귀식물 군락이 펼쳐져 있고, 위로는 구름에 덮인 산들이 솟아있는 멋진 곳이었다.

 

대원들은 즉시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그 동안 진흙이 잔뜩 묻은 등산화를 벗어 다른 등산화와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등산화에 묻은 진흙으로 우리가 다녀온 길이 어떠했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승재 부대장님은 산장에 낙서 아닌 낙서를 남기고 계셨다. 부대장님은 산장에 그동안 거쳐 간 등산가들의 낙서가 많이 남아 있는데,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런 멋진 산에 아직까지 한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니 왠지 아쉬웠다.

 

그래서 산장 모서리에는 산행 일자와 장소, 대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 되었다. 현재 르웬조리 관리 사무소의 기록으로는 오지탐사대가 한국인으로서는 초등인데, 조만간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우리가 남긴 기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깥에 오래있다 보니 공기가 서늘해서 몸에 점점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산장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다. 산행이 끝나고 시에라 컵에 마시는 코코아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정상을 찍는 순간은 그보다 훨씬 더 달콤할 것이었다. 

 

하지만 정상과 코코아의 차이점이 있다면, 정상을 찍기까지는 짜디짠 땀 과 콧물 맛을 봐야 한다는 것! 나는 눈물 맛까지 봐 버렸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더 이상은 대원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리고 정신력만큼은 다른 대원들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그:#오지탐사대, #아프리카, #우간다, #르웬조리,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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