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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신정일의 〈대한민국의 살기 좋은 곳 33〉
책 겉그림신정일의 〈대한민국의 살기 좋은 곳 33〉 ⓒ 랜덤하우스
우리나라 곳곳에는 숨어 있는 명승지들이 많이 있다. 그 옛날 왕이나 세도가들의 무덤을 비롯하여 선조들의 유배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 곳들이 처음에는 지관이나 풍수가들에 의해 발굴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사가 그 사실을 규정해 주기도 한다.

맨 몸으로 국토 순례를 한 신정일의 〈대한민국의 살기 좋은 곳 33〉에서는 우리나라 고승들이 세운 절과 정쟁(政爭)을 피해 낙향한 선비들의 흔적이 서려 있는 서원과 고택들을 엿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는 구석구석의 땅을 누비며 탐사한 여행기요, 국토 순례기라 할 수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답사를 위해 전국을 떠돌았고, 남한의 8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만경강, 동진강, 한탄강)을 따라 걸었다. 조선시대의 대동맥(옛길)인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를 걸었으며,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진 바닷길과 함께 한국의 산 400여 곳을 올랐다."(저자의 말)

그처럼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쓴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왕실의 태실이 있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는 경북 성주군 월향면 대산동의 한 개마을과 대원군이 사들였다는 천하의 명당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남연군묘도 소개돼 있다.

더욱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빼어난 사람들의 절망과 질곡의 시절을 보낸 장소들이 현대에 접어들어 역사유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도 조명해 준다. 이른바 정약용이 머물렀던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과 이언적의 숨결이 머무른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이 그곳이다.

그런가 하면 우암 송시열이 아름다운 곳에 아홉 가지 이름을 짓고 암서재를 지은 뒤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화양구곡도 멋진 화폭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화양구곡은 조선시대 노론의 성지 중의 성지로 손꼽혔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이 집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대하소설 〈토지〉가 TV 드라마로 방송되면서 부터였다. 〈토지〉의 무대인 하동 평사리에서 최참판댁을 구하지 못한 제작진들이 이곳 정병호 가옥을 최참판댁으로 설정하였고,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ㄱ자 팔각지붕집인 이 집 사랑채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290쪽)

이는 조선시대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더불어 성리학의 5현으로 추앙받는 정여창의 후손 정병호 씨의 가옥을 두고 이른 말이다. 그곳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묻힐 뻔 하였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병호 씨의 가옥이 자리하고 있는 함양군 지곡면 다곡리에는 앞으로 '은퇴자 등을 위한 환경친화적인 차세대 도시'가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통적인 길지에 친환경 신세대 도시가 멋지게 어우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지리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니 꼭 그런 것 같았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 그 옛날 세도를 부리거나 그 세도에 의해 쫓겨 다녔던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길도 닦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이 낸 옛 길과 집들이 현대에 이르러 문화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 훼손이 심한 상태라고 한다.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도시문명이 닿지 않은 해맑은 '병산사원' 같은 곳은 자연 풍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곳은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 가는 길처럼 도로가 포장 돼 있는 것이 아니라 비포장이요, 비좁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런 곳들이 더 깊은 멋을 자아내는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신정일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8)


#대한민국 명승지 33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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