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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전염병예방법(이하 가축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정부와 대립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2일 더욱 강도를 높여 가축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제처의 해석을 반박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국회의 권능을 얕잡아 본다는 불쾌감이 깔려있다.
 
여야 각 당은 법제처의 지적을 일축하고,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축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법제처는 지난 21일 가축법 개정안 중 수입위생조건에 대해 국회 심의를 받도록 한 개정안의 34조 3항과 부칙 2조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국회 심의 규정은 헌법상 정부에 부여된 행정입법권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헌법상 3권 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법제처의 견해를 여당 지도부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법제처에 위헌소지 검토를 요청한 농림수산식품부를 향해서는 "좀 신중히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따지기도 했다.

 

검사 출신 홍준표 "법제처 해석, 생뚱맞다"

 

가축법 위헌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날은 법률가 출신의 여야 지도부가 모두 나서서 정부와 공방을 벌였다.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베이징을 방문중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가축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제처의 입장을 보고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특히 이석연 법제처장이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의 위헌 가능성을 주장했던 일을 들며 법제처의 해석을 비판했다.

 

이 처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장관고시에 대한 위헌소송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던 지난 6월 "한·미 쇠고기 합의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법령이나 최소한 부령을 통해 발효되도록 해야 했다"며 "국민건강이라는 기본권과 검역주권이 포함된 사안인 만큼 국회의 법률, 국무회의를 통한 대통령령, 또는 최소한 법제처 심사를 받는 부령으로 실시돼야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 대표는 이를 근거로 "고시를 법률로 만드니까 (이제는) 법제처가 거꾸로 입법부에 행정부 (권한) 침해라고 말하고 있다"고 이석연 처장을 꼬집었다.

 

이어 그는 "입법부는 행정부를 감시·통제하는 기구"라며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감시 통제는 행정권의 침해가 아니라 헌법상 입법부의 당연한 권능"이라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가축법 개정안에 대해 법제처에 위헌소지 검토를 요청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홍 대표는 "농림부 장관이 좀 더 신중하게 발언하고 대처했으면 좋겠다"며 "부처 업무파악이 덜 돼 있는지 이런 중요한 문제를 함부로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고 쏘아붙였다.

 

대법관 출신 이회창 "법제처 주장, 참으로 해괴하고 어처구니 없어"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나섰다. 선진당은 가축법 개정안의 중재안을 만들어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법제처의 주장은 참으로 해괴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건강권이나 국가의 검역주권과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 국회가 법률로써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제한하는 것은 국회 입법권의 범주에 속한다"며 법제처의 주장을 되받아쳤다.

 

또 이 총재는 "더욱이 국회의 심의가 국회 동의권보다도 더 강력한 행정부 권한침해로서 위헌이라는 발언은 어처구니 없다"며 "동의권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만, 단순한 심의권은 권고적 성격을 가질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법제처는 행정부 내에서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기관일 뿐인데 입법부인 국회에 대해 공개적으로 위헌 운운 하는 것은 그야말로 행정권의 분수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부의 뒤늦은 '반란'... 왜?

 

행정부의 뒤늦은 '반란'을 두고 뒷말도 많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협상 막전막후에 정부와 여당이 충분히 의견교환을 했다면, 정부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원구성 협상 직후 기자들에게 가축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국 설득해 이해시켰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협상 타결 직전인 지난 19일 오전에는 홍 대표가 가축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 관계자와 전화로 언쟁을 벌이다 "처음부터 정부가 협상을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 일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정부로서는 '국회 심의'의 영향력에 대해 확실히 해두고 싶었을 것"이라며 "당에서 국회의 심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막판까지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것 같더라"고 말했다.

 

"머리 따로, 손발 따로냐"

 

청와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대통령이 개정 가축법을 거부할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현재로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회창 총재는 "법제처의 위헌 입장 표명은 정부의 입장이라고 봐야 하고 그렇다면 대통령은 마땅히 위헌 법률의 개정은 거부해야 옳다"며 "머리 따로, 손발 따로인인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정부가 과연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정부와 여당의 손발이 이렇게 안 맞아서야 견습 정부, 인턴 정부를 벗어나겠느냐"고 일갈했다.


태그:#가축법위헌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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