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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경암동에 위치한 철길마을. 이곳은 외지인들에게 꽤 유명한 장소다. 지금은 군산역 이전으로 기차가 다니는 일은 없다.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철길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집과 집 사이에 철길이 놓인 이 마을은 외지인이 봤을 땐 꽤 인상적인 모양이다. 군산을 여행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은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 기본요금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간다.

최근 군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군산일요화가회'의 전시작품. 경암동에 있는 철길마을의 모습이다.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은 외지인들의 눈길을 끈다.
 최근 군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군산일요화가회'의 전시작품. 경암동에 있는 철길마을의 모습이다.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은 외지인들의 눈길을 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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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취미이고 자주 출사를 나가는 사람들 중엔 군산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지금까지 몇몇 사람들에게 군산에 산다고 하면서 '전주 근처에 있다'는 말을 덧붙여야 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군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출사하기 좋은 곳으로 군산이 꼽히고 있는 데에 적잖은 의구심이 생겼다. 20년 넘게 살아온 곳이지만 어떤 모습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건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철길마을 다음으로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은 장미동과 해망동이다. 장미동에는 다 쓰러져가는 옛 조선은행도 있고 아직까지도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군산 세관 건물도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여행일지를 읽어보면 일제 강점기 때의 흔적이 남아있는 가슴 아픈 현장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군산 내에서도 가장 번화가였던 이 동네는 내항을 끼고 있어 수탈물품을 운송하기에도 편리해 일본인들이 대거 밀집해 있던 곳이다.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군산세관.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며 바로 옆에 군산세관이 있다. 현재는 문화재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다.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군산세관.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며 바로 옆에 군산세관이 있다. 현재는 문화재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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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부의 상징인 은행도 두 곳이나 있고 적산가옥이 군데군데 있으며 예전에 가부키 극장으로 쓰였던 건물도 있다. 이 중 몇몇 건물은 근대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하여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현재 복원 중인 곳도 있다. 군산시는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내항 일대에 군산시립박물관을 짓기로 하였으며 주민들의 토지 보상 문제를 해결한 후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되었던 서초등학교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망굴이 보인다. 그 터널을 지나면 유명한 영자 미장원이 나온다. 노란색 건물의 오래된 미장원은 해망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옛날 분위기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해망동에 오면 꼭 사진으로 찍고 가야할 곳인 듯 인터넷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일명 ‘과거로의 여행’. 이곳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해망동 여행이 시작된다.

해망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망굴. 터널 앞 '안녕'이라는 표지판이 익살맞다. 엄마는 이곳을 어렸을 적 민방위 훈련 시 대피했던 곳으로 기억하고 계신다.
 해망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망굴. 터널 앞 '안녕'이라는 표지판이 익살맞다. 엄마는 이곳을 어렸을 적 민방위 훈련 시 대피했던 곳으로 기억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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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앞에 있는 독특한 모습의 미장원. 튀는 노란색 벽면과 낡은 간판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다.
 해망굴 앞에 있는 독특한 모습의 미장원. 튀는 노란색 벽면과 낡은 간판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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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사진 찍으러 온 거지?”

굽이진 골목길을 여기저기 헤매다 마주친 동네 할아버지. 역시 나 말고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해망동은 2006년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미술팀이 와서 동네 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도 걸어놓고 시도 써 놓고 갔다. 전시한 지 꽤 지났기 때문에 프로젝트 당시의 완성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벽화나 오래된 분위기의 골목길은 사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미 인터넷 정보를 통해 어떤 벽화가 있고 어떤 시가 쓰였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해망동 골목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이상 길 찾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뱅뱅 돌며 걸었던 길을 또 걸으면서 마치 미로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벽화를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 속 광경이 내 눈앞에 하나씩 펼쳐질 때 꼭꼭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반가움이 앞섰다.

해망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천야해일 ; 하늘은 밤, 바다는 낮이다]. 전시는 2006년 10월 말에 끝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몇몇 벽화와 전시물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해망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천야해일 ; 하늘은 밤, 바다는 낮이다]. 전시는 2006년 10월 말에 끝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몇몇 벽화와 전시물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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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볼 수 있던 광경. 굽이진 골목 사이에서 이런 것들을 찾아낼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 반가웠다. 방문객들은 창틀에 놓여진 오래된 TV를 재미있어 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던 광경. 굽이진 골목 사이에서 이런 것들을 찾아낼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 반가웠다. 방문객들은 창틀에 놓여진 오래된 TV를 재미있어 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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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주로 표현되는 군산은 일제 치하의 흔적이고 한 때 잘 나갔던 항구 도시의 모습이다. 흑백 처리를 하지 않아도 옛날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는 것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직접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느낀 건 미안함과 씁쓸함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과거를 상징하는 피사체로 가둬버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만들었다며 떡볶이를 권하시던 동네 할머니들의 친절이 무색하게도 사진만 찍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버린 일은 두고두고 후회된다. 해망동 앞 주차장 벽화에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늘, 바람, 사람, 골목, 비, 바다 무엇을 보셨나요?” 해망동 여행의 막바지에 본 이 글귀가 나를 반성케 했다. 사람을 보지 못하고 외지인들이 그려놓은 이색적인 볼거리만 찾아다닌 셈이니 말이다. 해망동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캔버스 위 그림이요, 프레임 속 피사체로 여겨지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군산에 오는 사람들이 들렀다 가는 곳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앞서 말했던 철길마을, 내항 근처 장미동, 해망동, 적산가옥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적산가옥이나 군산세관 같은 일본식 건물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으로 인기가 많다. 정작 군산 토박이인 나조차도 가보지 못했던 동네까지 사진 마니아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모양이다.

한편 군산시는 내항 일대 구도심을 활용해 근대 문화 테마파크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근대 건물 복원과 박물관 설립이 그러한 움직임 중 하나이다. 내항과 좀 떨어진 지곡동에는 근대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라고도 한다. 일부 적산가옥들도 보수 공사에 나섰다. 이와 같은 문화 사업이 완성되고 나면 역사책에서만 보던 일제 치하의 현장을 견학하러 군산에 오는 학생들도 늘어날 것이다. 한층 더해진 옛날 분위기에 출사 오는 사람들도 지금보다 많아질 것이다. 그들이 사진 속에 담아가는 군산의 모습이 어떨지는 그들이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있다.

해망동 주차장 벽화 중 하나.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더 기억에 남는 글귀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진으로 담아갈지 궁금하다.
 해망동 주차장 벽화 중 하나.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더 기억에 남는 글귀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진으로 담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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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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