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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 몰래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다

7월 26일, 우간다에 온 이튿날이었다. 이제 하루 뒤면 기다리던 르웬조리 산에 오른다. 하지만 완벽한 등산에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한 법. 대원들은 산행 중에 먹을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캄팔라의 유명한 쇼핑몰 가든시티(Garden City)로 향했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시는 대장님, 가던 길에 카페를 발견하시고 운전사에게 정지신호를 보낸다. 대원들도 덩달아 좋아서 대장님과 함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팝(Cafe Pap)이란 이름을 가진 그 카페는 우간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 커피숍이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신문을 보거나 늦은 아침을 즐기고 있었는데, 전날 시장에서 본 우간다 사람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신문을 보거나 늦은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신문을 보거나 늦은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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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카운터에서 단체로 시킨 카페라떼가 나왔다. 커피 향이 진하고 향긋했다. 품질이 우수한 아프리카 커피인 데다 카페까지 유명한 곳이다 보니, 커피를 사 주신 대장님에게 황송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테이블 앞에서 마치 와인을 마시듯 커피를 음미했다.  

그런데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버스에 타려니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버스에 타기 전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모두 떠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더 큰 불상사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급하게 열고 나왔는데 카페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늦어도 그렇지, 어떻게 국제 미아를 만들 수가 있어?'

잠시 화가 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대원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도로로 나가 보았더니, 다행히도 맞은 편 도로에 우리 버스가 보였다. 모두 버스에 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곧, 나는 전속력으로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뒤에서 나를 간신히 붙잡은 진철 오빠는 웃으면서 몰래 카메라라고 했다. 대원들이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오지에 오기 전에 대원들 '탐사'를 먼저 했어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버스를 향해 뛰고 있던 중 찍힌 사진. 뒤에서 진철 오빠도 나를 붙잡기 위해 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버스를 향해 뛰고 있던 중 찍힌 사진. 뒤에서 진철 오빠도 나를 붙잡기 위해 뛰고 있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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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신기할까요? 아이들과 대원들의 즐거운 맞대결

남겨 두었던 커피를 마시는 동안, 대원들의 버스는 가든시티에 도착했다. 가든시티 1층에 있는 슈퍼마켓은 홈플러스나 이마트의 식품점을 연상 시켰다. 대원들은 1층에서 음식 재료를 한 카트 가득 산 뒤 점심까지 해결하고는,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갔다. 대원들은 다음 숙소가 있는 마을인 포트포탈(Fort Portal)로 가야 했다.

마침 우리 버스 옆에는 또 다른 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안에는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잔뜩 서 있었는데, 유치원에서 단체로 소풍이나 견학을 나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버스 창가로 얼굴을 내밀거나, 혹은 창에 얼굴을 맞대고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구경이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무슨 퍼포먼스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버스 창가에서 대원들을 구경하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 자리 싸움까지 했다.
 아이들이 버스 창가에서 대원들을 구경하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 자리 싸움까지 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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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일부는 아이들 앞으로 다가갔다. 창가 쪽 아이들도 대원들 쪽으로 몸을 더 불쑥 내밀었다. 아이들은 매우 작아서, 한 창가에 3~4명이 몸을 내밀 정도였다. 하지만 버스 안에는 미처 얼굴을 내밀지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버스 좌석보다 아이들의 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곧 누가 더 신기한가를 두고 아이들과 대원들의 맞대결이 시작되었다. 으르렁 소리를 내며 장난스런 공격을 시도하는 대원, 같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며 타협을 시도하는 대원 등 행동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얼마 뒤, 예상대로 어린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 버스를 사이에 끼고 다른 쪽에 또 다른 유치원 버스가 등장하자, 아이들의 환호성은 두 배가 되었다. 결국 대원들은 유치원 선생님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끼며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박대하 대원과 어린이들의 모습.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박대하 대원과 어린이들의 모습.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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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꼬치 300원에 친구를 만들다

포트포탈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이번에도 구불구불한 도로 옆으로 페인트칠한 집들이 지나갔고, 눈이 밝은 아이들은 집 앞에서 놀다가 간간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는 집들이 전부 사라지고, 넓디 넓은 차밭이나 우거진 마토케 나무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숲에서는 간혹 다음 풍작을 기대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대원들이 탄 버스는 가든시티에서 출발한 지 약 3시간 반쯤 지난 뒤, 작은 마을의 주유소 앞에서 멈췄다. 잠깐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버스가 멈추자 바구니에 구운 바나나와 옥수수 등을 담은 장사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 안으로 음식을 내밀었다. 손사래를 쳐도 버스 안으로 들어온 꼬치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결국 쇠고기 꼬치를 파는 젊은 남자에게 가격을 물었다. 500실링이라고 했다. 1불이 1600실링이니까 우리 돈으로 300원쯤 하는 것이었다.

장사꾼들이 버스 안으로 군것질을 내밀고 있다.
 장사꾼들이 버스 안으로 군것질을 내밀고 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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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가에 앉아있던 나는 즉시 쇠고기 꼬치를 사들고 한 토막을 입에 넣었다. 구운지 한참 된 것인지, 타서 그런 것인지 고기가 잘 씹히지 않았다. 그래도 현지 군것질인 만큼 질겨도 맛있었다.

그런데 내게 꼬치를 판 젊은 남자는 500실링을 주니 곧 나를 "My friend(내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떠날 때도 특별히 친구로서 인사해주었다. 신기했다. 500실링에 친구가 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500실링 친구'의 인사는 왠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이름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500실링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름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500실링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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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시티에서 차를 타고 약 7시간을 달린 뒤, 대원들은 드디어 포트포탈에 있는 선샤인(Sunshine) 호텔에 도착했다. 모두 피로했지만 바로 침대로 갈 수는 없었다. 식료품들을 날짜별 식단에 맞추어 분류한 뒤, 카고백에 정리해야 했다. 여자 대원들은 남자 대원들이 카고 백을 정리하는 동안 다음날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카고 백을 정리하고 있는 남자 대원들의 모습.
 카고 백을 정리하고 있는 남자 대원들의 모습.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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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원들은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예정된 기상 시각은 다음 날 5시였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산에 가면 어린 아이들도 친구도 만날 수 없으니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오지탐사대원으로서 우간다에 왔고, 그 덕에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오지탐사대원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버스 창가에서 활짝 웃던 아이들과 '500실링 친구'를 떠올리며, 나도 침대에 누워 아무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지어 보았다. 


태그:#오지탐사대, #아프리카, #우간다, #르웬조리,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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