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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나는 시원한 공기를 가슴으로 마시며 로마의 테베레(Tevere) 강변을 걷고 있었다. 강변의 성당과 집들은 모두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고 강 위에 놓인 다리들만이 환상적인 조명 속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지나는 이 거의 없는 테베레 강변에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마치 로마 안에 나홀로 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 속에 빠졌다.

미카엘 천사가 목격되면서부터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 산탄젤로 성 미카엘 천사가 목격되면서부터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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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과 비밀통로로 연결된 산탄젤로 성

테베레 강변을 압도하는 붉은 벽돌색의 건물이 눈에 가득 차게 들어왔다. 둥근 원통형의 이 건물은 산탄젤로 성(Castel Sant' Angelo). 과거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건물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원래 이 건물은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가 133년경에 자신과 후계자들의 무덤인 '하드리아누스 영묘(Mausoleum Hadriani)'로 짓기 시작한 건물이었다. 당시에는 벽돌 외부가  대리석으로 둘러싸이고 장엄한 원기둥이 있던 웅장한 건물이었으나 많은 대리석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건설 당시에 뜯겨 나갔다.

이 성은 로마제국 붕괴 후에 요새와 감옥, 죄수들을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되다가 교황청에서 접수한 이후에는 정치적 혼란기의 교황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산탄젤로 성이 바티칸과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 외곽을 돌았으나 그 비밀통로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기야 내 눈에 발견될 정도면 비밀 통로가 아닐 것이다.

이 성 앞을 6세기의 교황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가 지나고 있었다. 당시 그는 로마에 창궐하던 페스트 퇴치를 위한 기원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그는 미카엘(Michael) 천사가 묘역의 꼭대기에서 칼집에 칼을 꽂고 있는 환상을 목격하였다. 미카엘 천사는 흉악한 드래곤과 싸우는 칼로 자주 표현되는데, 이 환상을 본 후부터 미카엘 천사가 페스트를 칼로 물리쳤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이 성은 '성천사'라는 뜻의 산탄젤로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페스트에 걸리는 사람은 속절없이 죽어 나가던 당시에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치우면서 기도를 통해서라도 페스트를 몰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산탄젤로 성의 꼭대기를 자세히 올려다보았다. 성 꼭대기의 미카엘 천사상이 오른손에 칼을 높이 뽑아들고 있었다. 이 미카엘 천사는 번개에 맞아 1753년에 청동상으로 다시 태어난 미카엘 천사였다. 성 전체가 노란 나트륨등 조명을 반사하고 있지만 성 꼭대기에 자리한 미카엘 천사상 만이 유독 하얀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동이 터오는 아침 시간에 밝게 빛나는 미카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톨릭의 성녀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다.
▲ 카타리나상 가톨릭의 성녀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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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같은 욕망 앞에 요절한 '슬픈 베아트리체'

산탄젤로 성 입구 쪽으로 가다 보니 한 성녀의 석상이 어둠 속에 외로이 서 있다. 석상 아래에 '카타리나(Catharina)'라고 적혀 있었다. 4개의 석면 부조와 함께 서 있는 카타리나 베닌카사(Catharina Benincasa, 1347~1380)의 석상이 그녀의 일생을 묘사하고 있었다. 가톨릭 성녀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인 그녀는 그리스도의 성흔을 받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초자연적인 신비한 체험을 한 성인이다.

그녀는 왜 많은 여행자들이 들르는 산탄젤로 성 앞에 외로이 서 있게 되었는가? 아마도 생전에 천사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던 그녀의 삶이 페스트 퇴치의 역사를 가진 산탄젤로 성 앞을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병환자 등의 중병 환자들을 정성스럽게 간호하였고, 페스트로 황량해진 시에나(Siena)의 주민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자와 죄수들을 찾아 보살폈으며, 많은 분쟁을 해결하면서 평화를 전파하였다. 살아있는 천사가 천사의 성 앞에 남은 것이다.

아직 더위가 시작되지 않은 아침의 테베레 강변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강물은 고요 속에 흐르고 있었고, 밝아오는 아침 속에 산탄젤로 성만이 유독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해가 뜨는 시간의 고건축물 조명은 외로운 듯 화려하게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산탄젤로 성 앞의 광장을 걸으면서 내 머리 속에서는 16세에 죽음을 당한 한 아름다운 소녀의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산탄젤로 성 앞의 광장은 로마의 중세시기에 사형이 집행되던 장소였다.

1599년 9월 11일, 이 사형집행 장소에 천사같이 아름다웠던 한 어린 여인이 끌려나왔다.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조용필의 노래, '슬픈 베아트리체'로도 유명한 그녀는 16세기 로마의 여인으로서 짐승 같은 욕망 앞에 요절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을 성폭행한 아버지 살해를 공모했다는 죄로 교황청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그녀는 산탄젤로 다리로 끌려나와 단두대 앞에 서게 된다. 산탄젤로 광장에는 절세미인이었던 베아트리체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기도를 한 후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았고, 단두대 도끼날이 그녀의 가녀린 목을 내리쳤다. 그 피가 천사의 성 앞을 물들였다. 그녀의 시신은 성 베드로 성당에 안장되었고, 교황 클레멘테 8세(Clement VIII)는 그녀의 일가를 멸하고 그 재산을 거두어 갔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탈리아에 전설로 남아 있고 결국 유령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매년 그녀의 사형 집행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산탄젤로 광장에 그녀가 나타난다고 한다. 잘려진 머리를 든 그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의 광장 앞에서, 몇 백년 전의 인파와 목이 잘려 나뒹굴던 한 여인의 불쌍한 신체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유령 모습의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그 역사를 생각하면 지금 산탄젤로 앞 광장은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나는 테베레 강변의 로마 다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산탄젤로 다리 위에 올라섰다. 이 다리는 원래 천사의 성이 만들어질 때인 136년에 만들어졌고, 1890년대에 새로 개축된 유서 깊은 다리이다. 과거에는 이 다리를 통해서 베드로 성당을 향할 수 있었다.

이 다리가 유명세를 치르고 테베레 강변의 다리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다리 위에 지안로렌조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의 조각상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원래 천사의 다리 위에는 성 바울상과 성 베드로상 밖에 없었지만 후에 베르니니가 10개의 천사상을 더 만들면서 12개의 조각상이 남게 되었다.

로마를 자신의 캔버스로 생각했던 베르니니는 이 다리 위에 그의 특기인 아름다운 천사상을 남겼다. 조각상이 유명한 체코의 카를교도 이 천사의 다리의 조각 형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것이다.

원작은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에 남아 있다.
▲ 가시관을 든 천사상 원작은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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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지금 올려보고 있는 천사상들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만든 복제품들이다.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IX)가 다리 위의 천사상들을 햇볕에 노출시키기에는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인근 성당으로 옮겼다.

현재 이 다리 조각상의 진품은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Sant Andrea delle Fratte)에 2점, 스페인 광장 위의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Trinit dei Monti)에 1점만이 남아 있다. 성당 내의 원작은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지만 다리 위의 복제품들은 한 여름의 직사광선 아래에서 처량하게도 갈매기들의 쉼터가 되어 있다. 이 복제품들은 공인된 '짝퉁'이지만 어디에서나 짝퉁은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다.

다리 위 천사상의 머리는 갈매기의 쉼터가 되어 있다.
▲ 천사상과 갈매기 다리 위 천사상의 머리는 갈매기의 쉼터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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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이성과 사랑에 빠진다는데...

나는 각자 예수님의 유품을 들고 있다는 천사상들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천사들의 손에는 가시관, 성의, 십자가 등 예수님의 유품이 들려 있었다. 아쉽게도 십자가 못을 가지고 있던 천사상의 손에는 유명한 유품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다리의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었다. 이 다리를 건널 때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이성과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다리를 걷는 이른 아침의 한 순간에는 다리 위에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나는 유부남이니 다른 이성과 눈이 마주치고 눈이 맞는다면 지금 호텔에서 꿈나라에 있을 아내가 놀랄 일이다.

나는 수많은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천사의 성 위에 칼을 들고 있는 미카엘 천사, 가톨릭의 성녀였던 카타리나 천사, 천사 같이 아름다웠다는 슬픈 베아트리체, 그리고 베르니니의 천사상. 나는 지나는 이 아무도 없는 다리에서 온통 천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나는 마치 천사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성과 다리는 페스트와 죽음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천사를 내세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을 다하고 죽어간 후에도 이 다리 위의 천사들은 계속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온 천사들 속에서 잠시 내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살아 숨을 쉬면서 지금 날개 달린 천사들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나의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이 로마의 아름다운 다리 위에 서 있는 천사들은 계속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옛 모습이 변하지 않는 도시 로마에서 이 다리 위의 천사들도 변치 않고 계속 남아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나는 이곳이 로마이기에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로마, #산탄젤로 성, #산탄젤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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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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