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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 푸른 물. 뒤에 보이는 것이 위화도다.
▲ 압록강. 압록강 푸른 물. 뒤에 보이는 것이 위화도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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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풀섶에 무서리가 내리고 압록 빛 강물이 유난히 푸르다. 아직 결빙되지 않았지만 백두산의 냉기가 차가운 강바람이 되어 폐부를 파고든다. 압송하라는 명은 모시라는 분부가 아니다. 오라에 묶인 김상헌과 일행이 배에 올랐다. 용골대는 휘하 장수들과 먼저 떠나고 죄인 호송은 알사들이 맡았다.

용만 나루터를 떠난 배가 미끄러져 갔다. 점점 고국이 멀어진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살아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다. 죽어 백골이 돌아올 수도 있다. 정묘호란 당시 원군을 요청하기 위하여 명나라에 진주사로 갔었지만 대륙이 막혀 해상로를 통하여 갔기 때문에 압록강은 처음이다.

백두에서 발원했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은 달랐다

김상헌의 눈에 비친 압록강은 유난히 푸르렀다. 정인홍이 모함한 성혼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경성 판관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나 있을 때 보았던 두만강 물과는 색깔이 달랐다. 한 임금을 모시는 조정의 신하들도 청신(淸臣)이 있는 가하면 탁신(濁臣)이 있듯이 똑같이 백두산에서 발원했지만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나룻배가 강심에 이르렀다. 압록강 푸른 물을 바라보던 김상헌이 고개를 들었다. 백마산성이 손에 잡힐 듯 하고 멀리 삼각산이 시야에 잡혔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멎는듯했다. 한양 삼각산을 보던 심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 가슴을 할퀴었다. 한양 삼각산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산이었지만 이제 강을 건너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고국산천이다. 혜음령을 넘을 때 마음에 새겨두었던 시구를 꺼내었다.

한강에서 바라본 삼각산
▲ 삼각산. 한강에서 바라본 삼각산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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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마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김상헌/청구영언>

그렇다. 이제가면 언제 다시 고국산천을 보게 될지 모른다. 고국산천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떠나야 한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기약할 수 없다. 깊은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배가 어느덧 애자하 하구에 닿았다. 구련성과 봉항성을 지나 심양에 도착한 김상헌은 북관에 수감되었다.

김상헌, 신득연, 조한영, 채이항이 청나라 군사들에 끌려 압록강을 건넜다는 보고를 받은 인조는 경악했다. 엄한 문초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묶어서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설마가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한성으로 돌아온 영의정 홍서봉과 이조판서 이현영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직을 청했으나 이현영의 사직은 수리하고 홍서봉은 반려했다.

동지를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

"김상헌은 비록 나와 의견을 달리했지만 나라의 대들보다. 존주양이(尊周攘夷) 사상은 공유한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힘을 길러 오랑캐를 치는 데 이론적 토대를 구축해 줘야 하고 구심적 역할을 해주어야 할 동지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하고는 격이 다르다. 살려야 한다."

좌의정 신경진을 사은사로 파견한 인조가 회은군 이덕인을 불렀다.

"여식이 심양에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회은군이 심양에 다녀와야 겠소."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인조는 회은군을 진주사로 임명하고 김상헌을 구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청나라 실력자의 여자로 자리를 잡은 이덕인의 딸을 활용하자는 계책이다. 명을 받은 회은군은 심양으로 출발했다. 그를 따르는 짐바리에는 조정에서 마련해준 은화가 가득 실려 있었다.

눈엣가시, 대신 치워줄까요?

용골대와 함께 심양에 먼저 당도한 빈객 이행원으로부터 김상헌의 압송사실을 보고 받은 소현은 충격에 빠졌다. "이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럴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다리가 저려왔다. 오른쪽 다리 마비증세가 도진 것이다. 침을 맞아도 효험이 없었다. 뜸을 들이고 있는데 역관 정명수가 찾아왔다.

"김상헌과 조선 관리들이 지은 죄의 경중에 대해 황제께서 의견이 계시나 세자의 뜻은 어떠하신지 알고 싶습니다."

의외로 고분고분했다. 안하무인으로 날뛰던 정명수의 태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회은군의 약발을 받아서일까? 아니다. 회은군이 심양에 들어왔지만 동관에 머물게 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통제하고 있었다. 김상헌을 압송한 일로 청나라 조정 내부에서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철저한 보안 때문에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용골대가 비판받고 있다는 말이 참일까?"

소현으로서는 확인할 길은 없었으나 첩보는 사실이었다. 의주에 파견된 용골대가 군사를 이끌고 안주에 내려간 것은 과격한 행동이었고 김상헌을 압송한 일은 월권이었다고 비판받고 있었다. 청나라는 황제의 명을 어기는 조선을 추궁하여 군대징발과 군량미를 조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김상헌을 데리고 들어왔으니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강경론을 펴던 범문정과 용골대가 온건론을 펴던 도르곤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배신과 음모가 다반사로 이루어진 역사

그렇지만 참 묘한 질문이다. 세자의 뜻을 존중해주겠다는 듯 하기도 하고, 이왕 압송해온 죄인. 원하면 죽여줄 수도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질문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희박한 만주족은 죽음을 무릅쓴 조선 선비의 기개가 놀라웠다. 초개같이 스러져간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번에 붙잡아 온 김상헌 역시 "살려 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꼿꼿한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친 중국은 국가보다도 인물중심으로 영웅호걸이 모이고 흩어졌다.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던 영웅이 쇠락하면 미련 없이 떠나 적국에 붙었다. 이러한 배신의 역사가 크게 흠이 아니었고 다반사였다. 영웅이 인재를 모아 국가가 형성되고 인물이 사라지면 국가는 와해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주에 반대하는 신하는 죽거나 떠나야 하는 것이 중국의 역사였다.

왕권에 맞서 신권을 신장시켜온 조선은 왕에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충으로 받아들였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국가는 왕권의 상위개념이었고 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군주를 선택했다. 이름하여 택군이다. 연산과 광해가 그 희생양이다. 이러한 조선의 정치 흐름을 모르는 만주족들은 왕에 반대하는 신하가 살아있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십니까?"

정명수가 뱁새눈을 지긋이 뜨며 재촉했다. "죽여 달라"는 답변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부왕에게 대드는 눈엣가시 대신 치워주겠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과격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용골대의 행동이 합리화될 수 있고 더불어 자신도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 같은 봉이 없었다

주인이나 다름없이 모시고 있는 용골대가 문책당하여 한직으로 물러나기라도 한다면 정명수도 한 묶음으로 밀려난다. 그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다. 용골대와 정명수에게 조선 같은 봉이 없다. 탁치면 돈이 나오고 턱 치면 뇌물이 쏟아진다. 관직은 덤이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용골대와 함께 밀려난다면 벼락 맡는 꼴이다. 

"용장군이 의주에서 심문하였으니 대국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요. 어찌 감히 그 사이에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소?"

소현의 한계였다. 비록 심양에 있으나 고국에서 들어온 사신마저 마음대로 만날 수 없으니 섬에 갇힌 고립무원의 상태나 다름없었다. '김상헌을 구출하라'는 특명을 띠고 심양에 들어온 회은군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으면 보다 적극적인 답변을 할 수 있었으나 소극적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세자의 뜻을 용장군에게 전하겠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명수가 돌아갔다.


태그:#소현세자, #김상헌, #삼각산, #압록강,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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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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