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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이윽고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오늘 아침에 13살 여자애가 5년 동안 성폭행 당한 사건 나오더라. 그런데 그거 5년만에   알게 된 계기가 보건실에서 선생님하고 TV 보다가 알게 된 거래. 그래서 엄마가 너 생각   나서 전화했다. 너도 애들 그렇게 잘 가르쳐라”

“엄만~ 난 남중인데?”

가볍게 대답하고 그냥 넘겼지만 끊고 나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피해학생의 괴로움과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증오로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사건의 전모를 보니 이랬다. 만6세 때부터 5년간 백여 차례 성폭행을 당했으며, 가해자는 60대 이웃 주민이었다. 현재 피해학생은 처녀막 파열에 트리코모나스 질염에 걸린 상태였다. 그것이 나쁜 것인 줄 언제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 학생은 6학년 때 보건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TV(성교육)를 시청하고 난 후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요즘 학생들 초등학생만 돼도 이미 다 안다'라고 하지만 이렇게 무지하다. 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있지만, 왜곡된 정보와 쾌락적인 성행위만을 마치 성의 전부로 받아들여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피해 학생처럼 성폭력의 예방법, 대처방법은 고사하고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고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만약 그 여학생이 보건선생님과 비디오를 보지 않았다면, 대체 신고는 언제 이루어졌을 것이며 피해횟수와 기간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증가했을 것인가.

우리 학교 학생들은 활동적인 중학교 남학생들이다보니 찰과상, 절상, 자상 등의 외상이 잦다. 외상치료의 첫 번째는 부위세척이다. 내가 상처부위를 관찰한 후 ‘흐르는 물로 씻자’ 라고 하면 ‘선생님은 씻으라고밖에 안 한다’며 투덜거리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3학년 학생들은 다르다. 외상의 치료방법에 대한 수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먼저 알아서 물로 씻고 오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 저 잘했죠’ 이렇게 아는 체를 하면서 말이다.

이렇듯 교육의 효과는 크다. 더욱이 학생 시절은 건강행위의 습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형성된 습관은 일생동안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배가된다. 

이미 1980년대부터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 국에 보건교육을 적극 추진할 것을 권고해왔고,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는 학교보건교육에 1달러를 투자하면 14달러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현재 미국, 호주, 캐나다, 핀란드, 일본 등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의 경우, ‘건강 없이 교육 없고, 교육 없이 건강 없다’는 기치 하에 보건교과를 설치하고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실시하여 온 지 오래다.

사회적 요구와 필요에 의해 보건교과를 신설하고 교육을 하려고 한다. 이미 2007년 11월에 법이 통과되었으며, 공청회도 열렸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반대의견 때문에 시행 직전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너도 애들 그렇게 잘 가르치라”고 엄마가 나에게 말씀하신 그 바람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 아닐까?


#보건#보건교사#보건교육#성폭행#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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