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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출근 전 집사람과 녹차 마시는 시간은 갈수록 소중해진다.
▲ 녹차 마시는 시간 출근 전 집사람과 녹차 마시는 시간은 갈수록 소중해진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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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기 내과 젊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

"뇌졸중은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질병입니다. 심장 동맥경화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은 당장 수술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내년 심장 단층사진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심장의 우측 대동맥 안쪽에 칼슘이 침착되어 석회질로 굳어진 덩어리가 많이 보입니다. 물론 심장 안에도 있고요. 수술은 매우 심한 통증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소리를, 의사는 어찌 보면 비웃거나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8월 초에 들은 말이다.

다른 병원 재활의학과 의사는 맥을 짚어본 후 "맥이 참 힘차네요"라면서 인사를 건네 온다. "동맥경화가 진행 중이라서 곧 죽는다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요즈음에는 젊은 이삼십대도 동맥경화가 많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덜 조리하고 거친 음식을 드세요"라고 말한다. 역시 얼마 전이다.

옛사람들은 꽃과 달 그리고 미인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했고, 어떤 독서광은 글쓰기와 바둑 그리고 술이 있어 살 만 하다고 했다. 나는 시랑헌(나와 집사람이 지리산에 만드는 농장)을 가꾸고 싶은 꿈이 있어 세상이 살 만하다.

이 꿈의 현실화 여부는 내년 8월에 검사할 동맥경화 경과와 당화혈색소 수치에 달렸다. 나와 집사람은 "동맥경화가 진행을 멈췄거나 호전되고 당화혈색소 수치가 6.5(3개월간 평균 혈당이 130㎎/㎗를 유지해야 한다) 이하이면, 시랑헌 가꾸기에 어느 정도 돈을 투자해도 좋다"는 약속을 해뒀다. 대신 그 때까지는 최소한의 경비만 지출하기로 했다.

102살까지 사는 방법 '가늘고 길게'

꽃잎에 가을을 묻힌 벌개미취 꽃이 피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려나 보다.
▲ 우물가의 벌개미취 무리 꽃잎에 가을을 묻힌 벌개미취 꽃이 피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려나 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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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동창들의 카페에 올려놓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간의 남은 수명을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질문은 개인적인 자료와 건강스타일에 따라 각각 12개 문항으로 되어 있으며 답안은 때와 장소나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다만 질문의 첫 머리에 어떻게 살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은 세 가지, 즉 '굵고 짧게' '남들 사는 것만큼' '가늘고 길고'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처음에 '남들 사는 것만큼'을 선택했더니 83세가 나왔고 '굵고 짧게'는 63세, '가늘고 길게'는 102세가 나왔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수명의 차이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도시에 사는 것과 1만명 이하의 면단위 시골에서 사는 것은 수명을 좌우하는 변수였다. 아무리 '굶고 짧게' 사는 것이 화끈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5년 수명으로는 시랑헌의 설계와 건설이 불가하다.

'가늘고 길게' 사는 법이 흥미롭다. 가능하다면 이 방법을 선택해 102세까지 살면서 이승에 온 목적을 이루고 싶다.

꽃이 지고 나야 잎이나오기 때문에 잎과 꽃은 항상 서로 그리워 할뿐 
만나지 못한다는 사연의 꽃. 번식을 시키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되질 않는다
▲ 상사화 꽃이 지고 나야 잎이나오기 때문에 잎과 꽃은 항상 서로 그리워 할뿐 만나지 못한다는 사연의 꽃. 번식을 시키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되질 않는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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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잃으면(공복시의 혈당치가 130㎎/㎗를 넘는 경우) 목숨을 내놔야 하고 하루를 얻으면 꿈을 이룬다.'

순환기내과 의사의 동맥경화 소견을 듣고 나서부터 생긴 혈당관리를 위한 나의 좌우명이다.

집사람은 내가 먹는 음식의 종류와 칼로리 총량을 계산하고 1800이 넘지 않도록 조절한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일체 음식을 먹지 않는다. 허기를 잊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111, 어제는 131, 그제는 127㎎/㎗가 최근 나의 공복시 혈당 수치이다. 150㎎/㎗를 상회하던 공복시 혈당이 나의 피나는 노력에 응답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노력하면 좋아지는 나의 육체가 한없이 대견하고 고맙다.

새벽 4시 경이면 일어나 5시까지는 주로 책을 읽는다. 5시부터 30분간은 뇌파진동을 위한 수행을 하고 5시 반부터 30분동안은 생활 참선을 한다. 6시가 되면 백팔배를 시작한다. 명상과 함께 하는 백팔배는 일반 백팔배에 배해 약 2배 정도인 40여 분 걸린다. 백팔배가 끝나면 마무리 명상을 하고 7시에는 아침 식사를 한다. 요즘 출근시간인 8시까지는 집안의 앞뒤 마당으로 돌아다니며 꽃과 나무들과 대화한다.

출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사람은 녹차를 들고 포치로 나온다. 맑은 날이나 분위기가 있는 날에는 옥상으로 올라가 내가 만들어 놓은 편상에 앉아 계룡산 삼불봉을 바라보며 녹차를 마신다. 현관 앞 포치에서 마당의 잔디와 화분들과 같이 차맛을 음미하다보면 백팔배의 자연에 감사하며 올리는 88번째 절의 의미가 새롭다.

점심시간에는 집사람이 싸준 도시락을 먹고 헬스장으로 가서 30분간 걷는다. 5분 걷고 5분 뛰고 하다보면 머리에 땀방울이 맺힌다. 운동 후 사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매우 상쾌해진자. 화요일과 수요일은 퇴근 후 목공방으로 가서 전통 한옥의 짜맞춤 원리를 공부하고 실습하는 소목장(小木匠) 공부를 한다.

월요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집 앞의 한적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룡산을 바라보며 집사람과 같이 걷는다. 오가는 걷기코스를 6회 하다보면 1시간 30여분 걸린다. 집에 돌아와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대부분 30여분 이내에 잠들어 버린다.

1천만 원 정도면 멋진 오두막 별장도 짓는다

햋볕이 좋을 때는 잎의 색갈이 고은 마삭줄의 잎이 비오는 날이라 그런지 잎의 색갈이 밋밋하기 그지없다.
▲ 마삭줄 햋볕이 좋을 때는 잎의 색갈이 고은 마삭줄의 잎이 비오는 날이라 그런지 잎의 색갈이 밋밋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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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은 이미 떠날때를 알고 모두 떠나갔는데 이애들만 무슨 사연이 있어 철이 한참 지난 오늘 아침에야 한쪽 구석에서 꽃을 피웠다.
▲ 철 늦은 능소화 다른 친구들은 이미 떠날때를 알고 모두 떠나갔는데 이애들만 무슨 사연이 있어 철이 한참 지난 오늘 아침에야 한쪽 구석에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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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유가 시대인데, 그 대상이 기름이 아니고 곡물이라면 어찌 됐을까?

이미 우리 농촌은 생산 기반을 잃었고, 생산을 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없다. 만일 아파트에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정지한 것과 같은 정도의 위기일까?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이 우리의 농산물 생산기반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농산물을 전략무기화 한다면 아파트에 전기·수도가 공급되지 않는 것과 비교도 안될 혼란에 빠질 것이다. 생각조차 싫은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여러 남자들과 이야기한 결과,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영역인 성(城)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 꿈은 돈이 너무 많이 들거나 번거로운 행정 규제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묻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1천만 원 안되는 돈으로 편백나무향 그윽한 오두막 별장을 지어 자연과 상생하는 삶을 산다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명한다. 그러나 지나온 과정이나 시행착오를 들려주면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나는 공구를 사고 목조 주택학교를 다니면서 집짓는 일을 배워서 오두막이나마 지었다. 집짓는 기술이나 가구를 만드는 기술이 조금 더 원숙해지면 1천만원짜리 오두막 별장을 짓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어린 시절 많이 해본 레고 장난감 조립 실력 정도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같이 나무를 다듬고 조립하고 해체하여 목적 장소에서 다시 조립만 하도록 말이다. 1천만원 정도로 10평 규모의 얘기와 역사가 있는 친근한 목조 별장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나의 남은 평생 일로 삼고 싶다.

내 경험에 의하면 10평 규모는 한 가족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규모이다. 집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아무리 고급이라고 하더라도 호텔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뿌리를 내리면 잎이 피듯 집이 있으면 채소를 비롯한 농작물과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것이 오두막 별장의 의미이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입으로 들어갈 작물을 농약과 화학비료로 재배하길 원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우리는 농사의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게 되고 질을 위한 농사를 짓게 된다. 그리고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원탁에 둘러 앉아 달과 별님을 초청하여 온 가족이 손수 재배한 수박·참외·옥수수·토마토를 먹으면서 낮의 고생을 서로 칭찬하고 위로한다면 가족간의 동지애와 가정의 소중함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까닭

나는 우리나라 3가구당 1가구가 주말농장을 갖고 있고, 생산원가를 따지지 않고 가족을 위한 친환경 유기 농산물을 생산한다면 미국이나 그외 곡물 수출국의 곡물 전략무기화 작전에 놀아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오두막 별장이 필수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나의 남은 인생의 숙제를 찾은 셈이다.

나는 시랑헌을 통해 우리의 농촌을 살리고,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대재앙에 대비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내가 4시에 일어나고, 한옥과 팀버프레임의 장점을 살린 퓨전 목조주택을 짓기 위한 설계 및 목수공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농민이 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갖고 산골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이다.

생명의 어머니 대지를 사랑하며 경애하는 마음이 우리들 가슴에 들불처럼 번지는 그 날, 나의 삶의 형태가 '굵고 짧게'라고 해도 좋고 '가늘고 길게'라고 해도 좋다.


태그:#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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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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