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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삽니다."

"방충망 교환하십시오."

"방충망, 샷시문, 유리, 수리 제작합니다."

 

화물차가 시골길을 누빈다. 고물을 사겠다는 확성기의 소리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고샅길에서는 짤랑 짤랑 가위질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물수집가 김기연(39)씨다.

 

그는 고물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고장 난 물건이나 농기계는 고쳐주고,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것은 만들고 고물과 생활용품을 교환하기도 한다. 원래 그의 직업은 자동차수리공이었다. 자동차수리 20년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손재주가 남다르다.

 

고물 찾아 마음 가는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엿가위 하나 달랑 들고 나섰다. 1톤 화물차를 몰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의 꿈은 돈 벌어 카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자수성가하고 싶다는 그는 나름대로의 기술을 터득한 후 월급쟁이보다는 자유로운 길을 택했다. 여수 일원이 그의 일터다.

 

"세월만 가불고 깝깝하요. 기술도 제대로 못 풀어먹고, 세상 구경도 하면서 내 맘대로 다니니까 그래도 할만 해요."

 

"돈이 많이 깨져 분께 멀리는 못 다녀요. 또 그곳 시장성도 파악해야하고, 그냥 욕심 없이 삽니다. 샷시도 하고, 방충망도 하고, 고장 난 기름보일러나 농기계 수리도 합니다."

 

고물상으로 나선지 올해로 5년째다. 고물수집보다는 농기계수리를 하는 그는 이것저것 다 제하고 한 달에 200만원 벌이를 한다. 심성이 고운 그는 시골노인들에게 간단한 장비는 무상으로 고쳐주기도 하고 현장에서 만난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준다.

 

일터는 마음 가는대로 찾아다닌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이따금씩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면 그곳으로 향한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도와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엿가위를 짤랑거리며 이른 아침부터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일과 고물을 찾아다닌다.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난감한 경우도 많이 있다. 노인들뿐인 시골사람들은 장롱이나 냉장고 등을 치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사실 장롱이나 냉장고는 돈이 안 된다. 하지만 그분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싣고 오기도 한다.

 

한번은 할머니가 방이 비좁아 발을 뻗을 수가 없다며 냉장고를 치워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자식이 부도가 나서 사글세방으로 홀로 나앉은 할머니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며 그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행복한 고물여행, 더불어 삶

 

 

자동차 정비공장이 그의 꿈이다. 멋진 정비공장하나 차려서 장애우와 어르신들의 차를 무상으로 고쳐주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고물 수집을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움도 많았다. 아내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그를 이해해 주는 편이다.

 

골목길에서 메가폰으로 외치고 다니는 일도 쉽지 않다. 하루 10시간을 다니다보면 목도 아프고 사람들이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해서 엿가위로 바꿨다. 3년 전부터 엿가위를 짤랑거리고 다녔다는데 가위질하는 폼이 제법 난다.

 

이제는 나름대로의 장사 수완도 많이 생겼다. 스티커를 만들어 시골의 대문에 붙여놓기도 한다. 그는 집안에서 부르기 전에는 대문이 열려 있어도 안으로 절대 안 들어간다. 도둑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은 육지보다 섬에 가야 많다. 섬은 접근성이 떨어져 다른 고물상들이 잘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고물여행을 즐긴다. 고물을 사는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이웃들의 마음을 사 모으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돕기를 자처하는 그가 진정한 우리들의 고물수집가다.

 

진정한 우리들의 고물수집가

 

여수 소라면 죽림 하금마을. 그와 엿가위를 짤랑거리며 고샅길을 돌아봤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보면 고물이 있을지 없을지 경험으로 대충 짐작이 간다고 한다.

 

"다 통밥이여 통밥, 여기는 없어요."

 

아니나 다를까 하루 전에 다른 고물장수가 마을을 다녀갔단다. 마을을 도는데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골집의 방충망을 살피던 그는 할머니에게 찢어진 방충망을 교환하라고 한다.

 

"방충망 갈아 붑시다."

"돈이 많으면 나는 못해, 얼마나 되겄소?"

"싸게 해드릴 께요."

"8개 다 갈아 붑시다."

"한개는 암시랑 안한디요."

 

마당에 널어놓은 검정콩을 밟고 있던 할머니와 가격 흥정을 한다. 서로 간에 가격을 조율해서 방충망을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따온 거라며 참외를 깎아서 시원할 때 먹고 하라며 부른다.

 

"잡숫고 해. 튼튼하게 잘해주세요."

 

'뚝딱 뚝딱' 그의 손길을 몇 번 거치자 방충망이 새롭게 탄생한다. 고물상 김씨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고물상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물상, #엿가위,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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