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권력은 절대 나눠 가질 수 없다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어도, 사람들은 누구나 권력의 속성을 잘 안다.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절대자'의 시야와 자세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안다. 말을 좀 쉽게 바꾸어보면, 하늘에 해가 두 개일 수 없다는 말이다.

권한이 아닌 권력은 그렇게 정상에 홀로 앉은 외로운 것이기도 하고 정상에 홀로 앉았기에 혼자만 맛볼 수 있는 묘한 우월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거기엔 중독성도 있다.

국가에 새로운 전성기를 불러온 지도자로 평가받기도 하고 옛 소련 시절 못지않게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강력한 독재정치를 한 지도자로 평가받기도 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권력의 중심부에 오른 이후 전임 지도자 옐친과 철저히 이별하고 '강한 러시아의 부활'라는 국가 재건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리고 실제로 눈에 띄는 국가 재건 결과를 사람들에게 내놓으며 연임 정권 말기까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Vladmir Vladimirovich Putin, 1952~ )이다.

권력 최정상에 있던 자가 차기 지도자 '밑으로 들어가는' 일은 분명 권력의 속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푸틴이 바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는 러시아의 권력을 두 개로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권력 중 '세컨드'를 차지했다. '퍼스트'는 푸틴의 오랜 정치 동지이자 수족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Anatolyevich Medvedev, 1965~ ) 차지가 됐다. 2008년 5월 7일 러시아 권력은 그렇게 바뀌었다. 아니, 바뀐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러시아는 지금 권력 실험 중이다.

푸틴이 완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소 민망한 모양새로 비쳐질 수도 있는 총리 자리로 옮겨 갔다. 그가 자신의 수족이던 자 밑에 들어가며 발생한 새로운 권력구조는 러시아 역사상 매우 낯선 일이다. 물론 권력이 실제로 푸틴에서 메드베데프로 넘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 지은이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갸우뚱해 한다. 푸틴의 새 위치가 그 자체로 매우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사는 이중권력이 싹 트는 순간 이미 한 쪽이 철저히 파괴 당하는 일을 겪는 권력의 속성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푸틴 대에서 180도 아니 360도 변형됐다.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가 러시아 역사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지금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유철종·박상남·채인택 지음, 플래닛미디어 펴냄, 2008)는 그래서 더욱 따끈하고 후끈하다.

두 개의 권력? 아니, 어디서 그런 일이...

겉그림
▲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메드베데프, 푸틴의 이중권력 그 운명은> 겉그림
ⓒ 플래닛미디어

관련사진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이어가겠다."
"헌법상 대통령은 단 한 명밖에 존재할 수 없다."

누구 말이 맞는가. 아니, 어느 쪽 말이 맞는가. 이 두 가지 상반된 발언은 2008년 3월 2일에 메드베데프가 러시아연방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한 말이다. 이것은 마치 러시아 역사의 부침에 따라 양날의 칼처럼 보인 러시아연방 문장과 관련된 이야기와 맞물린다.

"쌍두독수리가 러시아 국가 문장에 들어간 것은 15세기 말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였던 이반 3세 때이다. 이반 3세는 비잔틴 제국 마지막 황제의 조카인 조에(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와 결혼했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수도 비잔티움이 오스만 튀르크에 함락되면서 종말을 고했다. (…) 그리고 비잔틴 제국의 문장이던 쌍두독수리도 가져다가 자신의 상징으로 썼다. 비잔틴 제국은 동서를 연결한다는 뜻에서 쌍두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했었다.

이 문장을 두고서 러시아 내외에서 말이 참 많았다. 후에 러시아가 한창 팽창을 할 때는 동과 서로 거침없이 영토를 넓혀가는 러시아의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여겼고, 광대한 영토 속에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모두 수용한다는 뜻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분란에 휩싸일 때는 반대의 해석이 거론됐다. 러시아는 결코 하나로 단결된 강력한 국가가 되기 힘들다는 자조 섞인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쌍두독수리는 러시아가 단결해 강력할 때는 동서를 잇는 가교의 상징이 되는 것이고, 내부적으로 분란이 있거나 허약해졌을 때는 단합하지 못하는 허약한 상황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이 나뉘었다가는 통합되고,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지는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를 상징한다는 쓴소리도 있다.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서도 이러한 러시아 권력사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 (이책, 271~273)

이 책은 러시아의 영광을 21세기에 다시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는 푸틴 이후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예상해보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 의도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 가지는 전임 대통령 푸틴이 새 대통령이자 자기 수족과도 같던 메드베데프 정부 밑에서 총리를 맡음으로써 러시아 역사상 매우 생소하고 (그 결과 때문에) 두려운 '이중권력'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연임까지 했음에도 퇴임 시점까지 강력한 국민 지지를 받고 퇴임한 푸틴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새내기에 불과한 메드베데프 사이에 권력 이양이 정말 이루어졌는가 하는 데에 대한 의문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안팎의 관심 속에서 그야말로 러시아식 권력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포스트 푸틴' 시대를 이끌 적임자로 낙찰 받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푸틴이 2000년에 처음 대통령에 오를 때처럼 러시아 정치권에서 여전히 낯선 인물이다. 40대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는 메드베데프는 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물러난 푸틴에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어느덧 국가 영웅이 된 푸틴에 비하면 메드베데프는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생소한 인물이다. 러시아는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흥미롭고 떨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것인가, 아니면 허수아비 대통령을 (푸틴 보호용으로) 세운 것인가. 외부에서뿐 아니라 러시아 내에서도 여전히 그 역할과 미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메드베데프 이야기, 아니 '포스트 푸틴'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쌍두마차의 위험한 동거 혹은 더 튼튼한 권력?

"러시아의 역사에서 항상 혼란과 피를 불러왔던 이중권력 실험이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두 지도자가 서로 협력해 가며 조화로운 통치를 펼칠 수 있을까? 이중권력 체제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꼭두각시로 남고 푸틴이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것인가? 아니면 비정한 정치 게임이 흔히 그러하듯 후임자인 메드베데프가 정치적 스승인 푸틴을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할 것인가? 러시아의 권력 교체 이후 꼬리를 무는 질문이다."(이 책, 16)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는 서론을 제외하면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간 메드베데프, 그는 누구인가')는 러시아 권력층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메드베데프가 누구인지를 다루었다. 2부('메드베데프 시대 러시아')는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총리 자리에 떡하니 자리잡은 푸틴의 그늘이 메드베데프 정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이와 관련하여 메드베데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관한 예상 그림을 그려보았다. 여기서, 2부 마지막 장(6장 '한국-러시아 관계 변화 오는가')은 우리와 관계된 부분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 3부('배신, 권력의 형식-전임자를 밟고 권력을 키워라')는 마치 부록과도 같은 부분인데, 여기서 지은이들은 러시아 권력사를 무대처럼 펼쳐보는 가운데 새로운 권력 실험을 시도하는 메드베데프 정부가 이 난처하기 짝이 없는 이중 권력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상상을 시도했다. 3부 마지막 장(9장)이 '메드베데프는 전임자 푸틴을 극복할 수 있을까'인 점이 여러모로 새로운 질문들을 낳을 듯하다.

참고로, 서론은 이번 상황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 밑그림을 그렸다. 예상을 뒤엎은 권력 교체나 푸틴의 의도는 무엇인가와 같은 부분이 그것을 말해준다. 책 끝에 포함된 메드베데프 약력은 생소한 그의 이력 탓에 다른 이들 약력에 비해 주목 받을 만하다.

러시아의 이상야릇한 실험은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관심을 끄는 사항이다. 우선, 제2 전성기라 할 만한 러시아의 재기가 줄곧 이중 평가를 받아온 푸틴에서 시작되었고 그 같은 분위기가 일단 새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른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소련 해체 이후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러시아가 다시 일어서서 꿈틀대는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새 대통령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넘어설지 아니면 푸틴(정책)을 이어갈지는 그래서 무척 중요한 소식이다.

강력한 권력 집중을 바탕으로 소련 스탈린 시대 독재정치를 연상시키듯 해, 높은 국민 지지와 별개로 러시아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던 푸틴. 그러나 그는 지금 권력 중심에서 잠시 한쪽으로 물러났고 대신 메드베데프라는 새로운 인물을 내밀었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 위험한 실험으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한 푸틴의 의도를 따져보는 일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역동적이다. 이 책은 어느 순간 러시아의 새로운 상황 변화에 따라 갑자기 밀릴지 모를 책이다. 러시아의 권력이 다시 푸틴으로 돌아간다든가 그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 책이 다시 쓰여져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시의적절하다는 말은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러시아의 이중권력 시도만큼이나 다소 위험하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이 오래도록 중요한 책으로 남을 수 있는 한 요소로 러시아의 권력사를 다룬 3부가 책에 포함되어 뒷문 단속을 한지도 모른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내용 전체가 사실상 질문이요, 예상 답안이다. 지금 러시아 상황은 이렇고,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흘러갈 것 같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이루어진 책이 바로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시의적절하고 그만큼 그들 상황 변화에 민감하다.

지은이들은 푸틴이 임기 말까지 국민에게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는 점, 실세 총리 역할을 하려 한다는 점, 실제 권력에 해당하는 부분이 여전히 푸틴 중심에서 연출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메드베데프 정부 역할에 대해서는 내내 의문을 내비친다.

물론 메드베데프 정부가 푸틴 정부를 넘어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언급한다. 국가경제 파탄과도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에 오른 푸틴과 거듭되는 경제성장 상황에서 대통령에 오른 메드베데프는 국정운영 방식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예상은 학자 출신이요 자유주의 시각이 강한 메드베데프와 그에 반해 KGB출신에 강력한 지도력을 선호하는 푸틴의 배경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메드베데프 새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이던 2008년 2월 시베리아에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경제 계획에 관한 4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제도Institution, 인프라Infrastructure, 기술 혁신Inovation, 투자Investment 등 '4대 I'이다. 이는 그의 국정 방향을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며 러시아의 현 상태를 거꾸로 되짚어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냉전시기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70년간 누려온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우위를 소련 붕괴와 더불어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러시아는 당시의 영애[기자 주, 영예]를 되찾아야겠다는 꿈을 간직해왔다. 그리고 지금 서서히 그 꿈을 현실화할 시점이라고 러시아의 신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말하고 있다. (…) 푸틴 시대를 거치면서 부활한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며 국제사회에서 보다 완성되고 책임 있는 국가가 되길 꿈꾸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미국 달러화 주도의 세계경제패권을 넘보며 루블화 중심의 국제경제권 건설이라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에서 시장의 규모와 영향력은 이미 서구유럽과 미국 중심에서 중국, 러시아, 한국, 인도 등 유라시아 대륙 국가들에게 넘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다시 말해 서구 중심의 시대가 가고 유라시아 대륙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책, 112~113)

여하튼, 책은 내내 질문으로 넘쳐난다. 모든 말이 다 질문으로 보일 정도이다. 다 '앞으로 이럴 수도 있고, 또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지금 유용한 것은 러시아의 권력구조는 지금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고, 여기에 누군가는 발빠르게 질문을 던져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러시아의 성장 그리고 국제사회 재부상 상황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뜬금없이 책 부제인 '메드베데프, 푸틴의 이중권력 그 운명은'을 툭 던져본다. 그들 상황이 결코 남 일이 아닌 이상에야, 그들 운명이 곧 우리 운명과도 얼마간 관계되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에 맞선다고 판단하는 수많은 주변 권력을 가지치기(!)하며 '국가자본주의'와 '통제된 민주주의'를 실험해 온 푸틴.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해보일 정도로 자유 러시아 기치를 얼핏 내비치는 '푸틴의 아이' 메드베데프. 그 둘은 어찌 될 것이며, 그 둘이 이끄는 러시아는 또 어찌 될 것인가. 가만 보니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는 '두 개의 한국,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데 있어 얼추 참고할 부분이 많다.

덧붙이는 글 |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메드베데프, 푸틴의 이중권력 그 운명은> 유철종·박상남·채인택 지음. 플래닛미디어, 2008. 13000원.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 - 메드베데프, 푸틴의 이중권력 그 운명은

유철종. 박상남. 채인택 지음, 플래닛미디어(2008)


태그:#메드베데프, #러시아, #푸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