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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의 가장 기분 좋은 순간. 바로 여행가방을 공항버스 화물칸에 넣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복잡했던 여행 준비 시간을 마무리하고 눈앞에 펼쳐질 여정에 들뜰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 밖은 빗물에 젖어 있었고, 빗줄기가 버스 창문을 따라 계속 흐르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빗물을 머금은 한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빌딩도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회사 건물을 한 번 보면서 괜한 쓴 웃음을 지었다. 며칠 뒤면 저 건물을 또 바삐 오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화대교도 온통 빗속에 잠겨 있었다. 영종대교를 지나 넓은 갯벌을 보면서 공항버스는 계속 달렸다. 머리 속에서는 택시 트렁크에서 빼내던 내 여행가방이 조금 찢겨진 것이 계속 맴돌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하고 탑승 게이트를 찾았다. 인천공항은 확장공사를 해서 제2터미널이 크게 증축되어 있었고, 내가 타고 가는 독일 비행기도 제 2터미널에서 출발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공항열차를 타고 인천공항 제 2터미널로 이동했다.

항공사 승무원들이 연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 인천공항. 항공사 승무원들이 연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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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도착한 우리는 122번 게이트 앞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한 신혼부부가 와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연착하느냐고 묻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한 30분 정도 연착될 거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리는 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1시간 30분 안에 로마로 가는 항공기로 환승해야 하는데, 30분을 까먹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해외여행에서는 잠깐 동안의 불확실성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 불확실성의 틈이 나중에는 여행 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따져 물었고, 그 직원은 더 힘 빠지는 이야기를 했다.

"혹시 연착되어서 환승이 실패하시면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 드립니다."
"그럼, 뮌헨에서 로마 가는 다음 비행기가 몇 시인지 알아봐요."
"그 다음날 아침 6시 30분에 있네요. 숙박시설도 알아봐 드립니다."

아침부터 가방이 찢겨서 재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여행 초반부터 꼬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뮌헨까지 운항시간 자체를 줄일 것을 기장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일 로마 일정이 걱정됐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흥분하면 나를 따르는 가족들도 여행 기분을 잡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는 원래 출발시간보다 30분이 지나서 승객들을 태우기 시작했고 정확히 50분 지각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항 활주로가 혼잡해 거의 1시간 30분이나 지난 시간에 이륙했다.

비행기가 운항되는 동안 기내 방송 화면에는 뮌헨 도착시간이 계속해서 정상적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다시 뮌헨 도착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그 한국인 스튜어디스는 뮌헨에 2시간이나 늦게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스튜어디스에게 따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속으로 화를 삭였다.

비행기 창에 낀 서리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 비행기의 서리. 비행기 창에 낀 서리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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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 로마에서의 오전여행은 물거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걱정하면서도 이것이 우리 여행의 운명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밥에 참기름과 고추장을 섞어 맛있게 먹었다.

다행히 놀랍게도 이 비행기는 몽골, 시베리아, 러시아를 거쳐가는 동안에 운항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뮌헨 공항에는 원래 항공기 도착시간인 17시 45분을 조금 지나 도착했다. 수많은 환승 승객을 태운 기장이 운항속도를 높여서 거의 제 시간에 승객을 내려준 것이다. 유럽까지는 운항 시간이 길어서 이런 일도 가능한 모양이다.

아!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짐을 챙기다 보니, 신영이의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신영이가 공항 화장실에 갈 때 나에게 카메라를 맡겼고, 그 후에 나는 책을 보는 아내와 신영이의 자리 사이에 카메라를 두고 잘 챙기라고 했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아무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사진이야 내 DSLR 카메라로 찍으면 되지만 정든 카메라를 잃어버린 사실에 마음이 씁쓸했다.

작년에 여행한 뮌헨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롭다.
▲ 뮌헨공항. 작년에 여행한 뮌헨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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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는 이탈리아의 소형 항공사인 '에어 돌로미티(Air Dolomiti)'의 비행기였다. 짧은 환승 시간에도 나는 우리 여행짐이 이 비행기에 잘 실려 있는지를 항공사 직원에게 다시 확인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이탈리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 이탈리아의 하늘. 비행기 창밖으로 이탈리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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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탈리아 비행기 안에는 독일과는 확 바뀐 스타일의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아펜니노 산맥(Appennino Mts.)을 아래로 둔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늦은 저녁 시간. 유럽까지의 장시간 비행기 탑승으로 나의 가족은 너무나 몸이 피곤했다. 한국시간으로 생각하면 새벽 시간까지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로마 시내로 이동하기로 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택시기사 한 명이 다가와서 자기 택시를 타고 가자고 호객을 한다.

"바티칸 근처 호텔까지 요금이 얼만데?"

그런데 녀석이 대답은 안하고 빨리 가서 타잔다. 내가 다시 가격을 물었더니 78유로가 적힌 영수증을 보여준다. 이런 사기꾼이 있나? 나는 공항의 택시 승강장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가서 줄을 서 있는 택시 중 한 대를 잡아 탔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점점 로마 시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텔들이 나오고 큰 길이 이어지고 키 크고 통통한 이탈리아의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샛노랗고 커다란 달이 우리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신영아! 저기 봐봐 저 보름달, 저 소나무 뒤의 보름달, 정말 크지 않니?"

나는 로마에서 커다란 소나무 위에 걸린 보름달을 보면서 묘한 감흥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묘한 달덩이는 바티칸 성당까지 계속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숙소 앞에서 바라본 조명 속의 바티칸이 참 아름답다.
▲ 밤의 바티칸. 숙소 앞에서 바라본 조명 속의 바티칸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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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묵을 호텔은 바티칸 앞에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티칸 성당의 돔은 밤하늘의 조명 아래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머리 속은 조금 복잡했지만, 일정상 변수는 없이 로마에서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일 아침, 밝은 태양 아래의 로마를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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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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