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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얼굴은 잠깐 찡그려 지지만 누군가의 얼굴은 평생 활짝 피어납니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탤런트 이영아씨가 출연한 헌혈광고의 카피. 여름만 되면 모자라는 혈액 때문에 헌혈을 독려해야겠다는 취지로 만든 광고지만, 나는 이 광고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 헌혈의 집을 갈 때마다 퇴짜를 맞고, 같이 간 사람들이 헌혈을 마치고 나오기까지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저비중이네요. 오늘은 헌혈이 안 되겠네요."

"네? 또요?"

 

이 대화를 도대체 몇 번이나 했던가. 헌혈광(狂)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30회 이상 헌혈한 사람에게 주는 은장과 50회 이상 헌혈을 한 사람에게 주는 금장을 둘 다 받고 80회 이상 헌혈을 했던 예전 남자친구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헌혈을 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보면서 나도 헌혈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몸무게 미달로 못했고, 그 덕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대학교 때는 몸무게가 기준치인 47kg을 넘어도 못했다. 위 대화에서 나온 '저비중' 때문에. 오늘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갔던 때가 약 3주 전이었는데, 잠도 많이 자고 전날과 그날 아침에 불고기까지 먹어서 저비중을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벅찬 내게 떨어진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

 

"헤모글로빈 수치가 0.1 모자라서 오늘은 안 되겠네요."

"정말요? 으악!"

 

드디어 첫 헌혈을 할 수 있게 되다

 

그러다 그저께 라디오 뉴스에서 울산시혈액원이 가지고 있는 혈액 보유량이 1주일치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지난번에 성분헌혈을 한 남자친구도 만났겠다, 날은 덥고 배는 살짝 고팠지만 그래도 남자친구를 졸라 헌혈의 집에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헌혈기록카드에 인적사항을 적었다. 그리고 뒷면에 나와 있는 질문에도 답을 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오늘은 제발 좀 돼라'라는 생각만 계속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문진실 앞에 섰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밀고 당겨도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안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밀었는데 어이없이 열렸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들어왔다. 안에서 검사원분의 한 마디, "들어오기가 참 힘들죠?"

 

드디어 가장 떨리는 순간. 혈압을 재고 저비중 검사를 했다. 내가 앉은 곳에서는 저비중 검사 시약이 잘 보이지 않아 더 불안했다. 조금 후 황산동액 안에 뜬 피를 보신 간호사분의 한 마디.

 

"혈색소가 약간 모자라서 전혈은 안 되지만, 혈장 헌혈은 하실 수 있습니다."

 

순간 드디어 헌혈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동안 저비중으로 퇴짜를 맞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젠 이 순간들도 안녕이겠지 하며, 바로 헌혈하러 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록카드에 체크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대답을 하고,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지난 2년 동안 1박한 적이 있는지도 대답해야 했다. 그 때 말라리아 잠재지역에 춘천이 있는 걸 보고 또 기겁했다. 작년에 설악산을 다녀오면서 춘천에서 1박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경우에는 어떡하냐고 간호사분께 여쭤보니, 잠재지역이라서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아! 살았다.

 

좌충우돌 어리바리, 생각과 많이 다른 첫 헌혈

 

문진실을 나와서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명이 기계 옆에 누워 있었다. 고등학생도 있었고,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항상 밖에서 기다리기만 했던 나는 주위 환경이 너무 어색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또 어리바리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왼팔에 하실 거예요, 오른팔에 하실 거예요?"

"네?"

"왼팔에 하실 거예요, 오른팔에 하실 거예요?"

"그게 상관있어요?"

 

순간 또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배정받은 자리로 가서 누웠다.제일 구석에 있는 자리였는데, 상관없다는 말 때문인지 오른팔에서 피를 뽑게 되어 있었다. 단백질 보충 음료를 받아서 조금씩 마시고 있다 보니 내 손에는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 하기 조금 수월하도록 스펀지가 쥐어져 있었다. 이후 "따끔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팔에 바늘이 꽂혀졌다. 그리고 그 바늘로 피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있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초등학교 이후로 피를 뽑아본 적이 없어서 헌혈을 하게 되면 굉장히 어지럽고 잠이 와서 그냥 자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전혀 어지럽지도 않고 정신도 말똥말똥하다!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방송은 왜 이리도 조용한 분위긴지… 결국 30분 넘는 시간 동안 음료수를 마시면서 피에서 노란색 혈장이 걸러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헌혈을 마친 뒤 헌혈증서와 문화상품권을 받은 뒤 헌혈의 집에서 나왔다.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 하기를 오래 하기도 했지만, 세게 하라는 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가락이 저려왔고, 자주 쓰던 오른손에 헌혈을 해버려서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하고 싶었던 헌혈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다른 수고가 필요 없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기분, 또 느끼고 싶다. 다음에 또 헌혈하러 가야지.

 

혈액비중과 혈액비중검사

혈액비중이란, 일정량의 물의 무게를 1이라 할 때 같은 양의 혈액의 무게를 말한다. 이것은 적혈구 수량이나, 신체 각 조직에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양에 영향을 받는다.

 

혈액비중검사는 황산동 용액을 헌혈기준농도로 조정한 다음, 이 용액에 혈액을 떨어뜨려 혈액이 뜨고 가라앉는 상태를 보고 헌혈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전혈의 경우는 기준농도가 1.053이상, 성분헌혈의 경우는 기준농도가 1.052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이 농도가 되지 않으면 저비중으로 헌혈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저비중은 당일의 몸 상태에 따라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저비중 판정을 피하려면 철분이 든 음식(육류, 계란, 녹황색채소, 다시마, 콩, 우유, 멸치 등)을 평소에 자주 먹고, 헌혈 전 4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하도록 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네이버 블로그 '하얀까마귀, 달을 집어삼키다' 참고)


태그:#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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