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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잡는 꿈... 간절곶 앞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운 아들
 고래를 잡는 꿈... 간절곶 앞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운 아들
ⓒ 김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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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무지개처럼 피어나는 동해바다를 향해 구도자처럼, 잔잔한 파도에 춤추는 석양을 바라보는 녀석의 뒷모습에 느린 어둠이 내리고 있다. 어느 작은 마을 포구에 또아리를 튼 저녀석은 분명 고래를 낚는 꿈을 꾸는게 분명하리라.

서산에 지는 태양이 구름 위에 앉아 뿌린 불타는 바다를 보면서 작은 일출을 미리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해의 시작이고 끝인 이 바다는 저편의 대왕암의 기암괴석과도 맞 닿아 있고 독도의 선착장과도 함께 숨을 쉬며 장생포 고래의 뜀박질 소리가 전해져 오기도 할 것이다.

진하앞바다에서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를 하고 있다.
 진하앞바다에서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를 하고 있다.
ⓒ 김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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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뜰채도 없이 바다를 향했다. 올해 피서객이 70만명 이상 다녀갈 것으로 예상되는 울주의 진하해수욕장을 지나 혼잡하지 않은 간절곶 아래쪽 바닷가에 도착했다. 좌우로 방파제가 설치된 마을입구 제방에 낚시도구를 풀어 헤치며 낚시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이곳 저곳에서 낚시꾼들이 가족들과 피서 겸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폼은 제법 그럴싸하게 채비를 하며 연습으로 릴을 감고 풀다 낚시줄이 꼬이고 말았다. 두대의 릴이 다 꼬였으니 한대 푸는데만 30여분이 걸렸다. 아들녀석은 기다리다 못해 주변의 낚시꾼에게 자신의 꼬인 릴을 가져가 도움을 청한다. 결국 바닷물에 잠겨보지도 못한 낚시줄이 한토막 잘려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낚시바늘을 홀치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지렁이를 미끼로 끼우는 게 문제였다. 분명 낚시가게 아저씨는 한마리를 통째로 끼우라고 가르쳐 줬는데 도통 끼울 재간이 없다. 토막을 내야 하는데 니퍼나 가위같은 도구도 없고 난감한 초보 낚시꾼. 물끄러미 지켜보던 아들녀석이 "저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올까요?"라며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뾰족한 수 없는 일상적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마도 맥가이버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끼를 꿰고 있는 딸아이
 미끼를 꿰고 있는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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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으로 낚은 이름모를 고기에도 즐거워하고 있는 아내
 주낙으로 낚은 이름모를 고기에도 즐거워하고 있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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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낚시 해 본거 맞어?" 아내의 핀잔이 들려 온다. 맞벌이 부부인 우린, 휴가일정을 맞추고 부랴 부랴 오전일찍부터 '물리치료'를 받고 아이들 '안과'에서 정기 검진과 안경테 교환 그리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낚시점에서 낚시도구를 구입하는 등 정신없이 준비를 하다보니 출발 전 냉장고에 잠깐 넣어 둔 돼지고기를 깜박 잊고 못 챙겨 온 아내가 다시 가지고 온 후에도 바다를 향해 낚시대를 던져보지도 못 하고 낑낑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봉돌의 뾰족한 부분으로 지렁이를 토막 내 3개의 낚시바늘에 꿰고 나서야 본격적인 낚시를 시작 할 수 있었다.

바다낚시
 바다낚시
ⓒ 김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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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아빠랑 낚시 한번 가는 게 소원!"이라고 방학 때만 되면 노래를 불렀었다. 그때마다 "다음 방학 때는 꼭 가자"라고 달래 왔던 게 벌써 3년이 지났다. 녀석은 낚시채널을 시청하는가 하면, 낚시에 관련된 서적을 섭렵하고 낚시하는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등 기대를 접지 않았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이번 여름휴가 계획을 '가족끼리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거와 낚시 함께 하는 거'로 못을 박아 우리가족의 역사적인 첫 낚시행이 이뤄진 것이다.

장비를 두대 준비했으니 아내와 딸아이는 '주낙'으로 대어의 꿈을 낚는다. 여기저기서 지렁이를 끼워 달라니 고기가 슬그머니 미끼만 따 먹으며 초보 낚시꾼들을 한껏 희롱하는가 보다. 아빠의 미끼 꿰는 모습이 성에 안 찼는지 목장갑을 낀 딸래미가 미끼꾼을 자처해 나선다. 그러고 보니 낚시 약속을 매번 어기는 나를 보고 아내는 "당신, 지렁이 끼우는 게 무서워서 그렇지!"라고 놀렸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어촌 강양리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추억속에 낚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난….

해변에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해변에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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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해 본 기억이 벌써 30년이 다 돼 간다. 전라도 장흥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몇명의 친구들과 은어가 출몰하는 방림쏘 위 부산면과 장흥읍의 경계선인 탐진강 상류에서 피라미 낚시를 했었다. 특별한 미끼가 필요없는 피리낚시바늘을 흐르는 물에 맡기면 손바닥만한 피라미가 제법 걸려 올라왔다. 낚싯대는 대나무를 낫으로 쳐서 곱게 다듬으면 제일이었다. 집중할라치면 현기증이 돌고 자신이 배가 되어 물길을 꺼꾸로 한없이 떠 내려가던 추억이 뭉클하게 치밀어 오른다.

릴대가 꼬이고 바위에 걸려 낚시줄을 끊고 끊기는 악순환 속에서도 돌이켜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이 빼곡히 채워졌고 주낙으로 잡아 올린 이름모를 고기 한마리에도 온갖 시름 다 떨칠 환호성들이 이어졌다. 8월 초, 폭염특보가 내린 울산의 바닷가에서 보낸 1박2일의 특별한 휴가는 빈 망태에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 채운 아주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태그:#바다낚시,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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