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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소리가 들린다. 목탁소리도 울려 퍼진다. 불자들은 절간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는 4일 저녁, 서울 종로에 위치한 조계사 앞 모습이다.

 

이 곳에서는 '촛불 수배자'라고 쓰인 붉은 천을 두른 사람 7명도 보인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를 주최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지난 7월 5일 이후 조계사로 피신해 농성을 이어오던 수배자들이다. 이 날로 농성 31일째를 맞이했다.

 

한달째 조계사 생활... "1080배 올리며 촛불과 함께 하겠다"

 

날이 저물자 수배자들은 이 날도 어김없이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한 배 두 배 절을 올리고 있다. 조계사에 둥지를 튼 이후 매일, 저녁이면 절간 앞에서 108배를 올리며 마음으로 나마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이날은 절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108배가 넘었지만 수배자들은 불상을 앞에 둔 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자세만 계속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왜 멈추지 않느냐"고 묻자 5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이날은 특별히 1080배를 한단다. 1080배는 믿음이 투철한 불교 신자도 도전하기 힘든 고된 수행이라고 한다. 불교 신자도 아닌 수배자들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1080배를 이날 저녁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은 절을 시작하기 전 "부시방한 반대, 이명박 심판을 위한 집중 촛불 문화제(5일 저녁)를 앞두고 밖에서 열심히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과 함께 수배자들도 옆에서 정진 해나가겠다는 의미로 이렇게 1080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1080배에 나선 사람들은 박 실장을 비롯해 김광일 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 백은종 안티2MB카페 부대표, 한용진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김동규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정보선 새사회예술연합 예술단장 등 총 7명의 '촛불 수배자'들이다.

 

"촛불이 승리하기를 부처님께 바랄 뿐" 

 

절을 시작한 지 1시간이 넘고 2시간 가까이 되자 수배자들의 웃옷은 땀에 흥건하게 젖었다.

 

김동규 조직팀장은 이마에 구슬땀이 흠뻑 맺혔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은 채로 절을 이어갔다. 백은종 안티2MB카페 부대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300배가 넘고 400배가 넘자 수배자간 절하는 박자도 맞지 않는다. 

 

김광일 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은 "우리가 흘리는 땀방울은 밖에서 탄압 속에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과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읊조렸다.

 

절을 이어가던 김동규 조직팀장도 "사실 우리가 농성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서 "우리도 이렇게 절을 통해 촛불과 함께하고 있으니 내일 촛불을 들 시민들께서 이 모습을 보고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성균 대표도 "그저 촛불이 승리하기만을 부처님께 바랄 뿐"이라며 불상을 보고 엎드렸다.

 

밤 9시경이 되자, 조계사 대웅전 앞은 목탁소리도 염불소리도 사라졌다. 순식간에 날은 어두워졌고, 수배자들은 촛불을 자신 머리맡에 갔다놓았다. 그리고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계속해서 절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앞에는 '부시 반대, 이명박 심판, 촛불 승리를 위한 1080배'라고 적힌 현수막만 놓여져 있다.  

 


태그:#조계사, #촛불 수배자, #촛불 집회, #부시 방한, #108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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