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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콤달콤 오감만족 오이냉채
새콤달콤 오감만족 오이냉채 ⓒ 안소민

 

덥다. 당연하다. 여름이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덥다 더워', '더워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건대 말이다. 날씨가 정말 옛날에 비해 더 더워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만큼 참을성과 인내심을 상실해버린 것일까. 아마 양쪽 모두 비슷하게 조금씩은 덜고 또 담아내고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아휴~ 덥다, 더워'라는 구시렁거림은 끼니 때가 되어 가스렌지 불 앞에 섰을 때 극에 달한다. 구시렁거림은 소프라노 수준으로 극에 달하고 손짓, 몸짓까지 곁들어가며 비명을 지르기에 이른다. 예전에는 상을 펴고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척척(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담아내고 나면 한편으로는 뿌듯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을 차리고나면 내가 먼저 K.O 된다.

 

'그녀'가 떠오른다. 유달리 심한 입덧 때문에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초죽음이 되어야했던 그녀는 상을 차린뒤 음식냄새가 한김 새어나간 뒤, 즉 식구들이 모두 밥숟갈을 놓고 일어섰을 때 쯤에야 비로소 그나마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한 김 빠져나간 식은 음식을 목구멍으로 억지로 밀어넣었다는 이야기. 주방은 주부의 고유공간이자 솜씨와 맵씨가 어우러진 향기로운 곳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지독한 형벌장이 되기도 한다. 

 

요즘 뜨거운 음식을 만드느라 짠지가 되어버리곤하는 나는 차마 그 뜨거운 음식을 훌훌 먹기까지는 좀 피곤해졌다. 이열치열이라지만 주방에서 벌개진 얼굴로 음식을 조리고 볶는 주부에게 뜨거운 음식을 권하는 것은 좀 아니올시오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식구들이 식사하는 동안, 음식이 아닌 내 몸에서 끓어오르는 열을 한소끔 식히기위해 선풍기를 쐬고있노라면 '그녀'가 떠오른다. 꼭 내가 그 심정이니까.

 

하여, 요즘과 같은 날 가장 반가운 반찬은 단연 오이냉채다. 마침 시아버님이 무척이나 사랑해주는(?) 메뉴이기도 하다. 열이 필요없는 정말 고마운 음식이다. 대표적인 여름음식 중 가열과정을 거치지 않은 음식이 몇 개나 되던가. 냉면? 면을 삶아야한다. 콩국수? 역시 삶아야한다. 또 뭐가 있더라? 삼계탕? 오마이 갓~

 

여름에 더욱 돋보이는 오이의 미덕

 

오이를 만질 때마다 정말 오이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값도 저렴하고 영양소 풍부하고, 어지간한 여름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색깔도 참 예쁘다. 몸매도 늘씬하고, 음. 이만하면 훌륭하다. '나는 남에게 오이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자신이 없다. 따지고보면 세상엔 오이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을까. 아니 '않을까'가 아니라 '수두룩하다'다.

 

오이가 정말 고맙다. 물에 채썬 오이와 불린 미역을 넣고 식초와 간장, 마늘로 간을 한뒤 얼음과 깨를 둥둥 띄우면 고맙게도 끝이다. 아주 간단하다. 가격대비 최고만족이다. 여름철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아이템, 나의 히로인이다.

 

천원이면 4개 살 수있는 오이.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다고 오이를 은근히 무시하지 않는지. '난 아니야'라고 하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기도 했다. 오이요리를 메인으로 한 요리 중에 폼나고 값비싼 요리는 없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정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꼭 내 모습과 닮아서. 우리 이웃들의 모습과 비슷해서.

 

오이도 성깔이 있다. 겉으로는 오이의 까칠하고 우툴두툴한 면이 바로 그것이다. 쉬워보인다고 대충 깎다가 오이의 뾰루지(?)에 손을 다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래 씹고있으면 조금 딸따름하고 끈적이는 성격도 그렇다. 마냥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무척이나 소박하고 소탈해보이는 오이에게도 '한 성깔'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이가 더욱 맘에 든다.

 

요즘같아선, 오이 잘 안먹을 것 같은 저 윗사람들에게 좀 이야기해주고 싶다.

 

'오이도 한 성깔하거든요? 무시하다 큰 코 다쳐요.'


#오이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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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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