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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모자를 쓰고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들
 산타 모자를 쓰고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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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의 단데농산 속에 있는, 호주 최초의 뷔페식당으로 알려진 'Cuckoo(쿠쿠)'에 들어서니 실내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때는 7월 24일.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던 나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아직 점심시간으로는 좀 이른 듯했는데, 일행으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 역시 크리스마스인 듯, 머리에는 산타 모자들을 썼고 몇몇 할머니들은 루돌프 머리띠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응용한 귀걸이로 한껏 멋을 냈다.

내가 앉은 식탁을 맡아 서빙해주는 분의 연세가 지긋해 보여 마음 놓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남반구에 위치해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호주는 크리스마스를 늘 더운 여름에 보내게 된다. 그게 아쉬워 'X-mas in July(7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한 겨울인 7월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한 겨울이라고 해도 내가 머문 멜버른의 기온은 섭씨 10℃에서 15℃. 코가 맵싸한 우리나라의 초겨울 날씨 정도인데, 아이들은 털모자에 장갑도 끼고 멋쟁이들은 목이 긴 부츠를 신고 다녔다. 나는 폭염 속에서 겨울로 순간 이동을 한 셈이어서 처음에는 '이 정도 추위 쯤이야' 했지만 얼마간 머물다 보니 쌀쌀하게 느껴져 결국 가져간 옷을 다 껴입고 지내야했다.

노년에도 '할일'이 있어야 한다

300여 명 정도의 어르신들로 가득찬 식당 안은 서서히 흥겨운 파티 분위기로 변해갔다. 사회자의 말을 들어보니 'Sunrise Day Club' 등등에서 어르신들이 단체로 왔다고 했다. 식사도 하고 밴드의 선창에 따라 포크로 그릇과 컵을 두드리며 노래도 하고, 건배도 외치고 하는 어르신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자세히 둘러보니 걸음이 불편한 할아버지, 물을 마시다가 사레들려 얼굴이 빨개진 할머니, 허리가 불편한지 연신 자세를 바꾸어 앉는 또다른 할머니…. 우리나라에서 늘 만나는 어르신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연금을 받아 경제적으로 여유만만 노년을 보내는 점이야 다르겠지만 말이다.

서빙을 하며,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친절히 답해준 '마리아(Maria) 할머니'는 칠십이 넘었다는데 무척 젊어보였다. 얼마 전 자신이 일하는 이 식당으로 47명의 친구들을 초대해 70회 생일 파티를 했다고 자랑했다.
  
70세가 넘어 일을 하는 마리아 할머니를 보며, 노년의 생활 만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데 모두가 공감하고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을 내놓으며 노력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얼마전 70회 생일이 지났다는 마리아 할머니는 상냥하고 다정했다.
▲ 식당에서 서빙을 해주신 마리아 할머니와 함께 얼마전 70회 생일이 지났다는 마리아 할머니는 상냥하고 다정했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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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일자리 사업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한 때 찜닭집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적도 있고, 요즘은 어르신들 몇 분이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교육을 받아 커피전문점을 내 운영하는 곳도 많아졌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길 조금은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경로사상으로 인해 어르신들께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그리 편하지 않다는 이야기들도 들려온다. 어르신 일자리 사업에 있어서 이런 벽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것 또한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일 것이다.

아무튼 서양 어르신들 300여 분 사이를 누비며(?) 뷔페 음식을 먹고 그분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잠깐이지만 함께 즐긴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거기다가 친절한 할머니의 안내까지 받았으니….

7월의 마지막 날, 수첩을 뒤적이며 한 달 동안의 일정을 죽 돌아보니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기억에 남는다. 비록 몸은 다시 더운 곳으로 돌아왔지만,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산 속 예쁜 집에서 어르신들과 보낸 잠깐의 시간은 날씨만큼이나 시원하고 아기자기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태그:#노인 , #노년, #호주 노인 , #7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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