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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기사 보강 : 30일 저녁 8시 45분]
 

 

또 '긴급'이었다. 30일 오전 메일함을 살펴보자, '<긴급> 단식 50일 되는 기륭분회, 이번 주 침탈 위험이 높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경찰이 29일 오전 단식 49일째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앞에 나타나 체포영장을 고지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펜과 취재수첩을 들고 뛰어가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단식 49일'이 주는 무게감은 '긴급' 그 이상이었다.

 

최근 '긴급'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6일과 28일, 6개월째 천막농성 중인 알리안츠생명 노조에게서 "용역들에게 천막을 뺏기고 폭행을 당했다"는 다급한 연락이 왔다. 28일엔 경찰과의 충돌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여럿이 다쳤다는 긴급 문자메시지가 왔다.

 

최근 촛불이 잦아들자, 정부가 경찰과 검찰을 앞세워 본격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 표적이 된 일부 언론이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민주노총·누리꾼들의 고민은 깊다.

 

그래도 이들은 구석에 몰린 노동자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상황일지 모른다. 촛불집회 때 절망을 느꼈다는 비정규직이나 파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탄압을 세상에 알릴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알리안츠생명 노조,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 폭행당해

 

 

지난 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 본사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날 오전 6시께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150여명이 노조의 천막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던 15명의 노조원들은 신발도 못 신은 채 끌려 나와야 했다.

 

최현우 알리안츠생명 노조 부위원장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통장·현금 1700만원·카메라·캠코더·노트북 등도 가져갔다, 금액으로만 1억3천만원"이라고 전했다. 또한 "(상급단체인) 사무금융연맹의 전대석 수석부위원장이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알리안츠생명 노조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8일 노조가 천막이 있던 자리에 컨테이너 박스와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용역업체 직원 150여명이 달려들었다. 조합원 권아무개씨가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현장에 있던 조합원 250여명 중 38명이 다쳤다. 노조는 경찰이 이들의 폭력을 제대로 막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29일 '알리안츠생명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알리안츠생명은 용역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등 불법과 탈법을 일상화하고 있다"며 알리안츠생명을 특수강도, 집단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노조에 본사 사유지 내 자진퇴거와 불법 가설물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해 회사와 본사 입주업체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어 불법 가설물 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또 "도난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 물류창고에 옮겨놓은 것이고, 28일 노조의 불법 점거 시도에서 경비용역 업체도 많이 다쳤다"고 반박했다.

 

알리안츠 노조는 회사의 일방적인 성과급제 도입에 맞서 6개월 동안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23일 시작된 알리안츠 노조의 파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대규모 파업이라는 점에서 노정관계의 바로미터로 주목됐다.

 

현재 노동부의 방관 속에서 파업에 참여한 지점장 92명이 해고되고, 제종규 노조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다. 노사 간의 교섭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현우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 탓이 가장 크다. 노동부가 중립적이기만 했어도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은 우리가 폭행을 당하는 데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코스콤 비정규직, '직접 고용관계 인정' 판결 받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난도 만만치 않다. 지난 18일 법원으로부터 코스콤과의 직접 고용 관계를 인정받은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한 교섭은커녕,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엔 교섭 촉구를 위한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과 충돌해 10명이 다쳤다.

 

정인열 전국증권노동조합 코스콤 비정규지부 부지부장은 "노조원 10명이 경찰 50명에게 폭행당했다. 2명이 코뼈 골절이고 1명은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며 "경찰은 촛불집회 때만큼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현재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등 노조원 3명이 기륭전자 정문 옥상 위에서 50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29일 경찰이 이들에게 체포영장을 고지했다. 출두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기륭전자 주변에 전경 1개 중대 120여명이 배치됐다. 경찰이 방범지원이라는 핑계로 기륭전자 안팎을 둘러보고 있다. 사복경찰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고 있다.

 

노조원 윤종희(39)씨는 "경찰의 체포작전이 임박한 것 같다"면서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청소 대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방해도 아니고, 우리는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경비실 옥상에 올라와 있는 것 뿐"이라며 "자기 몸조차 움직일 수 없고, 이미 의학적으로 살아있는 게 아닌 단식 50일 차 사람들을 체포하겠다는 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엄조차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력행사자 추적 의지, 왜 노동현장엔 적용되지 않나

 

지난 26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전경 2명의 상의를 벗겨 돌려보낸 사건을 두고 보수언론들은 "경찰이 폭행을 당했다"며 대서특필했다. 경찰은 "채증·주변 폐쇄회로 TV·언론사 취재 자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해자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물론 경찰의 말처럼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여기에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겹쳐보면 씁쓸해진다. 폭력 행사자에 대한 경찰의 단호한 추적 의지가 왜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폭력'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28일 알리안츠생명 노조원들도 상의가 벗겨진 채 폭행을 당했다.

 

촛불에 가려졌고 공안정국에 꺾인 노동자들의 외침은 언제쯤, 세상에 전달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이들이 이명박 정부에 '청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반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태그:#경찰폭력, #비정규직, #알리안츠, #기륭전자, #코스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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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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