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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외교·안보 라인의 문책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전략이 좀 장기적이지 못하고 소홀하다,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일희일비해서 조금 잘못하면 너무 자책하고 우리끼리 이렇게 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웃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미 지명위원회는 독도의 영유권을 '한국' 또는 '공해'로 바꿨다. 독도의 이름은 '리앙쿠르 암'으로 그대로였지만 청와대의 분위기는 더욱 바뀌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문책론'에 대해 "상황의 진전도 있었고, 문책이 능사는 아니지 않나"며 "실무적인 차원에서 주의를 소홀히 한 것은 앞으로 재발 방지 차원에서 규명하고 주의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라인 문책 물건너가나..'일희일비' 하는 건 대통령 자신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에서 일시 귀국한 권철현 주일대사가 독도 사태와 관련해 기자 간담회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에서 일시 귀국한 권철현 주일대사가 독도 사태와 관련해 기자 간담회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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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는 단지 이번 독도의 영유권 변경 사실을 몰랐다는 한 건에 불과한 게 아니다.

쇠고기 협상, 한중 정상회담 때의 푸대접 논란, 금강산 피살 사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 성명 파동 등 문제는 숱하게 많다.

독도 문제만 해도 핵심은 일본의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이 언급된 것이다.

이 문제는 전혀 해결 기미가 없는데 미 지명 위원회가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반쪽 원상회복'을 했다고 의기양양해지는 청와대의 모습은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가 단지 참모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문책보다는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지만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재발' 정도가 아니라 '수십발 오발탄'을 날린 상태다. '일희일비' 말라는 게 이 대통령의 말인데 정작 '일희일비' 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한일 관계를 얼어붙게 한 독도 사태는 "내가 좋게 말하면 상대방도 호응할 것"이라는 지극히 단기적이고 엉성한 청와대의 전략적 판단에서 발생한 것이다.

"굴욕외교" "뇌가 없다" 비판받던 노무현... 이명박은?

이명박 대통령의 첫 외국 손님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취임식 직후 청와대에 도착한 지 40여분 만에 후쿠다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전 정권과 독도·과거사·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던 양국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2개월 뒤, 도쿄에서 다시 만난 두 정상은 한·일 간의 역사를 직시해 한·일 신시대를 개척해 나가자는 결의를 했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데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미래 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자'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도쿄 동포간담회에서 "일본에 대해서 맨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며 "다른 요구는 없지만 경제협력을 실질적으로 더 강화하려고 한다"고 대일 기조를 피력했다.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서운했던 한·일관계를 복원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3개월 만에 일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21세기 전략동맹' 관계로 격상된 미국조차도 모호한 '중립 입장' 뒤에 숨어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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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우호협력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이라는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선의를 베풀면 일본도 과거사나 독도 문제에 대해서 변화된 태도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명백히 오판이다.

일본의 정치사회 지형을 고려한다면 90년대 이후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이 독도 문제나 과거사 문제로 언제 도발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처럼 존재하는 한일간 현안이 존재하는 한 일본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거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이는 이미 직전의 노무현 정권 뿐만 아니라 김대중·김영삼 정권에서도 충분히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임기 중 공식의제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야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굴욕외교'라는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당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에게 "뇌의 일부가 없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으로 독도문제가 불거진 이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을 겪으면서 초강경 대응에 나섰고, 한일 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ABR' 때문에 오락가락... "컨트롤 타워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락가락 외교로 궁지에 몰린 것은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이 부재한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현 정부의 외교안조 정책에 대한 전략과 비전이 무엇인가, 정권 출범 후 몇달이 지나도 이게 보이지 않는다"며 "기껏 나온 게 '비핵·개방3000'이나 '한미 전략동맹'인데 이것은 일관된 전략이나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정책은 대통령의 고유 의제이기 때문에 총리 등 누가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외교안보에 대한 철학이나 지향성을 달성하기 위한 이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자신의 의제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 부재 현상은 대북 정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시대를 무조건 부정하려는 'ABR(Anything but Roh)' 정책을 취하는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은 대북 정책의 철학이나 일관된 기조가 없다"며 "이전 정부랑 다른 식으로 하겠다는 'ABR' 때문에 대북 강경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북미 관계가 호전되면서 외교적으로 왕따가 되는 상황이 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이 보수 지지층을 만족시켜줄 만한 실제적인 성과나 결과로 이어진 것도 아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터졌지만 북측은 남측의 진상조사 요구를 외면하고 있고, 앞서 북측은 인도주의 차원에서의 남측 지원조차 거부했다.

김근식 교수는 "처음에는 강경으로 갔다가 효과도 없고 국제적인 고립 위기를 느껴서 다시 북측에게 유연하게 가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ABR만 있을 뿐, 자기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2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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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주위에 대외 정책을 일관성 있게 보좌할 수 있는 인물이나 신임받는 자문그룹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근식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낙 오랫동안 자기 전문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일관된 기조가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관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종석 등 주위 스태프 중에서 대통령을 일관성있게 보좌할 수 있는 사령탑이 있었다는 점이 (현 정권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연철 소장도 "대통령이 준비가 안 됐다면 대통령을 대신할 키신저나 임동원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며 "전체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 지휘할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를 반영한 이른바 'MB독트린'을 완성한 측근 브레인 중 현재까지 이 대통령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주홍(경기대)·현인택(고려대)·김우상(연세대)·남성욱(고려대)·김태효(성균관대) 교수 등이 'MB독트린'의 산파 역할을 했지만, 이들 중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된 김태효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업 외교관들에게 밀려난 상태다.

김근식 교수는 "이 대통령이 명확한 자기 정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 다음엔 대통령의 입장과 기조를 보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령탑을 세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외교안보 정책, #독도 영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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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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