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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멕시코해바라기가 무성한 학교 풍경 학생들이 방학한 학교를 노오란 멕시코 해바라기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노오란 멕시코해바라기가 무성한 학교 풍경학생들이 방학한 학교를 노오란 멕시코 해바라기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 이선애

강마을 학교에는 긴 침묵이 붉은 칸나와 노오란 멕시코해바라기로 가득한 화단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따금 쌍살벌 몇 마리와 검은 빛깔의 날개에 무늬가 있는 긴꼬리제비나비가 날아다니고, 매미는 트럼펫 소리처럼 쏴쏴 울려댑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니, 학교가 텅 비어 버립니다. 꽃도 벌레도 나무도 그대로인데, 왜 그런지 무겁게 가라앉아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빈 학교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한비야의 세계여행기도 읽고, 공간에 대한 글과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가슴뛰는 메시지를 던지는 어느 유명 강사가 쓴 글도 읽었습니다. 몇 장의 엽서에 연꽃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들고 현관에서 멀리 융단처럼 펼쳐진 초록의 논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던 지난 학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좋은 하루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더 뜨거운 지열, 이따금 나뭇잎을 팔랑거리는 은사시나무의 훌쩍한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길고 긴 침묵이 감싼 학교에서 하루종일 수업도 없이 다른 업무도 없이 근무를 하면서 행복해 합니다.

 

하얀 모시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앉아서 책을 읽은 참 좋은 여름날입니다. 치열했던 지난 학기 동안 이런 여유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매일매일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잘 견뎌낸 나에게 상을 주고 싶습니다. 상으로 한가로운 책읽는 시간과 향기로운 차 마시는 시간과 푸른 나무들의 향기를 받고 싶습니다.

 

이 여유는 며칠 가지 않은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도서관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도서관을 리모델링 작업을 시작해야 하고, 2주간의 연수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개학을 하면 학교평가와 행정사무감사 준비를 해야겠지요. 매일 매일 또 가슴 한 구석에 얹혀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어느 왕이 신하에게 명령합니다. 기쁨도 슬픔으로 만들고 아무리 슬프고 안타까운 일도 기쁨으로 바꾸는 것을 가져오라고합니다. 그러자, 현자는 왕에게 반지를 하나 가져다 드립니다. 이 반지에는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왕은 이것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힘들 때면, 제 마음이 할퀴어져 있을 때면 이 구절을 생각합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사랑도 미움도 일도 돈도 명예도 다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여름도 이렇게 지나갈 것입니다. 아무리 뜨거운 여름볕도.... 다만 그 때 제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여름의 한 가운데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애 기자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에 위치한 지정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교닷컴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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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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