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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부터 베란다 창밖으로 비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흔들거리는 나뭇잎의 ‘헤드벵잉’이 요란하다. 덜컹거리는 거친 바람의 행패스러움과 시니컬함이 나의 소심한 반 쪽 가슴을 약간 불안하게 한다.

 

모처럼 비가 줄기를 세워 땅바닥으로 예리하게 꽂히고 있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절치부심이었을까, 꼿꼿하게 자존심을 드러내 보이려는양 하늘에서 땅으로 거침없이 낙하하고 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전용도로 위를 질주했다. 시야를 뿌옇게 방해하는 바깥의 안개, 구름. 비. 그리고 음습한 느낌의 축축한 공기. 나는 이런 날, 오히려 약간의 불안이 섞인 호기심과 흥미로움에 대해 한껏 기대를 하곤 했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적이지 않은, 늘 보통 때 같지 않은, 뭔가 이질적인 새로움이 나로서는 야릇하게 즐거웠다. 

 

‘나나무스꾸리’의 Why worry?가 자동차 속에 은밀하고 매혹적인 음색으로 퍼지며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들 몇 사람의 일행은 얼마동안 그러한 무드에 젖은 채 공항전용도로에서 용유도∙무의도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샛길로 접어들었고 ‘잠진도’로 향했다. 잠진도 선착장까지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실미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섬은 희미했지만 손에 잡힐 듯 지척이었다.

 

 

마침내 잠진도 산착장에서 카페리호에 자동차와 더불어 몸을 실었다. 나는 배의 출항과 함께 차에서 내려 배의 2층으로 올라갔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냄새와 몸짓을 학습한 갈매기들의 능란한 비행이 배를 따랐다. 나는 ‘끼륵’거리는 그들의 소리와 날카로운 비행을 조용히 감상했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채 5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무의도에 도착했다며 내리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이 상실했다. 배 삯이 허무했다.  

 

무의도에 차를 내리고서 다분히 감정으로 느껴오는 물씬한 짠 내를 상상했다. 바다, 섬, 짭짤한 소금기 냄새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창 밖을 바라보니 굵직한 빗방울은 제법 성깔 있는 양과 질로 차창의 유리와 차체의 지붕을 때리고 할퀴어댔다. 

 

 

자동차는 섬의 외곽을 따라 허겁지겁 달리고, 중간 중간 언덕을 넘기도 하며 그야말로 무의도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나는 차를 몰고 가면서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의 흥분을 생각했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어두컴컴한 그의 난폭함을 걱정하기도 했다. 옆에 앉으신 선생님도 한 마디를 뱉어 내시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셨다.

 

“이건 그칠 비가 아냐, 그칠 비가 아닌데….”  

 

우리 일행은 ‘하나개 해수욕장’과 광명항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주춤거리며 순간의 갈등을 했다. 그리고 선택한 방향은 ‘광명항’이 있는 왼쪽 길이었다. 자동차는 비를 뿌리치며 숨 가쁘게 언덕을 넘어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홀연히 서 있는 철탑등대로 향했다. 그러니까 광명항의 방파제가 있는 곳이었다. 

 

 

길지 않은 방파제와 하얀색의 아담한 등대. 하얀색은 창백했다. 하얀색은 연약했다. 하얀색은 음울하기도 했다. 적어도 나의 느낌으로는 하얀색이 고독해 보였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선생님의 짧은 지령을 숙지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주변으로, 주변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등대로 향하기도 했고, 방파제 아래 해변으로 향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헝클어진 폐 그물이 쌓인 곳으로, 녹슬어 버려진 것 같은 낡은 어선이 있는 곳으로도 파편처럼 소리 없이 흩어져 갔다.

 

 

얼마 후 의외로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뿌옇게 주변을 덮은 희미한 안개와 구름은 여전히 작은 등대가 있는 방파제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어쩌다보니 차 안에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차창 밖을 보니 나의 시선과 느낌의 강렬한 욕구를 빨아들이는 한 쌍의 연인이 그곳에 있었다. 순간 나는 그 연인들에게 일시적으로 마취되는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무감각을 체험했다. 

 

나는 방파제 위에서 우산으로 비를 피하며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그림 그리며, 한 편의 영화처럼 사랑을 교감하고 있는 느릿한 모노필름의 ‘애모’를 볼 수 있었다. 방파제 위에서의 사랑, 그들의 시선은 흐릿한 낭만의 바다를 향하고 있었고, 그들의 팔과 손은 상대의 허리를 다정하게 감싸며 짜릿한 모습으로 감겨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주위를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비에 젖은 옷과 몸이 보기만 해도 눅눅하고 축축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카메라의 렌즈를 연신 들이대며 바다를 담고 조망했다. 멀리 보이는 조그만 섬 ‘소무의도’를 줌으로 빨아들였고, 매혹적인 광명항의 유혹에 누구랄 것 없이 은근히 빠져 들었다. 마치 갯벌에 발이 묻혀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섬의 유혹이었다.

 

 

얼마 후 우리들 일행은 광명항의 (회)식당에 이른바 ‘이바구 캠프’를 마련했다. 젖은 옷과 몸을 말리며 드럼통 가운데 피어오르는 가스 불을 쬐었다. 크고 작은 조개의 살상과 그것으로 인한 식사(食事)의 유희를 만끽하는 우리들 일행의 얼굴들은 한결 같이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드럼통 가스 불 위에서 턱이 깨지도록 크게 입을 벌려 절규하는 조개들의 신음과 몸짓은 미묘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도 한 잔의 이슬을 채워 서로의 긴장과 피로를 위로하며 너털한 웃음을 나누었던 그 자리가 오래도록 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광명항의 추억을 투명한 한 잔 술에 담아 목구멍으로 털어버리고서 이윽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호령곡산’과 ‘국사봉’으로 갈라지는 구름다리 언덕으로 갔다. 왼쪽으로 오르면 호령곡산, 오른쪽으로 오르면 국사봉, 앞(서쪽)으로 가면 하나개 해수욕장이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순간의 우연한 선택으로 국사봉을 향해 걸어 올랐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왠일인지 주춤거리며 흥분과 소란을 멈추었다.

 

 

국사봉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하얗게, 더욱 진한 하얀색으로 국사봉 아래를 덮고 있는 안개와 구름이 우리들의 내려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순결한 백색의 바다를 눈으로 빨아들여 가슴 속에 천천히 담았다. 그리고 바위에 앉아서 운무가 걷히기를 그 저 겸손히 기다렸다. 마침내 가끔씩 희미하게 얼굴을 보일락 말락 하던 ‘하나개 해수욕장’의 흐릿한 모래사장이 자신의 면모를 슬쩍 드러내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소리 없는 감탄으로 그를 숨죽여 바라볼 수 있었다.

 

 

오염된 일상의 호흡을 날숨으로 구름 속에 기꺼이 뱉어버리고서 우리들은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무의도 산착장으로 향했다. 가는 곳곳에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섬이 가진 고유하고 독특한 색깔과 무드, 유혹의 이미지가 있었다. 우리는 지나치다 멈추고, 또 지나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멈춤과 동시에 차에서 내려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하루 종일 무감각했던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하는 갈매기 나르는 저녁 하늘의 빛은 찬란했다. 구름 속에 빛을 뿌린 강렬한 혼합과 대비의 색감은 황홀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나는 자동차를 배에 싣고 핸들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내 눈앞에 갑자기 요염하고 섹시한 자태로 느닷없이 나타난 이 시대의 섹시 아이콘 ‘효리’가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으악!’하고 끔찍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사랑스럽게 나를(?) 주시하는 그녀의 눈빛과 미소는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에 만난 유쾌한 행운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공항전용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더듬어 보았다. 줄기찬 비와 바람, 태풍의 영향을 조심하라는 일기예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낫 설은 섬.

 

우리는, 나는, 솔직히 무모하게도 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섬으로 들어가서 섬을 만났다. 그 섬 속엔 도시 속에 없는 것이 있었다. 날카롭고 경직된 도시의 선과 형태가 보이질 않았다. 피곤한 경쟁과 지나친 효율을 상징하는 자극적 색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순하고 착해 보였다. 평화로운 침묵과 소박한 처녀 같은 ‘쌩얼’의 미소가 있었다. 돌아오는 주말 나는 또 그 섬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윤광준 선생 사진강좌 (4기생)에서 지난 19일 무의도 출사여행 다녀온 후 쓴 글입니다.


태그:#무의도, #광명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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