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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리아리 동동

 

 오르지 않는 물건값이 없습니다. 라면 한 봉지 값은 어느새 800원이 되고, 얼음과자 하나도 700원입니다. 시내버스를 타면 천 원이고, 전철을 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자면 적어도 1500원은 찍힙니다. 웬만한 낱권책 하나가 만오천 원이 넘은 지는 벌써 오래된 일. 그나마 곡식과 푸성귀 값은 거의 제자리인데, 곡식값이 제자리인 만큼,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벌이는 훨씬 형편없어진다는 소리입니다.

 

 물건값 오르는 빠르기에 발맞추어 집값이 오릅니다. 집값이 오르니 세들어 사는 사람들 달삯도 오릅니다. 어느 하나 오르지 않는 값이 없기 때문에,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단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자기가 파는 값도 올림직하나, 그러다가는 서로서로 고달플 뿐더러, 물건을 한꺼번에 어마어마하게 쌓아 놓고 깎아팔기를 하는 공룡기업 가게에 손님을 빼앗길까 걱정되어 끙끙 앓습니다.

 

 집은 끊임없이 지어지는데, 집없는 사람이 깃들어 살아갈 집으로 짓지 않고, 집있는 사람이 덤으로 여러 채 더 사들여서 달삯 받아 방구석에서 돈굴리기 할 수 있는 부동산으로 지어집니다. 사람 살 집이 아닌 돈굴리기 부동산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집(아파트)은 오랫동안 간수하지 않습니다.

 

열 해쯤 지나면 슬슬 재개발 입김을 부추기고, 스무 해쯤 지나면 으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는 듯 여깁니다. 또, 이렇게 허물고 다시 지어야 집값을 껑충 올릴 수 있어서 좋다고 법석입니다. 정작 자기가 깃들이며 살 집이거나 동네라 한다면, 함부로 재개발을 밀어붙이지 않을 텐데.

 

 따지고 보면, 집 한 채 자기 이름으로 올려놓고 살아가는 사람 숫자보다는, 다른 이가 돈굴리기하려고 장만한 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 숫자가 훨씬 많을 터이나, 힘겹거나 어려운 사람들 자리에서 정책이 꾸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김수정 님이 1985년에 그렸던 만화 《아리아리 동동》(서울문화사,1990)을 펼칩니다.

 

 “추운데 왜 나와 있니?” “누나 기다렸어.” “점심밥은 잘 챙겨 먹었니?” “응.” “잘했다.” “오늘은 호떡 안 사 왔어?” “매번 사 올 수 있니? 돈 아껴 써야지.” “에이.” “누나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서 밥해 줄게.” …… “커튼 닫을까?” “아니.” “바람이 찬데.” “엄마도 저 별을 보고 계실까?” “그럼.” “엄마 많이 나았어?” “그래, 희원이 보고 싶다시더라.” “나도 엄마 보고 싶어.” “백 밤만 자면 오실 거야.” “왜 병원에선 우리 같은 꼬마는 못 오게 해?” “병원 규칙 때문이지.” …… (2권 13∼27쪽).

 

 만화에 나오는 ‘동동’은 나어린 저승사자입니다. 저승에서 뒷간 똥을 똥바가지로 똥장군에 퍼담아 치우는 일을 하는 형이 심부름을 시켜서 ‘죽을 때가 다가온 사람을 데려오라는’ 일을 맡습니다. 그런데 동동은 어느 한 번도 시킨 대로 사람들을 데려오지 못합니다.

 

일찌감치 이승에 내려가서 ‘데려갈 사람’을 지켜보며 기다리지만, 막상 데려갈 사람은 안 데려가거나 다른 저승사자가 데려가는 사람을 빼돌리기도 합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이 땅을 떠나기 마련이라, 동동과 함께 저승에 가야 할 텐데, 동동 눈에 비친 서민들을 쉬 저승으로 불러들이기에는 가슴이 짠했는지 몰라요. 아직 이승에서 더 땀흘려 빛을 보고 열매 맺을 일이 많다고 느꼈는지 모르고요.

 

 

 

ㄴ. 1남 4녀 막순이

 

 7월 첫머리, 인천 답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올리고 ‘길거리 걷기’를 했습니다. 6월 30일에 서울 시청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이름으로 시국미사를 올린 뒤 이틀 만이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은 온통 서울에서 하는 일에 끄달리기만 하고, 인천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마음이나 힘을 못 쏟기 마련이었습니다.

 

‘나라에 일어나는 큰일’에는 힘을 보태곤 하면서도, 정작 ‘인천에서 일어나는 큰일’에는 바쁘고 힘들다며 모르는 척하기 일쑤였습니다. 인천사람이면서 인천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일하고 놀고 사람 만나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인천은 고유하거나 홀로설 만한 힘이나 뜻도 모자라서,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시장 힘이 크고 공무원 콧대가 높습니다.

 

이런 인천에서 삼백이 조금 넘는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가 중심이 되어 시국미사를 올리고 길거리 걷기를 했습니다. 답동성당부터 동인천역까지 찻길 한쪽을 차지하면서 이만한 사람들이 걸어가며 무언가를 외치기는 스물한 해 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국미사를 마칠 즈음, 신부님은 “답동성당 문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사절한다는 쪽지를 내다 붙였습니다. 여러분 댁에도 붙이셨습니까?” 하고 물은 뒤, 당신 본당인 강화섬 마니산성당이 있는 마을에는 신문이 조선일보 한 가지만 들어온다며, 어쩔 수 없이 자기도 이 신문을 보는데, 여섯 달 만에 조선일보 논조와 똑같이 생각하며 살게 되더랍니다. 그래서 그 성당에서 조선일보를 끊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중동’이라고 하는 그 신문들이 얼마나 나쁘기에 신부님이 이렇게 이야기할까 싶고, 그렇게 나쁘다는 신문인데 여태껏 성당에서는 안 끊고 있었음이 놀랍고, 그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고 하는데에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 신문들을 보고 있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설마 기자들이 나쁘겠습니까. 신문들이 나쁘겠습니까. 오랫동안 제도권 교육에 길들면서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마치고 나라밖에서 공부도 하고 머리에는 지식도 많으나, 이 모두를 아름답게 어우러 내지 못하며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탓 아니겠습니까.

 

 “자만하지 마시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하셔서 존경받는 배우가 되세요.(3권 182쪽)”

 

 책꽂이에서 김수정 님 만화 《1남 4녀 막순이 (1∼3)》(서울문화사,1990)를 꺼냅니다. 그동안 삼백 번도 더 보아서 그림 하나 얼굴빛 하나 대사 하나 환하게 알지만, 다시 넘겨보면서도 눈물이 핑 돌고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김수정 님으로서는 만화쟁이로 더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울던 1980년에, 이 만화를 그려내며 비로소 ‘김수정’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립니다.

 

그리고 만화 맨 마지막에, 하숙하며 살던 ‘수복’ 씨가 영화배우로 뜻을 이룬 일을 기뻐하는 집임자 아주머니 말 한 마디처럼, 김수정 님 당신도 ‘우러름받는’ 사람이 되고자 부지런히 땀을 흘렸지 싶습니다. 만화를 그려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고 힘을 펼치기보다, 사랑받을수록 더 땀흘리고 다리품 파는 사람이 되고자.

덧붙이는 글 |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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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절판, #김수정, #만화책, #조중동, #시국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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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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