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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려야 할 장마철이지만 비가 별로 오지 않은 탓인지 팔당호에 녹조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해 식수원에서 냄새가 날 지경이라니 세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강운구 사진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거의 변하지 않을 강산이 인간의 손때가 타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훨씬 타당성 있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리면 너나 없이 한 달음박질에 수도간으로 뛰어가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곤 했습니다. 그 때는 '클로르칼퀴(표백분. 차아염소산칼슘)'에 익숙해서 산골짜기 바위 웅덩이에서 솟아오르는 차가운 물을 먹으려면 더러워서 못 먹는 줄 알고 바가지에 입을 댈 때부터 등쪽부터 짜르르한 전율을 느끼곤 했지요.

비와 덕풍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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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은

숲이 더욱 파래지고 울창해졌어도 그전처럼 쌀과 찌개 거리 들고 가서 계곡물을 떠서 밥지어 먹기도 께름칙합니다. 물론 산에서 밥 해 먹는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물은 이제 함부로 몸을 담글 수 있는 물이 아닙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즐기는 물이지요.

불과 얼마 전 만해도 곁에 물이 흐르는 땅을 보면 환장하는 서울사람들을 보고 시골 할머니가 하는 말이 '서울사람들은 물오리 삼신할매가 들었는가'하였습니다. 곁에 두는 물을 너무 좋아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계곡물 바로 곁에 집을 지어 홍수 때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다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지요.

배산임수라는 말은 물 곁에 집을 지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집이 건조한 곳에 있어야 사람 건강을 유지하지요. 그런 면에서는 산수화에 즐겨 등장하는 안개 낀 강물에서 낚시하고 있는 풍경도 건강한 후손들을 위한다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산, 강,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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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은

전에는 마당가에서 얼마 깊이 파지 않더라도 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노출된 우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더라도 고인 물이 되어 그 물로 목 축일 생각을 안 합니다. 지하 몇 십미터 아니 몇 백미터 그것도 모자라서 암반수 아니 국내 것은 못 믿겠다하여 빙하수, 해저심층수까지 수입해서 먹고있는 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인가 논산 양촌리라는 곳에서 슬레이트를 씌운 빨래터를 보고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에 쟁여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혹시 들을까 해서요. 작년에 다시 찾아갔더니 이제 물은 흐르지 않고 그저 고여 있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들끓지 않는 계절에 바위계곡에서 부딪히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소리치며 돌며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아직도 우리 강산은 길이 보존할 가치가 있구나 하고요.

검룡소를 보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내를 건너야 합니다. 불과 폭이 10미터 정도밖에 되진 않지만 발 담글 때와 물 속에 있을 때는 생각이 전혀 달라집니다. 찬 기운이 짜릿짜릿하게 뼈를 타고 정수리로 올라오지요. 깊이를 모를 검푸른 바위웅덩이 검룡소에서 물이 꿀렁이며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면 왜 그렇게 찬지, 마치 용의 기를 타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순결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조가 상원사 계곡물에서 몸을 씻고 있을 때 지나가는 동승이 있어 등을 밀어 달라 부탁을 하였습니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하니 동승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요"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조가 몸을 보니 종기가 씻은 듯이 없어졌다 합니다. 아마 그때라면 물이 깨끗해서 그런 효험이 있을 듯도 싶습니다.

한강과 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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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은

방아다리 약수는 탄산수로 유명하지요. 할아버지는 1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전나무 숲길도 손자가 떼를 쓰며 가지 않는다 할까봐 달랩니다. '저기 가면 바위틈에서 사이다가 나온단다.' 마침내 샘에 도착한 아이는 붉은 바위 색깔에 질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바가지로 퍼서 먹는 무지막지함에 놀랍니다. 억지로 한 모금 먹으며 하는 말이 '에이 이게 무슨 사이다야!'라는 말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훑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주의 사고에는 그만큼 격차가 있습니다. '집으로'라는 영화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원하는 손자에게 닭백숙을 권하는 할머니처럼요. 그러나 귀가 안 들리는 할머니와 손자는 비록 말로 곰살맞게 소곤거리지는 않지만 거칠지만 무언중에 따뜻한 정을 나누지요.

석유는 필요이지만 물은 필수입니다. 기름을 덜 쓰면 생활이 불편해지지만 물은 못 먹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습니다. 바다가 그리워지고 계곡이 그리워지고 한 모금의 차가운 물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수종사의 맛좋은 물로 차를 한잔 마시며 저 아래 비 뿌리는 한강을 내려다보고 싶습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수종사 찻방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수종사 찻방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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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물, #덕풍계곡, #한강, #팔당상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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